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더 가까이
예수 그리스도
길,
진리,
생명
1과. 하느님을 찾는 인간, 인간을 찾는 하느님
살아가면서 낯익었던 일상을 떠나 특별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우리는 곧잘 철이 듭니다. 외로움도 겪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도 느끼게 되며, 누군가를 필요로 합니다. 무엇이 소중한지, 누가 고마운지 불현듯 깨닫게 됩니다.
이때 우리 존재의 근원에 대해서 묻게 되고, 이윽고 하느님을 찾게 됩니다.
하느님을 찾는 인간
사람은 누구나 한계 상황에 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절대자 하느님을 찾게 마련입니다. 그러기에 힘들 때 우리의 입에서는 무의식에 숨어 있는 하느님을 향한 의탁본능이, 자신도 모르게 불시에 튀어 나옵니다. "하느님 맙소사!", "아이고 하느님", "하늘이 노할 일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아라", "하늘만은 아신다"---.
독일의 철학자 야스퍼스(1883-1969)는 한계 체험이 '최종적 포괄자'를 위한 암호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최종적 포괄자'는 우리가 음식점 종업원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사장 나오라고 그래!' 하고 소리칠 때의 바로 그 '사장'과 같은 최종 결재권자를 말합니다. 이를 우주적으로 이해한다면 '하느님'을 가리킨다고 불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시련이나 역경이 '최종적 포괄자' 곧 하느님을 찾게 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또한 부단히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행복, 평화, 금전, 권력, 명예, 애정 등, 그런데 사람은 이런 현세적이며 지상적인 그 어떤 것을 찾아 누려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보다 더 근원적인 것에 대한 그리움이, 바르고 착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하는 본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상대적인 그 무엇으로는 충족되지 않습니다. 절대적인 그 무엇만이 답이 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의 본능은 최고의 진선미인 절대자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사람은 고통을 통해서든, 절대적인 그 무엇을 향한 갈증을 통해서든 본능적으로 하느님을 찾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취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찾으시는 하느님
사람이 하느님을 찾는 것 못지 않게 하느님께서 먼저 사람을 찾으십니다.
BC1800년경 하느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을 찾아와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창세12,1-2)하고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하느님의 난데없는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명하여 마침내 모든 민족들을 위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BC1200년경 양을 치는 목자였던 모세는 어느 날 불붙는 떨기를 보고 있을 때 "모세야, 모세야"(출애3,4)하는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에 응답한 모세는 결국 하느님의 주도하에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해 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대업을 이루었습니다.
이윽고 하느님깨서는 BC550년경 이스라엘 바빌론에 끌려가 고생을 하던 시련의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모든 이들을 '구원의 잔치'에로 초대하셨습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물과 젖을 사서 마셔라"(이사55,1)
이는 오늘 우리를 위한 초대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적 양식이 필요하고, 영적인 물과 영적인 젖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장 바라는 평화, 구원, 영원한 생명, 행복 등이 그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차림으로 하여 잔치상을 준비해 놓으시고, '돈 없이', '값없이', 거저 먹으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종교심과 신앙심
종교는 말뜻 그대로 근본(宗)에 대한 가르침(敎)또는 근본(宗)이 되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은 결국 관계로 귀결됩니다. 즉, 세계와의 관계요, 동료 인간과의 관계요, 절대자와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종교는 관계의 근본에 대한 가르침 또는 관계에 있어서 근본이 되는 가르침이라고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심이란 이 세상 모든 관계 가운데에서 근본 관계, 으뜸관계, 바꿔 말해서 절대자 하느님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마음입니다.
믿음은 종교심과 약간 다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신앙(信仰)이요 믿음입니다.
'종교심'은 인간의 일방적인 '찾아나섬' 이나 '독백'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심' 곧 믿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구원에로 먼저 불러 주신 하느님과의 '관계 맺기'입니다. 신앙이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당신 말씀을 통하여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넘치는 사랑으로 마치 친구를 대하시듯이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과 사귀시며, 당신과 친교를 이루도록 인간을 부르시고 받아들이신다.' 이러한 초대에 합당한 응답이 바로 신앙이다."
여기서 '응답'이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 신뢰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그분의 뜻에 맡기고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겠다는 확고하고 용기있는 결심입니다.
자연 종교와 계시 종교
종교에는 자연 종교(自然宗敎)와 계시 종교(啓示宗敎)가 있습니다. 자연 종교는 출발점이 사람이고, 계시 종교는 출발점이 하느님입니다.
자연 종교는 인간이 자연 곧 우주 만물을 보고 종교심의 발로에서 인간 스스로 만든 종교를 말합니다. 이에는 토테이즘(totemism), 애니미즘(animism), 미신(迷信), 범신론(汎神論), 불교(佛敎) 등이 속합니다.
