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과. 신령한 젖, 성서
우리가 힘들고 지쳐 있을 때 옆에 있는 사람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한마디가 큰 힘이 됩니다. 신앙인에게는 '하느님'이 자신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위로자이며'성서'가 바로 그 위로의 말씀이 되어 줍니다.
성서 말씀을 통하여 받는 은총
성서를 곁에 두고 읽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생깁니다.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은총들을 가져다 줍니다.
첫째,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어려운 시기에 희망을 줍니다.
절망이 엄습해 올 때가 있습니다. 무엇에 의지해도 일어서기 힘들때가 있습니다. 그때 말씀을 붙드십시오. 특히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하느님 약속의 말씀들을 붙드십시오. "우리는 성서에서 인내를 배우고 격려를 받아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로마15,4).
둘째, 성서 말씀은 우리의 상처를 치유시켜줍니다.
말씀에 몰입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내면의 상처들이 치유 됩니다. 상처 없는 사람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동안 이래저래 받은 상처들을 말씀을 통하여 치유받기를 바랍니다. "말씀 한마디로 그들을 고치시고 죽음에서 구출해 내셨다."(시편107,20).
셋째, 성서 말씀은 우리가 악(령)에 대항해 싸우는 무기가 되어 줍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유혹이 올 수 있습니다. 이때 자신의 힘으로 물리치려 하지 말고 말씀의 힘으로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성서 말씀은 우리가 악의 세력과 대적할 때 공격할 수 있는 칼이 되어 줍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 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에페6,17).
넷째,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키워 줍니다. 우선 말씀은 우리가 힘들 때 하느님께 위탁하는 믿음을 줍니다. 하느님께 의탁한 채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 굳건한 믿음을 길러 줍니다.
"그는 당신께 의지하는 사람에게 방패가 되신다"(잠언30,5).
이런 것들에 못지 않게 성서 말씀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중요한 것들로 행복과 지혜 등이 있습니다.
- "삼가 말씀을 따라 살면 행운의 열쇠를 얻고 야훼를 믿고 살면 행복의 문이 열린다."(잠언16,20).
-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시편 119,105).
그러므로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어떤 처지에서도 행복한 삶을 살게 되고, 삶의 기로에서 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서 말씀을 읽고 받아들이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빵이 이 세상의 육적 생명을 연장시켜 주듯이 하느님의 말씀이 영적인 생명을 먹여 살립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적인 것은 아무 쓸모가 없지만 영적인 것은 생명을 준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이니 것이며 생명이다"(요한6,63).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베드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기까지 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6,68).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원하십니까? 성서를 집어 읽으십시오. 성서 속의 하느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으십시오.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빨고 무럭무럭 자라나듯이 성서 말씀이라는 신령한 젖을 구하여 쑥쑥 자라나십시오. "갓난아이처럼 순수하고 신령한 젖을 구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서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1베드2,2).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그러면 성서를 어떻게 읽는것이 바람직할까요? 여러 가지 좋은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는 알퐁소 성인(1696~1787)께서 우리에게 주는 조언에 귀기울여 볼까 합니다. 그는 조용한 곳을 찾아기도하려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수칙을 가르쳤습니다.
-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가라(intrate toti)
- 혼자 머무르라(manete soli)
- 다른 사람이 되어 나가라(exite alii)
성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서 안으로'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성서를 읽을 때 그저 호기심에서 기웃기웃하는 심정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그러면 성서를 구경하는 데 머물고 맙니다. 성서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성서 시대, 성서의 장소로 들어가서 그 시대의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성서 안으로 들어가되 '모든 것'을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성서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삶의 모든 것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 가운데 얽혀 있는 문제들을 말씀의 비추임으로 풀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 혼자 충분히 머물러야 합니다.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고요 속에서 오로지 나와 성서 속위 주인공들 사이, 그리고 나와 하느님 사이에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그룹 성서 모임에서 나눔을 할 때는 함께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혼자서 깊은 묵상에 잠기게 될 때 말씀의 깊은 맛을 알게 됩니다.
