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신앙은 시작이고 사랑은 마침입니다- 이기양 신부님 /2006.12.21

2006. 12. 23. 오전 12:28:53

글자

<12월 21일>                    신앙은 시작이고 사랑은 마침입니다

 

제 1독서 : 아가 2,8-14 (보셔요, 내 연인이 산을 뛰어넘어 오잖아요.)
복    음 : 루카 1,39-45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성모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게 될 것이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예고를 듣고 몹시 당황하였지만 성령의 힘으로 말미암은 잉태이며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감싸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하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는 마리아의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산골 마을을 찾아간 이유는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을 만나기 위해서였지요.

   성모님이 방문한 유다 산골의 이 작은 마을을 성경학자들은 ‘아인카림’이라는 마을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올리브 나무와 포도나무들로 둘러 쌓인 아름다운 이 마을에서 유명한 어머니가 될 두 여인이 운명적으로 만나고 있지요. 지금 그 곳에는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의 집이라고 추측이 되는 동굴이 보존되어 있고 성모 마리아 방문 기념 성당이 세워져 있으며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을 기념한 대형 성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성모님은 이 곳에서 여인 중에 가장 복되시다는 엘리사벳의 찬송과 하느님의 넘치는 은총을 확인하며 감격에 넘쳐 ‘마니피캇’을 노래하였습니다. 그 마니피캇이 성당 담에 41개국의 언어로 쓰여져 붙어있지요. 물론 우리나라 말의 마니피캇도 있습니다.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루카1,39-40)
   복음에서는 마치 옆 동네를 방문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서술되어 있지만 성모님이 계시던 나자렛에서 이 아인카림까지는 130Km가 넘는 대단히 먼 거리였습니다. 서둘러 걸어가도 3~4일이 걸리는 곳이었으며 더군다나 산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험한 길이었지요. 성모님 같이 어린 여인이 가기에는 무척 험하고 먼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성모 마리아는 이 험한 길을 서둘러 걸어가서 엘리사벳을 찾아간 것일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열 서너 살의 나이에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리라는 사건에 접한 마리아에게 어찌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그런 일이 정말 자신에게 일어날 것인지, 천사의 예고는 사실인지, 장차 일어날 이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인간적인 갈등과 두려움이 참으로 많았을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이런 인간적인 갈등은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아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인간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 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루가1,34)
   그러자 가브리엘 천사는 구체적인 표징을 들어 설명합니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다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1,36-37)
   이 말을 들은 마리아가 대답하지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마리아가 바로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사촌 엘리사벳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표징을 확인하고 싶고, 또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끼리 만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리아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벳은 아직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를 보자마자 이렇게 큰 소리로 찬미하지요.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1,42-45)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된 이라고 확신에 차서 외치는 엘리사벳의 반응을 접한 마리아는 감격에 겨워 하느님께 감사의 찬미가를 바칩니다. 그들의 애타는 기다림이 성취된 것에 대한 감사의 노래이지요. 마리아는 이 곳에서 삼 개월 가량을 머무르다가 나자렛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복음을 들으며 우리 삶에서 다음 두 가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첫째로 마리아는 주님의 탄생이 예고된 다음 바로 유다 산골에 있는 엘리사벳을 방문하여 문안 인사를 드리는데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은 서로 상통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심은 서로 간에 상승작용을 하여 더욱 깊어집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공동체가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것입니다.
   신심이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 안에서 서로 나눔으로써 믿음이 깊어지고 성장하지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공동체를 벗어나 세속적인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면 그 순간 다 무너져버립니다. 관심이 다른 사람과의 어울림은 신심을 흩어지게 하고 세속에 물들게 합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지요. 세속적인 사람들은 세속적인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고, 신심 있는 사람들은 신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됩니다.
   신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일어납니다. 신자 중에서도 복음적인 사람들끼리 모이는가 하면, 반대로 남에 대해서 쉽게 말하기를 좋아하고 비판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사람들끼리 모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안타까운 모습이지만 이것이 우리 부족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남에 대한 험담은 삼가십시오. 험담은 스스로의 신심을 갉아먹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서로 격려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언제 어디서나 감사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대부, 대모의 만남도 참 중요하지요. 대부, 대모를 잘못 만나서 냉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부모가 지나치게 인색하거나 남에 대해서 험담만을 일삼으면 그 신앙의 자녀 또한 같이 닮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의 모범은 대부모가 아니라 하느님임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서로 간에 신앙이 성장하고 깊어지며 하느님 안에서 기쁨으로 상통하는 관계가 되도록 각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오늘 복음에서 묵상할 것은 마리아에 대한 엘리사벳의 태도입니다. 늙어서 아이를 갖지 못한 나이였던 엘리사벳은 기껏 열 서너 살이었던 마리아를 만나서 이렇게 겸손되이 외칩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루가1,43-44)
   인간적인 혈육 관계나 나이를 떠나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에 대한 공경과 칭송이 아름답게 드러나고 있지요.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을 방문하셨을 때는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인간 요셉의 아들로만 보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서 기적을 행하실 수가 없으셨지요.
   신심이 없는 사람들은 사제나 수도자, 그리고 열심히 일하는 봉사자들을 인간의 모습으로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 깃 든 하느님의 뜻을 볼 줄 압니다. 그리하여 본인의 신심도 함께 상승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에 대해서 쉽게 말하고 수녀에 대해 말이 많은 안타까운 신자들의 모습을 가끔 보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본인들의 신심이 자라지 못하고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혀 고민하고 방황하는 모습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우리의 신심이 자라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명하는 겸손한 마음이 반드시 선행되어야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모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사건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 늙은 나이에 어떻게 아이를 임신할 수 있었겠습니까? 또 동정녀가 어떻게 아이를 잉태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탄은 하느님의 은총이 내리는 날입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섭리가 드러나는 사건이지요. 우리 또한 그 사건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라고 하신 성모 마리아처럼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놀라운 기적을 불러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신앙의 성숙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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