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뜻이 아니라 (요한 6, 36-40)
-유 광수신부 -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하늘에서 내려 왔기 때문이다. 나는 보내신 분의 듯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듯은 도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것이 당신 뜻을 실천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뜻은 무엇인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무슨 뜻을 갖고 태어난 것인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과연 내 뜻이란 있는 것인가? 있다면 나의 뜻은 무엇인가?
나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내 뜻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동안 내 뜻이라고 많은 말을 했고 또 그 뜻을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그것은 내 뜻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아니다. 사실 "나는 이것 때문에 이 세상에 태어났다."라고 말할 수 있는 내 뜻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나는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른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나의 뜻이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내가 태어나게 되었을 뿐이다. 왜 태어났는지 무슨 목적을 갖고 태어났는지 어디로 가기 위해서 태어났는지 무슨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이 세상에 태어났을 뿐이다. 내가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의 뜻이 있을 수 있겠는가? 내가 내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만 내가 만들어 놓은 허상일 뿐이다. 내가 내 뜻이라고 말하는 것 때문에 내가 태어난 것은 정말 아니다.
내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는지를 아는 분은 오직 한 분 즉 나를 창조하신 분,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만이 안다. 나는 내 뜻에 의해 태어 난 것이 아니라 나를 창조하신 분의 뜻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다. 따라서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뜻이 무엇인지는 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나에게는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 나의 성소요, 찾은 그 뜻을 사는 것이 나의 성소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의 뜻만을 고집하며 그것이 마치 하느님의 뜻이고 내가 이 세상에서 반드시 펼쳐야할 뜻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온 경우가 많이 있다.
나의 뜻이라고 고집할 때 대부분의 경우 나의 욕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즉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을 때도 있다.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도 있다.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밀쳐 내는 경우도 있다.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싸우고 불평하고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나의 뜻일 수는 있지만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아니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은 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아니다. 그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무엇인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은 또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나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이 무엇인가를? 그것은 나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살리는 일이요, 그 일은 아들을 보고 믿게 하는 일이다.
지난 서울 영보회 모임을 마치고 수도원에 들어오는 길에 둘째 형님의 사망 소식을 듣고 병원 영안실로 가서 미사를 봉헌하였고 어제 장례미사를 지내고 형의 유언에 따라 벽제 장례예식장에서 화장을 한 후 용미리 납골당에 유해를 안치하고 돌아왔다.
처음으로 벽제 화장터를 가 보았고 사람을 화장하는 모습을 보았고, 두 시간 동안 불에 타고 남은 뼈들을 보았으며, 기계로 뼈를 가루로 빻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유골함에 담겨지는 뼈가루를 보았다.
그곳에서만 평균 하루에 150명의 시체가 들어온다고 한다. 계속해서 영정을 앞세우고 시체가 들어오고 그 뒤에는 가족들의 울음소리와 허탈해하는 모습 그야말로 죽음의 세력이 판을 치는 곳이다. 죽음이 지배하는 곳, 죽음이 왕이고 살아 있는 인간은 그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인간일 뿐이다. 자기발로 걸어 들어오지도 못하고 꽁꽁 묶여 관 속에 갇힌 채 타인의 손에 끌려서 들어오고 그리고 화장할 번호를 받고 순서를 기다리다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썩은 몸을 태워 한 줌의 흙이 되어 버린 인간,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주님의 말씀을 조금만 일찍 깨달았더라면 그렇게 자기 뜻만을 고집하며 살지는 않았을 텐데.... 모두가 다 자기의 뜻을 갖고 한 세상을 살던 사람들이다.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던 사람들이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이 있는 줄을 모르고 오직 자기 뜻만을 고집하며 살던 사람들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자기만 살겠다고 욕심부리던 사람들이다. 그렇게 고집했던 자기 뜻이 자기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가? 나의 뜻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죽을 때 함께 죽어버리는 나의 뜻을 오늘도 우리는 고집하며 살아 가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 무엇인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은 나의 뜻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을 믿는 데에 있다. 사람의 아들을 믿음으로 해서 모든 이를 살리고자 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우리는 그 일을 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 뜻을 알고 그 일을 위해서 우리 자신을 투신할 때 이보다 더 위대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과연 우리는 그러한 일에 투신하도록 특별히 봉헌의 삶으로 축성해주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성모 영보회원이다."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모 영보 회원에게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진정으로 우리가 나의 뜻을 찾지 않고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찾으며 산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보다는 훨씬 더 적극적이고 사명감을 갖고 살았을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오늘도 이 진리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아버지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펼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자기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실 우리가 만나는 사람 거의 대부분이 이런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살리는 일에 투신하도록 불리움을 받은 우리들 자신들도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아버지의 뜻은 아닌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