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세례 축일>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이기양 신부님

2007. 1. 11. 오전 12:13:54

글자

<주님 세례 축일>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제 1독서 : 이사 42,1-4.6-7 (여기에 내 마음에 드는 나의 종이 있다.)
복    음 : 루카 3,15-16.21-22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실 때 하늘이 열렸다.)

 

   오늘 복음을 통해 잘 알 수 있듯이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날이시지요. 주님 세례 축일을 지내며 두 가지를 여러분과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세례라는 것은 죄를 용서받고 새로이 태어나는 성사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도 죄를 지으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티끌 한점없는 완전한 하느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왜 죄의 사함을 받는 세례성사를 받으셨는지 의아해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또 일반적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세례를 주는 사람보다 아래에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러 오시자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니 제가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 저에게 오십니까? 저는 당신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오시어 세례를 받으십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이것입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제까지의 삶을 접고 완전히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새로 태어난다는 표시로 새로운 이름을 받아 이제는 주님만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겠다는 고백과 맹세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는 지금 그 맹세대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주님 세례 축일인 오늘 다시 한번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첫 번째,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세례자 요한을 찾아와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누구나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우리 죄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나름대로의 표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세례자 요한의 회개의 요청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삶이라는 것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의 모양으로 내려오셨다는 표현 역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루카3,16)라는 세례자 요한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시는 바로 그 메시아이시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이제 예수님께서는 세상으로 나아가시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한 개인으로 조용히 지내시던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해 공생활을 시작하시고 이 세상에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시기 시작하시지요. 교회의 전례 또한 어제까지는 성탄 주간이었지만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을 기점으로 연중 주간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제대 앞에 놓여졌던 구유도 없어지고 여러 성탄 장식들도 오늘을 기점으로 치워졌습니다. 여러 가지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것을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생각할 것은 세례성사의 의미입니다.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로 우리는 세례를 받고, 새로운 이름을 받았는가 하면 내 삶의 중심은 재산도 명예도 자녀도 부모도 아닌 바로 주님이시라는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때의 그 맹세를 잘 지키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잘 지켰으며 또 잘 지키고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인구의 50% 이상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회는 날로 혼란해지고 있으며 곳곳에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고 일어납니다. 이런 우리 현실을 바라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 우리 신자들의 모습이 통 보이지가 않는 것이지요. 바닷물이 썩지 않고 늘 푸른 생명력으로 살아 있는 것은 그 안에 3%의 소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자가 인구의 50%가 넘는 이 나라의 곳곳이 이토록 부패한 냄새를 풍기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각 현장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주님을 믿는 신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이 오로지 주일에 교회를 가는가 안 가는가에 달려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을 살면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라고 우리를 파견하셨는데 우리는 그 소명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또 변변히 실행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을 따르는 우리들이지만 이 세상을 살아가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재물이나 자녀 교육, 또 건강이나 권력 등에 보이는 집착이나 관심이 신자가 아닌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서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겠다고 고백하고 맹세한 신자이면서도 드러나는 삶의 모습은 재물에 더 앞서 있고, 자녀 교육에 더 앞서 있고, 내 건강에 더 앞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러니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지요. 불안하고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갈증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 사람들은 끝없이 소비하고 소유하며 자신들의 욕구가 채워지기를 갈망하지요. 그러나 그 갈증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더욱 큰 갈등과 공허감에 시달리고 외로움의 노예가 될 뿐이지요.
   우리 신자들도 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오히려 양심의 소리와 주님의 법을 모르지 않는 신자들은 그런 삶으로 인해서 이중의 고통을 겪습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이 삶의 밑바닥에는 있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 신자들이 그들과 똑같은 어려움 속을 헤매며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느 유명 인사의 고백 한 토막을 들려드립니다.
    “나는 여자로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졌습니다. 나는 젊고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도 많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므로 외롭지도 않습니다. 수백 통의 팬레터를 받을 뿐 아니라 건강하기도 합니다. 아무 부족한 것도 없을 뿐 아니라 미래에 대한 걱정도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왠지 공허하고 불행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뭔지 모르지만 그런 기분이 드는 내가 참 불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미국의 유명한 여자 배우 마릴린 먼로의 고백입니다. 아름다움을 뽐냈던 만인의 연인 마릴린 먼로는 1962년 어느 날 밤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갈증은 돈이나, 건강, 미모나 보장된 미래로 채워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삶을 평화롭고 자유롭게 가꿀 수 있는 방법은 주님을 내 마음에 모시는 것뿐입니다. 주님을 알고 자기가 소유한 재물의 십분의 일을 가난한 사람과 나누었다면 그녀의 삶은 아마 전혀 달라졌을 것입니다. 주님 안에서 안정되고 평화로운 삶을 살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극찬 받는 사람중의 하나로 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재물과 화려한 외모, 높은 지위로 세상을 더욱 밝게 하고 가난한 이웃 안에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며 아름답고 거룩한 노년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몰랐던 그녀에게 돈이나 미모, 명예와 사람들의 극찬 등 이 모든 것은 갈증만을 불러왔고 결국 그 극단에서 그녀는 안타깝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 즉 재물과 명예, 건강이나 가족 등은 그 안에 하느님께서 계실 때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가 이렇게 어렵고 힘들어지는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 안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시며, 재물보다는 사람이 우선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놓쳐 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무너져 버렸습니다. 이제 우리 시대는 대표적인 불신의 시대요, 물신주의 시대요,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젊은이는 젊은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모두가 끝없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잠깐 반짝하고 마는 쾌락의 유혹에 자신을 맡기어 마약을 하는 등 해서는 안될 일들을 하고 있습니까?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것에 기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의 모습이지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재물과 건강과 명예와 가정이 더욱 풍요롭게 채워집니다. 그러나 재물이나 건강 등 그 자체가 하느님과 사람을 대신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불행해지는 것이지요. 주님을 내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주님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실 때 내 것을 내놓을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재물이나 자녀 교육, 건강이나 명예 등을 부모를 위해 내놓을 수 있고, 이웃을 위해 내 놓을 수 있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내놓을 수 있을 때는 바로 주님이 내 삶의 중심에 계실 때입니다. 그리고 이 때 그것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 삶은 풍요로워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그것이 중심이 됐을 때는 나를 망치고 가족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사회의 현상이 그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세상 사람들처럼 어리석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재물이나, 건강, 권력이나, 자녀 교육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과 사람을 사랑하고 내 중심에 주님을 모셔놓는 일이 그것입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모두 덤으로 받게 됩니다. 하느님과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시대가 보여주는 많은 혼란과 갈증, 비인간화와 외로움 등은 세례 성사 때 우리가 맹세한 대로 주님을 모시고 사람을 사랑하며 살아갈 때 모두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은 우리에게 다시 세례 받은 그 날로 돌아가라고 말해줍니다. 연중 제1주가 시작되는 이번 한 주간 우리는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하느님과 사람이 우선이며, 내 마음의 주인은 주님이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겠습니다. 우리의 삶에 참 평화를 가져오며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은 바로 그 길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실천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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