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인간의 탄생[이제민신부님] /2006.12.25

2006. 12. 25. 오후 5:31:44

글자
1. 인간의 탄생 - 어른들에게 전하는 아기의 메시지

-마산교구 이제민 신부-

인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행복과 구원을 갈망하고 있다. 지금의 처지가 어떠하기에 인간은 거기서 벗어나 구원되기를 원하는 것일까? 구원을 갈망하면서 인간은 어떤 처지에 놓여지기를 바라는 것일까? 새로운 처지에 도달한 인간의 구원된 모습은 어떤 모양을 띠고 있을까? 성탄은 이런 물음에 대하여 답변을 준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하는 성탄 날, 그리스도인은 인류가 갈망해 오던 구세주께서 오셨다고 기뻐한다. 아기 예수는 구원된 인간의 원형인 ‘새 인간’이다.

그런데 구원의 이 기쁨을 해마다 노래해왔건만 세상은 나아진 것 같지가 않다. 성탄을 축하하는 민족의 수는 해마다 늘어만 가는데, 축배의 잔에는 구원을 체험한 인간의 기쁨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려는 인간들의 탐욕이 가득하다. 범죄는 늘어만 가고 인간의 마음은 온갖 고민으로 속박당하는 것 같다. 이 세상 어디서 구세주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을까? 어디서 우리는 가난이 되어오신 아기 예수의 숨결을 들을 수 있을까?

2. 아기와 어른

세상이 참 기쁨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구세주가 찬란한 옥좌에 앉은 대왕의 모습이 아니라, 초라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탄생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세주라면 어쩌면 막강한 왕으로 왔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인간은 강한 것(강력한 정부, 강력한 교회)으로부터의 지배는 원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약한 존재를 무시하고 지배하려는 힘의 논리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세주가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다. 인류가 갈망하던 구원이 이 아기에 달렸다고 믿기에는 그분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 그러나 바로 여기에 구원의 신비가 주어져 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이 존중받는 날, 인류는 구원을 체험할 것이다. 화려함과 강함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날, 인류는 구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인류는 구세주 아기의 비참함과 무력함에는 아랑곳 없이 비정할 정도로 능력 있는 어른의 눈으로만 주님의 탄생을 바라보았다. 돈과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는 어른들의 눈에는 성모님의 난처한 처지나 가난한 요셉의 입장, 아기 예수의 처량함은 보이지 않고 다만 그 아기 예수가 그들의 구세주라는 것만이 보였다. 하느님이 무력한 아기 예수로 오셨다는 사실에는 눈도 돌리지 않고, 다만 그들을 구원해 줄 구세주가 오셨다는 도그마만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직업과 힘을 뽐낼 수 있는 화려한 잔칫상을 차려놓고 그 앞에서 성모님도 요셉도 흥겹게 즐기며 낭만적인 밤을 함께 지새우기를 바랐다. 구세주 탄생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구원을 체험하지는 못했다.

이리하여 2천년이 넘도록 인류가 성탄을 기념해왔지만 세상은 으레 능력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베풀어지고 있다. 날이 갈수록 돈과 직업 가진 자들로 세상은 다스려지고, 실업자나 무능력한 자들은 기를 펴지 못하고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직업과 직무를 장악한 능력 있는 자들이(교회 안에서도 돈 없는 자는 회장직을 맡기가 어렵다) 무력하고 없는 자들 위에 군림한다. 노인, 어린이, 청소년, 실업자 등 무능한 사람들의 운명은 힘있는 자들의 손에 달려있다.

인류의 미래도 마치 그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계평화의 유지는 그들의 손에 달려있으며, 그들은 전쟁을 일으켜 인류를 파멸로 몰 수도 있다. 지구촌 곳곳에서 매일 수만 명의 어린 생명들이 기아로 숨져가는 사이에 권력을 쥔 어른들은 어마어마한 금액(일분에 거의 2백만 달러)을 무기구입에 퍼붓는다. 경제논리로 무장한 어른들은 바다를 오염시켜 온갖 물고기를 떼죽음당하게 할 수도 있고, 환경을 오염시켜 지구를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별로 만들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지구의 자원과 에너지원을 마구 써 고갈시킴으로써 후손들에게 막중한 빚을 넘겨 줄 수도 있다. 어른들의 횡포로 마구 잠식당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는 어른들이 바로 신이다.

