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 성탄 자정 - 방효익 바오로 신부님 /2006.12.25

2006. 12. 25. 오후 5:28:29

글자
온 세상은
오늘 이 밤을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고 합니다.
구세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고 복음사가는 전합니다.

오늘은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의 탄생을 찬미하려고 모였습니다.
루카복음사가는
천사들이 목동들에게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가 2,10-12)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가르쳐준 예수라는 이름 이외에
또 다른 세 가지 이름이 천사들에 의해 알려집니다.
“구원자이시고,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포대기에 싸인 채로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로 나타나셨는데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위한 표징이라고 합니다.

“구원자-주님-그리스도”라는 엄청난 이름에 비해
“포대기-구유-아기”라는 세 가지 초라한 조건이 커다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에 대해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랄 정도로(마태 2,1-6)
베들레헴이라는 곳을 우습게 여겼었습니다.

이 밤에 온 세상은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 구원자, 포대기에 싸인 그리스도,
초라한 구유에 자리를 잡으신 주님의 오심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구원자이시며,
세상의 주인이시고,
구세주라는 분이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셨다는 이 소식은 분명 놀랄만한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기를 넘어서, 대륙을 넘어서,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지라도
온 세상이 모두 나름대로 이 날을 기념하고,
기쁨의 날, 사랑의 날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밤에 우리 곁에 오신 주님께서는,
오늘 제2 독서(티토 2,11-14)의 말씀대로,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내어주실 것이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해방하시고 또 깨끗하게 하시어,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는 당신 소유의 백성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티토 2,14).

루카복음은
호구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여관에는 들어갈 자리도 없었으며(루카 2,7) 마리아의 해산날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예고대로 참으로 임신을 했었고,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인간의 아들이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간신히 비집고 들어간 여관 앞 문간,
혹은 어느 집 헛간,
동물들이 잠자고 있는 곳에
갓 태어난 한 어린아이가 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입니다.
아버지로 따라온 요셉은 충실한 문지기가 되었고(마르 13,32-37 참조),
은총을 가득히 받은 어머니 마리아는
어머니가 되었다는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높으신 분의 힘을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오늘 제1 독서(9,1-6)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느님” 즉 “임마누엘”의 탄생으로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친다고 합니다.

어두운 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구세주께서는 날이 밝자마자
많은 이들이 찾아와서 당신께 경배하는 모습을 보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예언자는
전쟁을 상징하는 군사적인 용어들(이사 9,3-4)과 함께
임마누엘의 탄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언자는
이런 군사적 형상들을 통하여 아시리아의 군대의 만행을 말하는 것이지만
암흑과 어둠,
그리고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다가
아기의 연약함과 초라함을 비교하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태어난 아기를 이사야 예언자는
“평화의 왕자”(이사 9,5)로 부르면서
“끝이 없는 평화”와 “공정과 정의”(이사 9,6)가 실현될 것을 말합니다.
아기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전쟁은 평화로 바뀌고 있으며,
암흑은 빛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바뀐다는 뜻입니다.

과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우리에게도 이럴까요?
사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선포는
오늘도 이사야 예언자의 말대로 전쟁과 무질서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런 절망의 상황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희망의 최종적인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임마누엘”(이사 7,14; 마태 1,23)이라는 이름만 가지고는
표현이 다 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태어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놀라운 조언자,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자”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아기에게 또 다른 이름을 붙여주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희망의 절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구세주의 이름을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분,
즉 “예수”라 부르라고 했고(마태 1,21),
바오로 사도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다.”(티토 2,11)고 합니다.
이런 희망적인 이름들이 바로 오늘 태어난 어린 아기의 이름입니다.

구원자이신 아기 예수님은 인간적 연약함에 감싸여 있습니다.
아기의 탄생을 간략하게 전하는 베들레헴 사람들의 표현과
복음사가들의 생각이 우리가 보기에는 원시적이지만
깊은 신앙적 표현방식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캄캄한 밤에 달과 별들이 잔뜩 걸려있었다고 합니다.
수많은 별들 가운데 유난히 밝은 별이 빛나고 있으며,
밤의 적막 가운데서도 야생동물의 소리가 있는 산과 광야가 있고,
집짐승들과 목동들이 어우러져있고,
빵을 굽는 베들레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자(요셉)와 여자(마리아),
높으신 분의 힘과 동정성이 어린 아기의 근처에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시는 곳에 하느님의 계획과 더불어 모든 피조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늘 낮을 밝히는 사람들은 깜깜한 밤에 준비를 하듯이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과 함께
깜깜한 밤에 새로운 시작을 하신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어린 아기 앞에서는 무관심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기 엄마는 물론이요
어른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어린 아기는
외형적으로는 연약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엄청난 가능성을 담고 있습니다.
초라한 곳에 누워있기 때문에
어른의 보살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은
인간 구원이라는 엄청난 은총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는
연약함과 무한한 가능성,
그리고 동정성이라는 깨끗함과
거룩하신 분의 힘이 함께 어우러지는 신비가 가득 차 있습니다.

포대기에 싸여있는 신비 덩어리인 아기 예수는
아직도 구유에 머물러 있으면서
착한 목자가 될 당신을 미리 말해주는 목자들의 시선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이들이
우리 인간을 위한 위대한 표징(루카 2,11-13)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열심히 섬기겠다고 다짐을 수없이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보다도
비록 이방인들이지만
현명하고 지혜로운 이들이 포대기를 들춰보고
그분이 참으로 구세주심을 고백하기를 기다리십니다(마태 2,1-12).
답답하게 막힌 통이 아니라
늘 하늘로 열려있어
누구든지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바라볼 수 있는 구유 속에,
포대기에 싸여 있는 아기는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비 덩어리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성경을 들춰볼 때 신비인 예수님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감싸고 있는 포대기는 신비를 감싸고 있는 덮개입니다.
신비를 감싸고 있는 덮개를 들춘다는 것은 성경을 들춰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포대기를 성경으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포대기를 들춰볼 때 아기를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듯이
성경을 들춰서 읽어볼 때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신비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예수님의 탄생을 찬미하고 감사를 드리면서
예수님을 감싸고 있는 포대기를 들춰보는 일,
즉 구원의 신비를 적어놓은 성경을 읽고, 쓰기를 실천할 것을 다짐합시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삶의 방식으로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함께
여러분 모두에게도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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