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모두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부산교구 서공석 신부-
성탄 축일에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사실을 기념하였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자라서 하느님에 대해 또 우리의 구원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공현 축일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그 생명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념합니다. 마태오복음서가 전하는 오늘의 이야기는 일어난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오늘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예수님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거부하였고, 이교도들이 먼 이역에서 찾아 와 그분을 영접하고 경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실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활동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분의 죽음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방인들에게 실제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해 뜨는 동방에서 왔다는 박사라는 사람들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몇 명이며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베들레헴을 다녀서 어디로 갔는지, 후에 신앙인이 되었는지, 어느 것 하나도 복음서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잠시 무대에 나타났다가 그들의 배역이 끝나자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세 명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예물이 셋으로 되어 있어서, 기원 후 500 년경부터 전래된 전설입니다.
그들이 나타나자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헤로데 왕이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놀라고 그분에 대해 적의를 품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에서 헤로데 왕은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는 음흉한 주문을 하면서 그 박사들을 베틀레헴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결국 아기를 찾아 경배하였습니다. 말씀을 찾아 자기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은 말씀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모두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태어나고 철이 들면서부터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든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기도 하고, 환상을 쫓기도 하면서 갑니다. 돈을 좇아, 권력을 좇아, 때로는 비굴하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며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나 한 사람 잘났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이웃을 미워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마는 한 송이의 꽃과 같이 길지도 않은 인생길을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생명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진흙으로 인간의 모상을 빚어놓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자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삶은 하느님의 숨결, 곧 하느님의 생명과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그 숨결이 살아 있으면, 우리는 허무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흙으로 돌아간다...먼지로 돌아간다.”(3,19)는 말로 그 허무를 표현하였습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 삶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제 멋대로, 자기중심적으로 살도록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을 자기 안에 살려서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오늘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난 박사들의 이야기는 말씀을 찾아 나선 신앙인들의 행보를 말해 줍니다. 그들은 구원의 말씀을 찾아 별을 보고 떠났습니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별 하나입니다. 흔하디흔한 별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정든 자기들 삶의 온상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그들도 떠났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편안함이 그립기도 하였고, 회의에 빠져 마음이 어둡기만 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헤로데 왕에게 가서 길을 묻기도 하고, 그의 간교한 주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간교함이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 그들의 정성을 바치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성서는 그들에 대해 다시는 말하지 않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알아볼 길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끝내고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찾는 마음이 있고, 길을 떠나는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안주하였던 온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재물이 제공하는 온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습니다. 위대하고 화려한 것만 찾는 시선에 말씀의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초라한 구유에 사람이 되어 누워 계십니다. “이 지극히 작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복음서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찾는 우리가 시선과 마음을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말입니다. 초라한 현실과 고통당하는 약자들의 모습을 외면하면, 말씀에로 인도하는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과 그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겠다는 우리의 마음이 있을 때, 별은 보이고 말씀은 들립니다. 그런 마음에 하느님의 숨결이 살아 계십니다.
별은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입니다. 초라한 현실들과 고통스런 약자의 모습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의 별은 빛을 발할 것입니다. 헤로데와 예루살렘의 율법학자들과 같이, 오늘의 통치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엉뚱하고 때때로 간교한 생각도, 말씀을 찾아가는 우리의 발길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 말씀의 별을 보고 그것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은 숨결로 살아 계십니다.
말씀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갇혀서 사는 이기심의 따뜻한 온상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버리고 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과거를 가지고 우리와 시비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길을 떠나면, 별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줄 때, 하느님은 우리의 별이 되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런 실천들의 원천이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각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도 무방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그런 삶 안에 ‘흙과 먼지’의 허무를 보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숨결이 우리의 실천 안에 살아 계시게 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은 우리를 인도하며 함께 계십니다.
▶ 부산교구 서공석 신부성탄 축일에 우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사실을 기념하였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자라서 하느님에 대해 또 우리의 구원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오늘 주님의 공현 축일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주신 그 생명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념합니다. 마태오복음서가 전하는 오늘의 이야기는 일어난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방에서 박사들이 베들레헴에 왔다는 오늘의 이야기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예수님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거부하였고, 이교도들이 먼 이역에서 찾아 와 그분을 영접하고 경배하였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실 때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활동하셨지만, 이스라엘은 그분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분의 죽음 후 그분의 가르침은 이방인들에게 실제로 더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해 뜨는 동방에서 왔다는 박사라는 사람들을 등장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몇 명이며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베들레헴을 다녀서 어디로 갔는지, 후에 신앙인이 되었는지, 어느 것 하나도 복음서는 말해 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잠시 무대에 나타났다가 그들의 배역이 끝나자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세 명이라는 전설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예물이 셋으로 되어 있어서, 기원 후 500 년경부터 전래된 전설입니다.
