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라 희망없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강렬하게 나를 자극 시킨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하라 희망 없이”란 말이다.
사실 이것 때문에 많이 생각했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 희망이 없이 사랑할 수 있을까?
스스로 내린 결론이 있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변화하고 진실이 없고 정의가 없고 존재에 대한 의미가 없다고 해도
그 희망 없는 곳에도 사랑할 것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란 사랑 안에 줄곧 생각해오던 희망이 있는 것이다.
힘들 때나 어려울 때 항상 가지고 있던 그 희망.
가슴이 아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순간에도
희망이 있다고 스스로에게 희망을 이야기 해 본다.
옛날 일이 떠오른다.
한 때 무척이나 가난한 적이 있었다.
이리 저리 집 때문에 많이 이사도 다녔고,
등록금을 못 내서 교무실에 불려간 적도 많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 뜻이 맞는 친구들과 “미리내”라는 동아리를 만들었다.
이 동아리는 매주 토요일 고아원을 방문해서,
고아원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먹을 것도 주고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처음에 4명으로 시작한 이 동아리가 점차 회원수가 많아져서
전학년에서 30명가량이 함께 하였다.
그때 나는 고아원과 비슷한
모자원(母子가 사는 가정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곳)에서 살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학생들 중에서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고,
초등학생부터 중학생들이 50명정도 있었다.
맏형으로서 동생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던 어느 날, 모자원에 미리내 동아리가 방문했다.
그때 나는 고3이라서 미리내 회장 자리를 물려주고 난 뒤라서
활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곳에 후배들이 봉사활동 왔다는 사실이, 자존심도 상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하지만 모자원을 방문한 후배들은 모두 나를 일부러 모른 척했다.
“이 집에 제일 큰 형이 누구냐?” “그 형이 그렇게 착하다며”
“그 형이 그렇게 너희들에게 잘 해 준다며”
“그 형이 나중에 신부님이 될거라며”
“너희들도 그 형처럼 착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해”
후배들이 돌아간 후에 모자원에 있던 동생들이
“와! 형 대단하다.”
“형! 만세”
“나도 형처럼 살거야”
가난으로 주눅든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
그리고 한 선배의 상처를 소리 없이 감싸 않아 줄려고 했던
후배들의 마음에 그날은 왜 그렇게 눈물이 자꾸 흐르던지..........
시간이 흘러 난 사제가 되었고 지금 교도소에 관련된 사목을 하고 있다.
희망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죄인들과 늘 함께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 모두 손가락질하는 그들과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복음을 나누고,
깊은 면담도 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남을 배려하고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준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세상이 아무리 비인간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해가더라도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지금 세상이 아무리 변화하고 진실이 없고
정의가 없고 존재에 대한 의미가 없다고 해도
그 희망 없는 곳에도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이것이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당신 목숨을 걸고 가르쳐준 진리이다.
그러기에...
교도소......그 희망 없는 곳에서도 진실히 진실히 사랑해야하는 이유다.
난 예수님과 같은 꿈을 꾸고 싶다.
“사랑하라 희망 없이”
- 박 안드레아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