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깨어 기다림의 표본- 마리아[조욱현신부님] /2006.12.24

2006. 12. 26. 오전 9:46:15

글자
깨어 기다림의 표본: 마리아

-수원교구 조욱현 신부-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주시다니 어찌된 일입니까?”(루가 1,43). 엘리사벳의 이 말은 주님을 기다리는 교회의 느낌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오늘의 전례는 깨어 기다림의 표본이 되시는 마리아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내게 이루어지소서”(루가 1,38)라고 복음 전 노래를 부른다. 이 마음의 자세는 새로운 강생의 기적이 우리 안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자세이다. 사실,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태어나시지 못한다면 이 성탄은 나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제1독서: 미가 5,1-4ㄱ: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너에게서 나리라

1독서의 내용은 유다의 땅 베들레헴에서 메시아가 탄생하리라는 예언의 내용이다. 예수님의 탄생 설화에서 예루살렘의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이 예언에 따라 동방박사들에게 그들이 별을 따라 찾아갔던 ‘유다인의 왕’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었다(마태 2,6 참조). 미가 예언자는 베들레헴이 다른 도시들보다 작은 도시이지만 거기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1절) 메시아가 나게 됨으로써 영광을 입게된다고 한다. 메시아는 당신의 백성을 ‘힘’으로 인도하고 모든 사람에게 ‘평화’와 안전을 보장해주는(4절) ‘왕이며 목자’로 제시하고 있다. 이 예언에는 그 모친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있다. “그 여인이 아이를 낳기까지 야훼께서는 이스라엘을 내버려두시리라”(2절). 이 여인은 이사야 예언자의 ‘알마(’almah: 동정녀)‘에 대한 예언을 언급하는 것 같다(이사 7,14 참조). 그러므로 예언자들은 그리스도만이 아니라 그분의 어머니에 대해서도 예언을 하며 기다렸던 것이다.

복음: 루카 1,39-45: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오늘 복음에는 마리아와 엘리사벳 모두가 아기의 출산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두 여인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내용은 마리아의 태중에 있는 아기에게 집중되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태중에서 뛰었다는 것은 역사가 이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리아가 서둘러 간 ‘유다 마을’(29절)은 나자렛에서 150km 이상 되는 예루살렘 서쪽 6km 지점에 있는 ‘아인카림’(Ain-Karim)이다. 마리아가 이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과 봉사의 정신이 컸었음을 말해준다. 마리아가 걸음을 서둘러 길을 떠난 것은, “그 예언을 의심해서이거나 천사가 알려준 내용이 불확실해서거나 그 증거에 대한 의심이 생겨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기뻤고 바로 그 내적인 기쁨에서 오는 열정에 따라 자신이 해야할 일을 헌신적으로 수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의 은총으로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던 때문이다”(S. Ambrosius, In Lucam 2,19).

곧 해산하게 될 늙은 친척을 돕기 위한 이 먼 여행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강생을 통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봉사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보다 힘든 여정에 대한 완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41절)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마리아를 만났을 때는 이미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로 인식하고 있었다(43절). 그리고 성서는 그리스도를 잉태한 마리아를 구약의 계약의 궤와 같이 하느님의 현존으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즉 엘리사벳은 자기 집으로 그 하느님의 현존이 옮겨와 있다는 사실에 놀라며 큰 소리로 마리아께 “모든 여자들 중에 가장 복되신 분”(42절)이라고 찬양한다.

마리아가 이렇게 위대하게 된 것은 그녀의 신적인 모성(母性)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이 주어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주님의 말씀에 대한 그녀의 완전한 신앙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신앙으로 ‘계약의 궤’가 되었고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다. 여기서 엘리사벳은 최초로 축복의 인사를 한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45절). 이제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언자를 거쳐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흘러 내려온 이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하느님의 위대한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마리아와 같이 ‘당신의 말씀대로’(루가 1,38) 우리에게 행하시도록 그분께 온전히 맡겨드림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알고 또 그렇게 실천하여야 한다.

제2독서: 히브 10,5-10: 하느님, 저는 당신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보다도 더 온전히 당신을 아버지께 의탁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다 바치시기까지 하셨음을 2독서에서 저자는 말하고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뜻을 항구히 아버지께 봉헌함으로써 가장 이상적인 희생을 실현시켰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예수께서는 “단 한번 몸을 바치셨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10절). 주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바로 이 희생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곧 다가오는 성탄의 축제를 통해 거행하게 될 강생의 신비는 근본적으로 파스카 신비에 정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리아께로부터 받은 육은 성금요일의 희생적 봉헌을 위한 것이며, 부활 날 다시금 그 몸을 둘러싸게 될 영광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를 받아들임으로써 마치 엘리사벳이 한 것처럼 마리아도 받아들이게 된다. 마리아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삶을 본받을 수 있을 때, 즉 ‘걸음을 서둘러’(39절) 이웃으로 향할 수 있을 때, 비록 그 여정이 험하고 고통을 수반하겠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 즉 사랑을 낳아줄 수 있는 자가 될 것이다. 이 여정에서 우리는 또한 십자가의 신비와 파스카의 기쁨도 아울러 충만히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쁨 때문에 우리는 더욱 주님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릴 수 있고 사랑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마리아께서 아들을 잉태하시고 낳아 주실 수 있었던 그 삶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그 삶을 본받아 실천하도록 주님의 은총을 청하면서 이 미사를 봉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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