반면에 계시 종교는 하느님의 계시로부터 생겨난 종교를 말합니다. 계시(啓示)란 하느님이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말하는데, 원래 '자기를 현시하다'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apokalypsis)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유대교, 이슬람교, 그리스도교가 계시 종교에 속합니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계시는 역사적, 객관적 사건을 통해 나타난 계시를 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통해서 당신 자신의 존재와 인류 구원 계획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계획, 사랑, 구원 섭리 등을 드러내셨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계시는 사람에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응답하기를 요구하십니다. 바로 이 응답을 믿음, 곧 신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연 종교와 계시 종교의 차이는 시험을 치르는 예를 통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연 종교'는 정답을 모르고 문제집만 갖고 무언가를 더듬고 헤매는 것에 비유한다면, '계시 종교'(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가르쳐 주신 확실한 정답을 갖고 인생이라는 시험문제를 풀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계시를 통해서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확실한 답을 갖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신다.
당신 역시 스스로 성당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을 부르신 것입니다. 누군가를 통해 당신을 성당으로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다"(요한 6,44).
이처럼 당신을 성당으로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서는 이제 당신께서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간절하게 찾는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 주십니다. 지금까지의 삶에서 그 누구를 만났을 때의 애절함이나 설렘보다 더한 애절함과 설렘으로 더듬어 찾으십시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한 분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신명6,4-5참조).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
1)창조주 하느님
"누가 우리를 만들었으며, 우리는 여기에 왜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그리스도교는 창조신앙으로 답합니다. 그런데 현대 첨단과학의 '빅뱅이론'이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빅뱅이론은 우주가 대폭발(Big Bang)로 시작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첨단 과학 장비와 이론을 동원하여 우주 탄생의 시기와 과정을 관측한 결과 우주는 시공간이 하나로 응축된 어느 한 점(點)에서 탄생되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빅뱅 이론은 과학계에 청천벽력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이론이 의미하는 바는 궁극적인 기원(起源)에 대한 물음이 더 이상 종교적인 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과학 자체가 우주는 먼 과거의 어느 시점에 갑자기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링컨 바넷(Lincoln Bamet)은 <우주와 아인슈타인 박사(The Universe and Dr. Einstein)>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피할 수 없는 결론은 모든 만물에는 시작이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어느 때, 어떤 방법이었든 우주의 과정은 시작되었고, 별들에는 불이 붙었으며, 광대한 우주의 장엄한 광경이 존재하게 되었다."
쉽게 말해서 우주 밖에 있는, 자연계를 초월하는 어떤 존재가 이 우주를 존재하도록 만들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은 성서의 주장이 아니라 과학적인 증거를 문자 그대로 읽은 결과 얻어졌다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본래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년에 접어들어서 하느님을 믿게 됩니다. 평생에 발견한 자기의 수많은 지식을 통하여 하느님과 멀어진 것이 아니라 가까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는 말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러저러한 과학적 현상이나 스펙트럼에는 관심이 없다. 평생 해 봤으니까. 나는 하느님에 대해서 알고 싶을 뿐이다. 나는 하느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알고 싶다. 나머지는 사소한 일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한 과학자로 평가받는 그는 과학을 통해서 창조주 하느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2) 아빠(Abba) 하느님
각 종교마다 하느님을 다른 이름으로 부릅니다. 신, 하나님, 조물주, 옥황상제, 염라대왕, 상제(上帝), 천주(天主) 등등.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예수님이 친히 사용하신 아라메아어 '아빠(Abba)'로 부르도록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 아빠'라는 표현은 인간의 입으로 부를 수 있는 가장 친근하고 다정한 표현입니다. 이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때에 가장 호소력 있고, 위로가 되며, 사랑 어린 호칭이 되어 줍니다.
'아빠'라는 말은 본디 어린이 말입니다. 이렇게 친밀한 이름으로 하느님을 부른 사람은 일찍이 예수님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아빠'라는 이름 속에는 그야말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친밀성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아빠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자상하십니다.
첫째, 아버지는 우리의 필요를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마태 6,31-32).
둘째, 아버지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루가 11,11-13)
셋째, 아버지는 모든 자녀에게 공평하게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마태5,45).
아빠 하느님은 이처럼 좋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아빠'일 뿐 아니라 '엄마'이시기도 합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모성적인 성품을 곳곳에서 표현합니다.
첫째, 하느님의 '자비'를 표현하는 '라하힘'이라는 단어가 자궁 또는 모태를 뜻하는 '레헴'에서 왔다는 점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느님의 자비심은 부성애보다는 모성애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애절한 사랑이 젖먹이 어미의 심정에 비유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인이 자기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 자기가 낳은 아이를 어찌 가엾게 여기지 않으랴!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이사49,15).
이처럼 하느님은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어머니이기도 하십니다. 하느님은 '어버이'이십니다.
실천하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당신은 참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셨습니다. 물론 당신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이끌어 주시고 불러 주신 분이 하느님이심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 하느님의 초대에 참석한 당신이기에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큰 영광을 얻게 된 것입니다.
아직 기도하는 법을 배우지 않아 서먹서먹하겠지만 모든 형식을 무시하고 당신의 방법으로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바쳐 보십시오. 그리고 당신께 어떤 유혹이 있어도 시간과 정성을 내어 하느님을 찾아 성당에 다니겠다는 결심을 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해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