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2주 화요일
목자와 길 잃은 양
유다에서는 양이 길을 잃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목초지대는 이 나라의 고원지대에 마치 사람의 동뼈 모양으로 좁고 길게 내려뻗쳐 있어서 그 폭이 3-5키로미터 정도이다. 거기에는 울타리도 없어서, 양드러이 여기저기 있는 풀을 뜯기 위해 다니다 어느 벼랑에로 들어가게 되면 움직일 수가 없게 되어 흔히 죽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의 목자들은 자기 양을 잃어 버린 줄 알게 되면, 양의 발자취를 찾아 몇키로 미터씩 찾아나서고, 대담하게도 벼랑이나 절벽을 타고 내려가 양을 끌어올리곤 했다. 또한 예수님 당시에 유다 나라에서는 양떼들은 마을 공동소유로 키웠고, 여기에는 두 서너명의 목자들이 관리했다. 그렇기 때문에 99마리의 양을 남겨놓고 잃어버린 1마리를 찾으려고 떠날 수가 있었다. 만일 이 양떼들을 돌보는 사람이 혼자인데 그것을 돌보는 이없이 남겨놓고 떠난다면 양들은 더 많이 흩어질 것이다. 그래서 그럴 때는 자기 동료 목자에게 맡겨 두고서 떠났던 것이다.
이와같이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는 언제나 위험을 무릎쓰고 희생적인 노력을 각오해야 되는데, 양을 산채로 데리고 돌아올 수 없게된 경우에는 그 양이 죽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털이나 뼈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 그들의 규칙이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목자들이 저녁 때 양들을 데리고 마을로 돌아오는데, 어느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마을 사람들이 들었을 때, 온 마을은 그 목자와 그 양이 돌아올 때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장면을 연상해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기진맥진한 목자가 잃은 양을 어깨에 메고 마을 어귀로 돌아오는 모습을 본다면 마을 사람들은 으례히 함성을 올렸던 것이다. 잃어버렸던 그 양을 다시 찾은 그 기쁨을 온 마을이 공동으로 기뻐했던 것이다. 이러한 자기 나라의 생활환경을 잘 아시는 예수님이시었기에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예수님은 이렇게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해 자주 설명해 주셨던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의 이러한 비유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1) 무엇보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 사람들 중에서 "이러이러한 사람은 안되고, 어느 누구를 제외하고서는, 아흔 아홉만으로 만족하시는 분이 아니고, 나머지 하나까지도 다 찾으시는 사랑이시다. 길을 잃고 벼랑에서 헤매는 그 한 마리 양까지도 찾아 집에 돌아와야 안심하며 만족하시는 목자이신 하느님이시다" 라는 점.
2) 하느님의 사랑은 참으시는 사랑이시다는 것. 양이란 순하기도 하지만 어리석은 동물이다. 양이 죽을 위험에 빠지는 것은, 자기가 나쁜길로 들어서는 것이지 누가 나쁜길로 들이모는 것은 아니다. 흔히 사람들은, 누가 어떤 문제를 일으켜 고통을 당할 때, "그것은 그의 실수이고, 그러했으니 당연히 받는 고초야" 한다. 양은 어리석어 죽을 위험에 제발로 떨어지지만, 목자는 이 어리석은 양을 구하기 위해 자기 생명을 건다. 사람들은 어리석고 자신이 나빠서 죄를 범하고, 불행을 초래하지만, 하느님이 어리석은 죄중에 있는 양을 사랑하시며 목숨을 거신다는 것이다.
3) 하느님의 사랑은 "찾으시는 사랑"이시다 라는 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목자는, 양이 제발로 걸어들어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양을 찾으러 나갔다는 점이다. 즉, 예수님은 주인이신 하느님을 잃고 방황하는 자들을 찾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고, 당신의 죽음을 통해서 값비싼 대가를 치루시면서, 죄많은 우리를 찾아주신다는 사랑을 할 수 있다.
4) 하느님의 사랑은 "기뻐하시는 사랑"이시다.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아가지고 돌아왔을 때 나타나는 기쁨은, 길을 잃었었다는 책망과 멸시 징계와 보속의 모습은 없다. 흔히 우리들은 잘못한 이가 그 잘못을 뉘우쳤다고 할 때, 도덕적인 훈시나 징계를 하거나 또 그를 믿어주지 못하거나, 조건을 붙인 화해에 머무르며, 그의 실수를 늘 기억하여 접어놓고 대하게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죽었던 내 아들이 다시 살아났고, 잃었던 내 아들을 다시 찾았다는 기쁨만으로 우리를 영접하시는, 우리가 생각해 보지도 생각할 수 없는 기쁨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출처: 가톨릭대학교 강론자료집 / 정리: 김웅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