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주간 화요일> 참 권위는 어디에서 오는가?
제 1독서 : 히브 2,5-12 (하느님께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복 음 : 마르 1,21-28 (예수님께서는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얼마 전에 고등학교 선생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 어느 선생님이 학생을 야단치고 체벌을 가했던가 봅니다. 체벌을 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찰이 신고를 받고 왔답니다. 다른 학생이 핸드폰으로 선생님을 신고한 것입니다. 그래서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선생님의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선생님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질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처럼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이 놀랍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르1,22)
예수님 당시에 가장 권위가 있어야 할 사람들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 가난하고 천한 목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율법 학자들보다도 예수님이 권위가 있었다고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그러면 율법 학자들은 왜 권위가 없었을까요? 그들은 그 당시의 대표적인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며 배운 것도 많았고 권력까지 갖춘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들에 대해서 마태오복음 23장에서 신랄하게 비판을 하십니다.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마태23,3-16)
율법 학자들이 권위가 있어야 했음에도 권위가 없었던 이유는 위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았을 뿐더러 인사 받기를 좋아하고, 스승이라고 불러주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율법 학자들은 자기들의 권위만을 내세우려 했지 하느님을 두려워하거나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반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으셨고, 말씀하기에 앞서 먼저 실행하셨습니다. 누구의 잘못을 책하시기보다는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셨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손수 닦아주시면서 서로 그렇게 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 죽음에서도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이들을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사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어머니의 권위, 회사 직위의 권위 등 모든 권위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자기 중심적이거나 남에게 요구만 하는 사람들은 권위는커녕 남들이 싫어합니다. 자기는 희생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 권위만 내세우려들면 남들이 욕을 하고 비아냥거립니다. 참다운 권위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에 대한 헌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