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각자의 마음에 구유를 만들자[유영봉신부님] / 2006.12.24

2006. 12. 26. 오전 9:39:48

글자
각자의 마음에 구유를 만들자.

-마산교구 유영봉 신부-

묵상길잡이 : 유다인들은 메시아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그 숫한 역사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다. 예언자들의 대를 이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마리아의 겸손된 순종으로 역사의 현실이 된다. 하느님은 보잘것없는 이들을 통해 큰 일을 하시는 분이시다. 내 안에도 겸손과 순종으로 도배한 구유를 만들자.

1. 메시아 대망(待望)으로 버틴 민족

일찍이 역사학자 토인비는 "소수민족이 오랜 기간 동안 큰 민족들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리다 보면 큰 민족에게 흡수 소멸되고 만다."는 역사법칙을 이야기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 법칙을 뛰어넘었다. 이스라엘은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폐르시아, 이집트, 희랍, 로마 등 역사를 주름잡던 열강들의 세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끊임없이 시달렸다. 일반적인 상식대로라면 이스라엘은 강대국에게 흡수되어 역사에 그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용케도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야훼 하느님께서 메시아(구세주)를 보내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는 희망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희망은 모든 고난을 이기게 하는 힘을 준다. 예언자들은 메시아가 태어날 때와 장소와 가문과 그 행적에 대해 계속해서 일깨웠던 것이다. 오늘의 1독서에서 미가 예언자는 작은 고을 베틀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영도자가 태어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이 희망으로 모든 시련의 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도 로마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며 그 어느 때 보다도 이 '메시아 대망(待望)'의 기다림은 팽배해 있었다.

2.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마리아의 순종으로 현실이 되었다

메시아를 보내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수 천년을 기다린 끝에 나자렛 시골처녀의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하는 겸손된 신앙의 순종으로 비로소 실현되게 되었다. 영원으로부터 하느님의 뜻 안에 있던 구원계획이 어떻게 역사에 실현되는 지를 우리는 여기서 똑똑히 보아야 한다.

오늘 복음은 마리아가 예수 아기를 잉태하고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성령을 가득히 받은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향해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하고 외친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약속을 믿었을 뿐 아니라, 남자를 모르면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순수한 믿음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마리아의 이 믿음의 응답은 하느님의 계획이 역사 안에 실현되도록 하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 것이다. 마리아의 신앙적인 순종으로 말씀이신 성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 역사에 오시게 된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신앙 없이 구원 없음'을 보게된다. 구원계획은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쥐고 계시지만 항상 인간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

3. 하느님은 보잘것없는 이들을 당신 도구로 택하신다

인간은 하느님의 파터너 이다. "구원의 역사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으로 엮어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하느님은 보잘것없는 도구를 통행서 엄청난 역사를 이루심으로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시는 분이시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하느님은 기꺼이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주신다는 것이다. 이들이 흔히 말하는 '야훼의 가난한 자(아나빔 : anawim)'들이다. 하느님 외에는 어떤 배경도 없는 자, 힘없고 가난하고 약하지만 하느님을 두려워 할 줄 아는 자 들이다. 큰소리 한번 못 치지만 묵묵히 자기 일에 충실한 이들이다. 생선가게에서 거스름돈 몇 백 원이 더 오면, 그것을 빨리 못 돌려줘서 안달을 하는 고운 양심을 지닌 이들이다. 요셉도 마리아도 사도들도 예언자들도 모두 이런 '야훼의 가난한 자'들이었다. 나도 '야훼의 가난한 자'중에 들 수 있는가?

참으로 주님은 교만한 자들을 흩으시고, 권세 있는 자들을 자리에서 내치시며,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시고, 배고픈 사람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며, 부요한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시는 분이시다.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때 읊은 마리아의 노래(마니피캇는)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보여준다.

내 마음에 작고 예쁜 구유를 만들자

대림시기가 막바지에 이른 이 때, 우리를 구원하러 인간의 비참 속에 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굳게 믿고, 나를 낮추어 기도와 속죄를 함으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예수 아기로 태어나시도록 해야겠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기도와 보속과 선행을 통해 작은 구유를 준비하고 있는가? 인간적인 계산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겸손된 신앙으로 나를 내 맡길 때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내 안에 새로이 태어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또한 구원의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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