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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팔일축제 내 제5일 복음 : 루카 2,22-35 찬미예수님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평생을 기다린 구세주를 만나는 시메온의 모습을 전하고 있습니다. 시메온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평생을 의롭게 산 사람으로 죽기 전에 주님의 그리스도를 볼 것이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어느 날, 성령의 이끌림으로 성전에 가서 정결례를 위해 성전에 온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성모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를 들 수 있을까요? 누구보다도 먼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나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신앙으로 믿어 자신의 몸에 받아들인 성모님이라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 최초의 그리스도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께 드린 시메온의 이 말은 최초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인 성모님의 고난과 함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우리들이 겪게 될 고난에 대해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고 그리스도처럼 행동하고 그리스도처럼 말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산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의인들을 일으키기도 하며 악인들을 쓰러지게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때, 성모님처럼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고통을 겪을 수도 있으며 어제 축일을 지낸 무죄한 어린이들처럼 아무런 잘못이나 이유 없이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래왔고 우리도 지금 그렇게 살고 있듯이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고통들을 이겨내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고통을 이겨내며 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라면 모든 것은 무의미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소중하다고 여겨왔던 이상과 가치, 삶의 방식들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오로지 매 순간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있는 것만이 최고의 가치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면서 이 세상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통해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이 세상 외에 다른 어떤 것이 분명히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우연들은 잘 살펴보면 나름대로의 이유와 타당성을 가지고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나 믿음과 가장 멀리 있을 것 같은, 이성과 과학만이 전부라고 여길 것 같은 과학자들은 우주의 신비에 대해 깊이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신의 존재를 느낀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확률상으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야만이 지금의 이 세상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이 세상이 있기를 바라신 어떤 존재의 의지를 통해 생겨났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지에서 생겨나 먼지로 사라져버릴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지어내신 하느님의 뜻에 의해 이 세상에 생겨났음을, 그리고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고백할 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때, 우리는 의미 있는 존재로서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여행하는 나그네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
성탄 팔일축제 내 제5일 /하느님 나라를 향해 여행하는 나그네-이기양 신부님
2006. 12. 29. 오후 12:3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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