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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4주일(미카 5,1-4/ 히브 10,5-10/ 루카 1,39-45)
“.....기도 속에서 언제나 당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마음속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응답해 주셨고, 저는 그대로 하였습니다. 잘 자란 우리 아이들, 몸은 헤어져 있었지만 저 혼자서 키운 것이 아닙니다....” 장기려 선생님의 부인께서 선생님께 보낸 편지 일부입니다. 한 평생 무의탁 환자를 돌보신 장기려 박사님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일사후퇴 때 북에 부모와 부인, 5남매를 남겨두고 둘째 아들만 데리고 환자를 돌보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온 것이 일평생 가족들과 생이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85년 정부가 북쪽의 가족을 만나보라며 방북을 권했을 때 혼자만 특혜를 누릴 수 없다며 정부의 청을 거절하셨지만, 일생 북쪽의 가족을 그리워하셨던 선생님이셨고, 95년 성탄절 새벽 이 세상을 구원하시러 오신 예수님 품에 안겨 천국으로 가신 선생님이십니다. 부인과의 약속을 일생 지키면서 부인과 가족을 만날 날을 희망하다 이승의 눈을 감으신 장기려 선생님. 불쌍한 환자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내어놓겠다고 하시며 자신의 소유라고는 아무 것도 가지시지 않으셨던 선생님은 평소에 “나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요.”라며 의사로서, 신앙인으로서의 약속을 철저히 지키셨습니다. 그에 비해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통령 이야기만 나오면 우울해 합니다. 말잔치에 그치는 한 정치인의 약속은 국민을 좌절시키고 마음에 분노마저 느끼게 합니다. 촌음을 다투어 나라 걱정을 해도 모자랄 판에 경남 김해에 퇴임 후에 살 집을 짓는다고 한창이랍니다. 오늘 대림 제4주일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약속을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제1독서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는 약속이고, 제2독서는 “하느님, 저는 당신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라는 우리 주님의 약속이고, 복음은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라며 엘리사벳이 인류구원을 위한 주님의 약속을 간접적으로 밝혀주십니다. 주님은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오십니다.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처음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도 하느님께서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무지개를 창공에 걸어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나이가 많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후손을 땅의 먼지처럼 많게 할 것이니....”(창세 13,16)라 약속하셨습니다. 수많은 구약의 약속에서 부터 세례자 요한의 탄생 약속과, 한 처녀에게서 태어날 주님 탄생의 약속에 이르기까지 주님은 인간의 세상에 약속으로 개입해 들어오셨습니다. 그 약속들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이루어지는 것이 불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나이 늙은이가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약속에다, 처녀까지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 약속들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그럴 듯한 약속이 어디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죽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신다는 약속은 그 어떤 불가능한 약속들보다도 더 불가능한 약속이었습니다. 이 모든 불가능한 약속들 한가운데에 하느님은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임마누엘의 하느님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의 그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단 하나 우리 인간의 협력을 요청하십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을 아브라함은 받아들였습니다. 유다 산골 나자렛의 한 처녀도 받아들였습니다. 불가능해 보인 그 모든 구원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진 현장엔 그 약속을 믿었던 한 인간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약속도 불가능해 보이지만, 당신이 택하신 그 인간 면면은 너무나 초라하고 초라해 더욱더 불가능하기만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초라한 인물들이 하느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열매는 우리 인류에게 구원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드러났습니다.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하신 모든 약속을 완전히 이루시기 위해 주님께서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9)라고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루에도 우린 수많은 약속을 합니다. 약속의 공수표도 많이 난발합니다. 다시는 주일을 궐하지 않겠다고, 감사헌금을 바치겠다고,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주님께 약속하고선 개인사정이 생기면 피치 못할 일이라며 그 약속을 어기는 사람들도 꾀나 있습니다. 주님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핑계를 대거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려 한다면 그 모습이 주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련하겠습니까?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들의 외침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인간과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비천한 모습으로 오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