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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위령의 날 미사 2006. 11. 2. 중계본동. 욥기 19, 1.23-27ㄴ. 로마 5, 5-11. 마태 5, 1-12ㄴ. 「교회는 전례력상 마지막 달이 되는 11월을 위령의 달로 정하고, 한 달 동안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모든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고, 특히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하며, 언젠가는 맞이할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그간 살아온 삶을 반성하여 회개의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가능하면 11월 한 달 동안 자주 세상을 떠난 부모, 형제, 친지, 친구, 지인(知人)들의 묘지를 찾아가 기도하고, 그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연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11월 2일 위령의 날은 정확히 1030년경 개혁수도회로 이름난 프랑스의 클뤼니수도원(베네딕토수도원)의 대수도원장 오딜로(Odilo)가 처음으로 기념하기 시작하여 온 세계교회로 퍼졌다. 오딜로 대수도원장은 수사들에게 “비록 그들의 죽음이 너와 무관하다 하더라도 자주 불쌍한 영혼들을 기억하라”고 강조하였다. 오늘날 오딜로 성인은 연옥의 불쌍한 영혼들의 수호성인으로 통한다.」(박상대신부) 우리는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하늘나라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 5, 5) 그러나 주님을 믿지 못한 영혼들, 주님을 믿으나 그 삶을 충실히 살지 못한 영혼들의 삶은 불쌍하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천국을 보면서도 가지 못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갈 수 있기에 기도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통공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도할 때, 그들이 내 기도의 통공을 입어 하늘나라에 가게 된다면 우리 역시 그들의 기도의 통공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위령의 날을 시작한 오딜로 수도원장은 “비록 그들의 죽음이 너와 무관하다 하더라도 자주 불쌍한 영혼들을 기억하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연옥 영혼들을 기억하며 기도함과 동시에 나의 신앙도 깊이 돌아보고 다지는 시간도 되어야 합니다. 내가 가야하는 곳은 바로 하느님의 품이고, 그렇게 갈 수 있도록, 정화의 때인 연옥이 아니고 주님의 품이길 바라며 내 삶을 믿음의 삶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기 위해 오늘 독서의 욥의 신앙을 청합니다.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욥 19, 27) 주님만을 위한 삶을 살았던 욥. 선한 삶으로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그 선한 삶이 사탄에게조차 존경스러웠던 욥. 그런 그가 시련을 겪게 되었을 때, 고통을 당하게 되었을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라는 심한 괴로움이 그에게 엄습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 하느님을 원망도 해보지만, 그러나 욥은 그래도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만이 나의 희망이고, 그분을 믿고 싶습니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 주님을 뵙게 되는 우리. 죽은 이들을 기억하면서도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고, 나의 신앙을 자라게 해야 합니다. 욥을 배워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의문투성이라 하더라도, 왜 제가 이런 일을 겪게 하십니까? 라고 물을 일이 있더라도 묻긴 하되 그러나 주님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욥처럼 오로지 그분을 뵙겠다는 일념,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기어이 뵙겠다. 나는 오로지 그분만 뵙겠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산다면,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 5, 12)고 나의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멘 |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조성호 신부님
2006. 11. 6. 오전 9: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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