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 이기양 신부님

2006. 12. 12. 오후 6:27:36

글자

대림 제2주간 화요일


복음 : 마태 18,12-14


찬미예수님


여러분들은 아마 어릴 적에 쉘 실버스터인이라는 작가가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동화를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이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먼 옛날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처음에는 그 나무의 나뭇잎으로 왕관을 만들기도 하고 나무에 올라가기도 했으며 그 나무의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이 커서 청년이 되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는 처음에는 자신의 사과열매를 그리고 그 다음에는 나뭇가지를 그 다음에는 줄기를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나무밑동을 내주었습니다.


우리의 눈에 그 나무는 참으로 바보같은 나무입니다. 소년은 나무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 소년은 어릴 적 나무와 놀았을 뿐이었고 크고 나서는 나무로부터 모든 것을 가져갔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무는 자신의 것들을 내어줄 때마다 행복해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에서 이런 나무와도 같은 사람을 한 사람 더 만나게 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목자입니다. 그는 양 한 마리가 길을 잃어 사라지자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섭니다.


목자에게는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에 대해 그 양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자에게는 다른 아흔아홉 마리에 대한 책임 또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남겨 둔 채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그 길 잃은 양을 찾게 되면 그 목자는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자는 양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소년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자신의 모든 것을 통해 그 소년을 사랑한 것처럼 목자도 양을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사랑했습니다. 사랑에는 이윤이나 타산,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해야 나에게 더 이로운지에 대한 계산이 없습니다. 다만 내가 사랑하는 대상을 사랑할 뿐입니다. 오히려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께 이 세상은 모두 사랑 덩어리들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하나도 하느님의 손길과 사랑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 6장 30절에서는 오늘 서 있다가도 내일이면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까지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신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일 당장 불에 살라질 들풀조차 사랑하셔서 입혀주시는 하느님께는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소중한 것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옛 말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중요한 손가락, 하찮은 손가락 할 것 없이 깨물면 모두 똑같이 아프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 우리는 모두 깨물으면 아픈 손가락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사물들도 하느님께는 깨물면 아픈 손가락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작은 것 하나라도 잃지 않기를 바라신다고 말씀하시며 우리도 우리가 받은 것들 중 작은 것 하나라도 잃지 말것을 말씀하십니다.


오늘 잠시 동안이라도 하느님께 우리가 받은 것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돌보고 있는지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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