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마태오 2, 13-18
겸손의 삶이 수많은 사람들 살린다.
자기에 대한 욕심으로 예수님을 죽이려던 헤로데의 계획에 예수님을 대신해서 무참히 살해 된 죄없는 어린아기들에 대해서 기도하는 날입니다.
자신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 사람의 생명도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헤로데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의 욕심이 가져오는 잔인함의 극치를 보게 되는데, 우리 주변을 묵상하면서 낙태된 어린아기들, 사실 현대에 헤로데와 같은 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특별히 미사중에 낙태된 어린아기들에 대해서도 다함께 기도합시다.
동방박사들이 왕의 별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헤로데는 이스라엘의 왕을 의미하는 줄 알고 불안해 합니다.
동방박사들에게 그분을 찾으면 자기자신도 경배를 하고 싶다며 알려다라고 합니다.
동방박사들은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서 헤로데의 음모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께 경배를 드린 후 다른길로 떠나게 됩니다.
헤로데는 동방박사들이 몰래 돌아간것을 알고 화가 나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보장을 받기 위해서, 엄청난 마음을 먹고 그시간에 태어난 아기들, 그것도 두살아래 남자아기들을 모조리 없애버리라고 지시를 하게 됩니다.
온도시가 어린아기들의 피로 물들게 되고, 그속에세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요셉성인에 의해서 이집트로 피난을 갔다가 헤로데가 죽을때기 그곳에 살게 됩니다.
사람의 목숨, 이것을 무가치하게 여기는것, 이런마음에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는것, 소리없이 쓰러져간 순교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 오늘 축일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와같이 잔인한 일을 저지른 헤로데의 실수가 우리에게 던져지는 거울과같은 의미를 살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내이익에 맞춰서 사람들을 희생하고, 하느님의 소중한 사랑을 짓밟지 않았는지, 자라나는 신앙을 잘라버리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그사람을 어쩌지 못하면 분해서 남에게 분풀이를 하는 그러한 생활은 없었는지 또한 살펴봐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우리모두가 죄가 없을 수 없는 약한 사람들이란것을 강조합니다.
죄가 없다고 하느님께 말을 하면 그것은 내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진리를 속이는 것이다라고 말을 하는데 그만큼 우리는 부족함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인정한다고 해서 하느님앞에서 나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아닙니다.
인정하면 인정할수록 하느님께서는 더욱 우리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실수와 결점이 있더라도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용기있게 우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익을 생각하기 보다는 그 사람의 큰뜻을 받아 들일 줄 알고, 더욱더 겸손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모습, 이것이 신앙인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속에서 보면 겸손이라는 두글자가 빠져있는 생활로 느껴집니다.
겸손이라는 것이 반대로 교만해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 아닐까하는 반성을 해 봅니다.
겸손의 삶을 우리 자신이 살아 갈 수 있을때,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안으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손을 벌릴 수 있을 때 우리는 헤로데의 모습이 아니라, 현재 예수님의삶을 살 수 있습니다
과연 나의생활은 내안으로만 자꾸 내것을 끌어 안을려고만 하고 있는가? 그래서 하느님 앞에서나 이웃 앞에서 교만된 삶을 살고 있는가 아니면 내 자신의 것을 밖으로 끄집어 내는 주님앞에서도 이웃앞에서도 참된 겸손의삶을 살고 있는가? 오늘 우리 이 미사중에 다시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 우리가 항상 생각하고 걸어나가야 되는 길이란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서, 이시간 주님께 그 겸손을 청하여 봅시다.
아멘
-인천교구 박촌동성당 윤자면신부님 말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