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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삼민 신부 -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 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듯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세례’라는 말의 뜻은 씻는 예식, 즉 ‘죄를 씻고 새로운 삶을 산다.’는 뜻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죄 없는 하느님의 아들인데 왜 굳이 세례를 받으신 것일까요? 예수님 시대의 세례자 요한의 세례 운동은 사회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세리나 군인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요한의 설교를 듣고 자신의 그릇된 삶을 뉘우치고 세례를 받음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으로 돌아 왔습니다.(루가3.10-16) 예수님께서는 이런 세례자 요한의 활동을 인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부여된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더욱 확고히 하여 구원사업의 시작을 세례로서 세상에 선언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 사건은 숨겨져 있던 당신의 신적 정체가 계시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 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세례 때는 어땠습니까? 우리 신자들은 대부분 육개월의 예비자 기간을 마치고 세례식을 치릅니다. 여러분은 그 때 하늘이 열리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셨나요? 아니면 하느님의 음성을 들으셨나요? 아마도 대부분 그런 체험은 없었을 것입니다. 신비 체험은 커녕 엄숙한 전례 분위기에 압도되고 여기저기서 축하인사와 꽃다발 세례를 해와 조금은 들뜨고 신자 되었구나 하는 감동은 있었지만 그 것도 몇 개월 지나자 금방 시들 해 버리셨을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신부인 저로서 볼 때 새 신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얼마 안가서 눈에 보이지 않거나 타성에 젖은 기존 신자들의 좋지 않은 모습을 닮아 갈 때 안타까움과 실망감이 느껴집니다. 과연 이 들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질까? 이런 이 들에게 세례를 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유심히 드려다 보면 매 주일마다 끊임없이 찾아오는 교우들, 특히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평일의 성전 자리를 채우는 열심한 신자 분들, 레지오 단원, 소 공동체 봉사자등 이런 사람들 모두가 주님의 세례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이 아니겠습니까? 세례 받던 그 날은 몰랐지만 바로 이런 모습이 그 날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존엄하신 하느님의 아들이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인간에게 무릎을 꿇고 세례를 받으신 사실은 우리에게 어떠한 삶의 태도가 자신과 세상을 바꾸어 갈 수 있는가를 설명해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눈앞의 성과와 표징에 메이지 말고 겸손과 성실함으로 세례성사의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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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주님 세례 축일[방삼민 신부님] /2007.01.08
2007. 1. 11. 오전 12: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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