능력 있는 어른들은 인간의 삶을 돈으로 환산하려 한다. 직업과 수입이 없는 무력한 사람은 아예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 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기를 쓴다. 그렇게 차지한 재물은 좀처럼 내어놓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지키려 한다. 그리하여 힘과 권력을 쌓는다. 역사적 교훈을 통해 자기만을 위한 소유가 결코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으련만, 역사적 교훈을 외면한 채 사람들은 소유로써 남으로부터 인정받고 위신과 체면을 세우고자 한다. 그리고 돈과 권력으로 포장한 명예를 내세운다.

부와 권력과 명예가 지배하고 경력이 우선시 되는 세상에서 작고 힘없는 어린이는 돈만 드는 짐이다. 어린이는 권력을 향하여 나가는데 방해가 된다. 그리하여 어린이는 어른들로부터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때로는 학대받고 생명의 존엄성에 상처를 받는다. 어린이는 어른들에 의해 어린이가 아니라 ‘작은 어른’이 되도록 강요받는다. 어른들의 눈에 어린이들은 소비자일 뿐이다.

어린이들을 위한다는 옷과 장난감도 어린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의 돈벌이용 도구일 뿐이다. 유명 메이커의 옷을 입은 어린이들은 더 이상 어린이로서가 아니라 작은 어른, 애어른으로서 행동한다. 어린이를 어른을 닮은 어릿광대로 만드는 세상에서 어린이의 순수성을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어린이의 순수가 되찾아지는 날, 그 순수가 존중되는 날, 인간성이 회복될 것이다.

3. 인간성 회복

성탄은 바로 이 어른들의 힘의 신화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다. 성탄은 어른들의 이 폭력적인 주권을 경축하는 행사가 아니다. 성탄은 새로 태어난 아기의 무력함을 축하한다. 그 무력한 아기가 세상의 구세주임을 경축한다. 성탄은 아기의 축일이다. 이는 커다란 변화이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주는 의미를 지닌다. 아기 예수의 탄생은 어른의 세계에 새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다. 어린이를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시간이다.

새로 태어난 아기 예수와의 만남은 모든 인간들로 하여금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기 좋아하는 어른됨을 극복하고 어린이의 순수성을 회복하여 인간이 되도록 한다. 아기 예수와의 만남은 사람들이 모든 형태의 계급주의(위계질서)를 아기로 오신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이를 통해서 파국을 극복하고 인간화의 길을 걷게 한다.

성탄은 어린이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인류에게 어린이의 순수성과 천진난만함을 되찾아준다. 아기 예수는 어른을 인간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자기 안에서 이 아기를 찾아 인간이 되어야 한다. 여관집의 주인도, 초원의 목동도, 궁중의 헤로데도, 동방의 박사들도, 구유의 마리아와 요셉도 발가벗은 이 아기를 통해 인간이 누구인지 배워야 한다.

성탄은 어른들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어른주의에 사로잡히지 말아라. 삶의 원천으로 다시 돌아 오라. 하느님의 순수와 젊음을 만끽하라. 어린아이를 애어른으로 만들지 말라. 하느님의 젊음과 어린 아이의 순수를 발견하라.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느님의 아들 딸들이며, 예수의 형제 자매들이며, 모든 인간들을 공동체로 부르고 새 하늘 새 땅을 창조하실 성령의 담지자이다.

4. 새 역사의 시작

아기 예수의 탄생과 함께 인류의 역사가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마태오는 예수의 족보를 밝히면서 새 인간의 가문을 빛내기에는 너무 많은 죄로 얼룩져 있는 부끄러운 인물들까지 나열한다. 부끄러움을 드러낸다는 것은 인간의 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오가 이런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은 것은 예수의 탄생이 하느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암시하려는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처녀잉태도 예수의 출생이 성령에 의한 것임을 말해준다. 구원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힘을 가진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던 인류의 역사가 말구유에서 탄생한 보잘 것 없는 아기를 중심으로 새롭게 쓰여지고 있다. 아기로 태어나신 구세주 예수는 어른의 힘을 무력하게 만든 새 인간, 성령의 인간이다. 성령의 인간은 남자와 어른의 힘으로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야훼께서 구원하시다’라는 뜻인 예수는 새 인간의 이름이다. 이 이름에는 인간과 하느님의 모든 원수를 굴복시킨 완전한 승리의 의미가 담겨 있다. 예수는 새 인간으로서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다. ‘주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말은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말이다.

성탄,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축한다. 그리스도는 이미 탄생하셨다. 탄생을 축하하는 인류의 마음 안에 그리스도는 이미 오셨다. 구세주는 우리들 마음 안에 아기로 이미 탄생하셨다. 문제는 이미 우리 마음 안에 탄생하신 그분의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성탄의 기쁨과 구원을 느끼기 위해 인간은 단순히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만 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스스로 성령의 인간, 새 인간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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