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렁이 - 민경철 신부님

2006. 12. 12. 오후 6: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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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2.화

 

마태오 복음 18장 12-14절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누렁이      민경철 신부
제게 누렁이란 순종 똥개가 있었습니다. 목숨을 바쳐 주인에게 충성을 바친
놈이지요. 본당을 떠날 때 이 녀석과 헤어져야 했던 아픔이 되살아나는군요.
어느 날 사제관에 침투한 동네 건달 진돗개 두 마리를 응징하기 위해 혈투를
벌였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더랬죠.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수술을 하든가 아니면 안락사를 시키든가 결정을 내려달라 하더군요.
막상 수술비가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이 똥개 팔아도 사료비도 못 건지는데
이 녀석이 뭐가 대단하다고 돈을 들여야 하나? 하지만 곧바로 수술시켰지요.
인간적인 계산으론 어리석은 행동일지 모르지만 한 가족이 되어버린 녀석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생각… 계산해보니까 아흔아홉 마리 중 또 다른 녀석에게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길 잃은 녀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소중한 자식이기에
찾아 나서시는 것입니다.
저처럼 잠시라도 수술비 아깝게 생각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주님은 우리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던 분입니다(루카 12,7).
 생명
석달 반이나 남은 임신 기간 동안, 아기가 죽을 것임을 알면서 어떻게
부른 배를 안고 다닐 것인가? 식료품 가게에 갔다가 점원이 대수롭지
않게 예정일이 언제냐고 물으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지? 가브리엘의 진단을 받고 나서
암담하기만 했던 처음 하루 이틀 동안, 나는 양수검사가 가져올 수 있는
합병증의 하나인 조기 분만을 하게 되는 게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임신한 몸으로 돌아다니면서, 결국 나는
가브리엘이 아직도 내 뱃속에 안전하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사람들의 호의에 기뻐했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아이는
꼼지락거리거나 발로 차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가 딸꾹질을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배를 어루만져 아이가 자세를 바꾸도록 할 수도 있었고, 배에
닿는 부분이 신체의 어느 부위인지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아이의 머리였을까?
아니면 보나마나 앙증맞고 귀엽기 짝이 없을 엉덩이였을까? 아이가 점점 자라
태어날 자리를 잡자, 배꼽 바로 오른쪽에선 늘 아이의 작은 발이 느껴졌다.
어디를 가든 나는 아이를 함께 데려갈 수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몰아닥치면,
나는 아이를 보듬어 안고 위안을 얻었다. 가브리엘의 예견된 죽음에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는 제일 운이 좋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난 종종
친구인 톰과 진 부부를 생각했다. 톰과 진은 가브리엘의 출산 예정일로부터 거의 정확하게
2년 전에 딸 클레어를 태어나자마자 곧바로 저 세상으로 보냈다.
클레어는 염색체에 치명적인 이상이 있었고, 친구 부부 역시 태어나기 전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남은 임신 기간을 품위 있게 대처했다. 클레어는 태어난 지
한 시간 만에 아버지의 품 안에서 숨졌다. 나는 진이 했던 말을
기억한다. 아직 뱃속에 딸아이가 살아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임신 기간 내내
하루하루가 여전히 소중했노라고….

에이미 쿠에벨벡 | 해냄 | <가브리엘을 기다리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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