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주님 공현 대축일.
2007. 1. 7.
토평동.
이사 60, 1-6.
에페 3, 2.3ㄴ.5-6.
마태 2, 1-12.
성탄시기 마지막 주일입니다. 성탄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 그 강생의 신비는 믿는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을 위한 것이고, 모든 이에게 모든 이가 되어주시는 것이 당신의 존재 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이 성탄을 완성짓는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동방교회에서는 오늘을 성탄 대축일로 기억합니다.
주님 공현.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알현으로 주님께서 온 세상에 주님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온 세상의 주님으로 드러난 사건이지만, 가까이 있는 즉 믿는 이들에게도 이 사건은 아무 것도 아닌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의미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죠.
벌어진 사건이 엄청난 것이지만,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건도 아닙니다.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고 그것은 우리나라로 보면 분명 중요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도무지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대통령 선거란 이야기꺼리도 안 됩니다. 오히려 그가 게임에 관심이 있다면 게임 하나만도 못한 것이죠. 그러나 그 대통령 선거는 내가 관심이 있든 없든 중요한 사건이고 나에게도 영향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그리스도의 공현.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고 엄청난 사건임에 틀림없지만, 관심이 없는 나에게 그것이 얼마나 의미로 다가오겠습니까? 내가 주님을 믿고 있다고는 하나 진정 주님을 믿는 신앙인인지 아닌지 궁금하죠. 그렇다면 내가 주님의 강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주님께서 주님이시라는 것이 동방박사들의 알현을 통해 온 세상에 드러난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보면 될 것입니다. 나에게 커다란 사건으로, 커다란 의미로 다가오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신앙인입니다.
얼마 전에 보니 어느 동네에서 서울대학교를 들어갔다고 현수막 걸고 축하하던데, 과연 나는 주 예수의 오심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는지….
우리는 오늘을 기리면서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유향이 어떤 의미인지, 황금과 몰약 안에 어떤 뜻이 담겨져 있는지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우리의 눈을 세심히 뜨고 관찰하는 것은 주님 공현의 날에 새길 일이 아닙니다. 마태오가 이 세 가지 예물을 제시했을 때 그는 단지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보여준 것입니다. 당시 권능을 가진 왕에게 그런 예물을 바쳐왔던 것이죠.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아침이 아니라, 아침이 밝아왔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침이 왜 왔나가 아니라 나에게 다가온 아침의 밝음을 바라보며 내 삶을 밝게 시작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죠.
동방박사들이 그 먼 길을 걸어 이러한 예물을 들고 온 것은 자신들에게 보여진 계시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지금 메시아를 향한 자신들의 행동이 불투명하지만,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준 발걸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할 때 투명하게 모든 것이 보여지기를 기대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믿음을 가진 신앙인이라고 해서 주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나의 믿음에 확신을 두고 주님을 향해 갈 때,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되 의심은 하지 않는 확신 속에 걸어간다면 구원자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그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청하고 다져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열고 주님을 향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를 계속 갈구하면서 나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헤로데와 백성의 수석사제들 그리고 율법학자들은 말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디에서 구세주가 나실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식을 듣고도 찾아 나서지 않습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경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동방박사들은 그런 말씀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열고 있었고, 자신들에게 들려온 음성을 따라, 자신들에게 비추어진 별을 따라 찾아갈 줄 알았고, 드러나지 않은 모습(그들이 발견한 메시아의 모습은 아기의 모습이 아닌가?)에서도 믿음으로 경배하지 않았습니까?
마음을 열고 주님을 향합시다. 그리고 들려오는 그분의 음성에 나를 투신할 수 있도록 합시다. 나의 발걸음은 가벼울 것이고, 나의 찬미 찬양은 아름답고 깨끗하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중고등부 아이들과 피정을 다녀왔습니다.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날 때는 어찌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지만, 아이들은 스스로 변하고 있었고 피정을 통해 자신들을 표현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닫혀진 듯하지만, 열 수 있도록 해주면 열리게 되어 있는 깨끗한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피정을 하던 장소는 성당이었는데, 제 숙소 바로 밑이었습니다. 방음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서 밑에서 하는 소리가 잘 들렸는데, 한 번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성가 연습을 시키던 때였습니다. 방에 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던지…. 평소 성가를 잘 부르지 않는 그들이기에 저에게 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왔고 감동적이었습니다. 힘 있게 열심히…. 그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우리의 주 하느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래, 나의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나의 삶이! 우리의 삶이! 그렇게 힘차게 부르는 노래이고, 확신에 찬 삶이라면, 그것을 듣고 계시고 지켜보고 계실 주님께서는 얼마나 감동적으로 듣고 바라보실 것인가? 그리 생각하니 제 가슴이 벅차 올랐습니다. 오, 주님. 내 사랑이여! 진정 나의 삶이 그 삶이게 하소서. 내 노래가 그 노래이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