그들이 나타나자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고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헤로데 왕이고,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입니다. 이스라엘은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부터 놀라고 그분에 대해 적의를 품었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의 이야기에서 헤로데 왕은 아기를 찾거든 자기에게도 알려 달라는 음흉한 주문을 하면서 그 박사들을 베틀레헴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결국 아기를 찾아 경배하였습니다. 말씀을 찾아 자기 길을 꾸준히 가는 사람은 말씀을 만난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모두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태어나고 철이 들면서부터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든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기도 하고, 환상을 쫓기도 하면서 갑니다. 돈을 좇아, 권력을 좇아, 때로는 비굴하기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하며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나 한 사람 잘났다고 착각하기도 하고, 이웃을 미워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고 마는 한 송이의 꽃과 같이 길지도 않은 인생길을 우리는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우리의 생명입니다. 창세기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진흙으로 인간의 모상을 빚어놓고 당신의 숨결을 불어넣으시자 살아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삶은 하느님의 숨결, 곧 하느님의 생명과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그 숨결이 살아 있으면, 우리는 허무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창세기는 “흙으로 돌아간다...먼지로 돌아간다.”(3,19)는 말로 그 허무를 표현하였습니다. 하느님 없이 우리 삶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제 멋대로, 자기중심적으로 살도록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을 자기 안에 살려서 살아야 하는 인생입니다.
오늘 베들레헴을 향해 길을 떠난 박사들의 이야기는 말씀을 찾아 나선 신앙인들의 행보를 말해 줍니다. 그들은 구원의 말씀을 찾아 별을 보고 떠났습니다.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별 하나입니다. 흔하디흔한 별들 중의 하나입니다. 그들은 정든 자기들 삶의 온상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자기 고향을 버리고 길을 떠났듯이 그들도 떠났습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의 편안함이 그립기도 하였고, 회의에 빠져 마음이 어둡기만 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헤로데 왕에게 가서 길을 묻기도 하고, 그의 간교한 주문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간교함이 하느님을 향한 그들의 발걸음을 막지는 못하였습니다. 드디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만나 그들의 정성을 바치고 우리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성서는 그들에 대해 다시는 말하지 않고 우리는 그들에 대해 알아볼 길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끝내고 사라졌습니다.
우리도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 찾는 마음이 있고, 길을 떠나는 용기도 있어야 합니다. 길을 떠나는 것은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안주하였던 온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재물이 제공하는 온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습니다. 위대하고 화려한 것만 찾는 시선에 말씀의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말씀은 초라한 구유에 사람이 되어 누워 계십니다. “이 지극히 작은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는 복음서 말씀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찾는 우리가 시선과 마음을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말입니다. 초라한 현실과 고통당하는 약자들의 모습을 외면하면, 말씀에로 인도하는 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현실과 그런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겠다는 우리의 마음이 있을 때, 별은 보이고 말씀은 들립니다. 그런 마음에 하느님의 숨결이 살아 계십니다.
별은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이기심과 욕심의 구름이 걷히면, 하느님 말씀의 별은 보입니다. 초라한 현실들과 고통스런 약자의 모습들은 하늘의 별과 같이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는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면서 말씀의 별은 빛을 발할 것입니다. 헤로데와 예루살렘의 율법학자들과 같이, 오늘의 통치자와 종교 지도자들의 엉뚱하고 때때로 간교한 생각도, 말씀을 찾아가는 우리의 발길을 막지는 못합니다. 그 말씀의 별을 보고 그것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는 우리의 삶 안에 하느님은 숨결로 살아 계십니다.
말씀을 향해 떠나야 합니다. 우리가 갇혀서 사는 이기심의 따뜻한 온상을 뒤로 하고 떠나야 합니다. 우리의 죄도, 우리가 받은 상처도 모두 잊어버리고 가야 합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들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과거를 가지고 우리와 시비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그분을 향해 길을 떠나면, 별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돌보아줄 때, 하느님은 우리의 별이 되어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런 실천들의 원천이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각자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도 무방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그런 삶 안에 ‘흙과 먼지’의 허무를 보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과 숨결이 우리의 실천 안에 살아 계시게 사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그것을 향해 우리를 움직여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은 우리를 인도하며 함께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