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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루카 2, 22-35-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는 말씀을 접하고 보니, 작년 오늘에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작년에 지금은 신학생이 된 신제주 학사님의 신학교 입학시험에 함께 다녀왔습니다. 당연히 합격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기에, 오랜 만에 수녀님들과 만남도 할 겸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까리따스 지원원에 묵었습니다. 교만한 생각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험생이 한 명 뿐이었거든요.^^
미사를 부탁하기에 지원원에서 드리는 미사인줄 알고, ‘당연한 것은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며 큰 소리 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지원원 미사가 아니라, 대 성당 미사였습니다. 마침, 그 때가 년 피정 때라, 수녀님들이 성당 안을 가득 채웠지만, 저는 그 많은 수녀님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허공만 바라보며 미사를 드렸습니다. 그만큼, 긴장이 되었고, 참 많이 버벅댔던 미사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작년 일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 때, 함께 미사를 봉헌했던 수녀님들의 영육간의 건강을 하느님께 청해 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소중하고 중요합니다. 현재의 삶은 현재로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미래, 곧 말년의 삶에 영향을 미치고, 그 결실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삶을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말년에 어떠한 행동, 말을 하게 되느냐가 결정됩니다. 지금 남을 시기, 질투, 미워하는 감정이 마음 안에 가득 차 있다면, 말년에는 더욱 더 마음이 메말라가고 체체해져 버릴 것입니다. 남을 여유롭고 너그럽게 대하지 못하고,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며 생활할 것입니다.
반대로, 남을 도와주고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늘 웃고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때문에, 지금 현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말년에 후회하는 삶이 될 것인지... 마지막을 잘 준비하는 삶이 될 것인지 결정될 것입니다. 곧, ‘앞으로 20년은 더 살 거야!’ 라는 강한 애착 속에 주위 분들을 불편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는 말을 하며 지상 생활을 마치고 하느님의 품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시메온 사제는 ‘현실에 충실하며 살아간 분이구나.’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히 사제로서 사제 직무에 충실한 것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기를 늘 바라며 살았습니다. 그 기다림의 값지고 고귀하기에 말년에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가게 해 주셨습니다.” 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기도는 자신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그 삶의 결실을 맛보았기에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라는 고백과도 같습니다. 시메온 사제는 죽기 전에 그러한 기도와 고백을 드릴 수 있기에 행복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기도와 고백은 현실에 충실하며 말년을 잘 준비한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기도요, 고백입니다. 마치,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처럼, 곧 “이제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과 같은 기도요, 고백입니다.
예수님 역시, 돌아가시기 전까지 삶에 충실했기에...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고 애를 쓰셨기에 “이제 다 이루었다.” 라는 말씀을 하시며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나는 어떠한 말을 하게 될까?’ ‘마지막에 어떤 말을 하고 하느님께로 돌아가고 싶은가?’ 생각해 봅니다. 저 또한 후회와 아쉬움 속에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시메온 사제처럼,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 는 고백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그냥 드려지는 것이 아님을 잘 알면서도, 자주 ‘그 까이거 뭐 대충~~’하는 유혹에 쉽게 빠지고, 그 안에서 한참을 머물러 버리게 됩니다. 그만큼, 현재의 삶에 충실하기가.. 먼저 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기가 힘들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메온 사제의 모습을 묵상하며 더욱 현재의 삶에... 일상도의 영성에 충실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오늘 변하지 않은 것이 내일 변하게 되지 않고, 오늘 하기 싫은 것이 내일 하고 싶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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