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의미를 위해서 - 김상조 신부님

2006. 11. 2. 오전 11:12:23

글자
위령의날

2006-11-02

 

 

존재의 의미를 위해서



오늘 복음은 모두 3개이다. 세 부류의 주인공이 나온다. 첫째미사의 주인공은 “가난한 사람”이고, 둘째미사의 주인공은 철부지 아이들이고, 셋째미사의 주인공은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다.
이들에게 공통된 것이 있다면, 첫째는 자신들의 부족함을 알고 있음이고 둘째는 그 부족함을 채울 용의가 있다는 것이고, 셋째는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실천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부족함을 모를 때 늘 실수하거나 잘못하게 된다. 부족하다고 느낄 때 조심하게 되고 반성하게 되므로 그만큼 죄의 기회가 적어진다.
미련한 처녀들도 자기들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알았을 것이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이 있는데 자기들한텐 그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몰랐다면 눈먼 장님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채울 용의가 없었거나 있었더라도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주인도 문이 닫힐 때까지, 마지막까지 들어올 손님을 기다렸을 것이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나서야 주인은 말한다. “당신들이 누군지 모르오”
이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에게 끝까지 기회를 주실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위령의 날을 보내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떠날 인생, 더 이상 기회가 없기 전에 하느님이 나에게 바라시는 뜻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날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이 바라시는 공통된 것이 있다면 아마도 내가 있음으로 인해서, 나라는 존재가 같이 사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수녀원 미사에서 늘 느끼는 것이 있다면 독서낭독자가 마지막 선포에서 “주님의 말씀입니다”를 한층 높은 음으로 말하면 다른 모든 수녀님들이 그 음높이에 맞추어 응답한다는 것이다. 선창하는 사람도 응답하는 사람도 부담되는 음이지만 기꺼이 그렇게 한다. 이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싶다. 전화받을 때에도 상대방을 위해서는 높은 목소리로 받아주는 것처럼…
둘째 미사의 1독서에서 의인의 삶이 힘들고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는 말씀처럼, 힘들지만 나의 삶이 타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수고였다면 그것이 바로 의인의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삶을 산다면 아마도 우리의 마지막 날 우리의 두 손에는 등불도 있고 기름도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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