영혼의 깊은 곳에서 말씀은 온전히 만나게 되면 변화가 생깁니다. 부정적인 자아가 점점 긍정적인 자아로 바뀝니다. 이리하여 온전히 치유 받고 새 사람이 되어 성서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가
성서는 '거룩한 책들(Holy Scriptures)' 또는 계약의 책(The Book of Testaments)'이라고도 불립니다.
그렇다면 성서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을까요? 여러가지 가운데 우리는 대표적으로 다음의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체험한 하느님에 대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요한 묵시록에 이르기까지 성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만난 하느님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서를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어떻게 택하셨고, 이집트와 주변의 강대국으로부터 어떻게 구원해 내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성서는 예수님에 대하여 준비를 하며 예언을 하고 있고, 신약성서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모든 내용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 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요한5,39).
뿐만 아니라 이런 증언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1,1-2).
이런 이유로 예로니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던 것입니다.
"성서를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성서를 읽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탁월한 지식"(필립3,8)을 얻도록 간곡히 그리고 특별히 권고합니다.
누가 썼는가
성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서 하느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성서는 하느님의 책인 동시에 인간의 책이기도 합니다.
첫째, 성서의 저자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통하여 기록하도록 하셨지만, 하느님께서 몸소 그들 안에 또 원하시는 것만을 그들이 참 저자로서 기록하여 전달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성서 전체가 하느님의 계시로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서의 원저자는 분명히 하느님이십니다.
둘째, 성서의 저자는 인간이기도 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하느님께서는 성서에서 인간을 통하여 인간의 방식으로 말씀하셨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는 성서의 저자들에게 영감을 주심으로써 그들을 이용하여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만을 모두 기록하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은 인간에 의해, 인간 안에서, 인간의 방법으로 인간에게 말씀하십니다. 성령은 성서를 집필하는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서, 그 인간의 가장 인간적인 데에서 역사하십니다.
언제 썼는가
성서는 오랫동안의 구전 전승 기간을 제외하고도 1,000년이 넘는 긴 세월을 걸쳐서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편집된 이스라엘 백성의 '고유 문학 총서'라 할 수 있습니다. 성서는 기원전 900년경부터 기원후 100년까지에 걸쳐서 팔레스티나, 바빌론, 이집트, 로마, 고린토 등 각기 다른 시기에 서로 다른 장소에서 쓰여졌습니다.
어떻게 구분하는가
1) 구약성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을 중심으로 엮어진 구약성서는 90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쓰여진 히브리인들의 종교적인 '책 모음'입니다.
1세기 말엽 팔레스티나의 유다교 원로(권위자)들이 히브리어로 기록된 여러 경전들을 선별하여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로 나누어서 경전 목록 39권을 공식적으로 확정하였는데 이것을 히브리 경전 또는 제1경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기원전 250년경에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이방인 지역(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등) 유다 공동체에서 구약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70인역)할 때 확정한 성서 가운데 히브리 성서 목록에 속하지 않던 성서가 있었습니다. 그리스어를 사용하던 초대 그리스도 교회는 이들을 성서로서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이들과 함께 그 이후에 기록되었지만 위에 말한 성서들과 동등하게 존중하던 몇 가지 책들을 이미 성서 목록에 받아들였는데 이 모두를 합하여 '제2경전'이라고 합니다. 토비트, 유딧, 지혜서, 집회서, 바룩, 마카베오 상.하 등이 이에 속합니다. 그러니까 가톨릭에서는 히브리 경전 39권과 제2경전 7권을 합하여 도합 4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16세기 이후 종교 분열로 갈라져 나간 개신교 측은 그리스어로 쓰여진 제 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고 외경으로 취급하여, 히브리어 경전만 받아들였기 때문에 구약성서가 가톨릭용보다 7권이 모자라는 39권입니다. 또한 개신교는 히브리어 경전에 포함되어 있는 에스델서와 다니엘서의 일부를 외경이라 하며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제 2경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성서는 일반적으로 그 내용이나 문학적 표현 양식에 따라 율법서(모세오경), 예언서, 성문서(시서와 지혜서)로 구분하기도 하고 예언서를 세분하여 역사서를 하나 더 추가하기도 합니다.
2) 신약성서
신약성서는 기원후51~105년에 그리스 일상어로 쓰여진 27권의 '책 모음'으로서 인류 구원의 기쁜소식을 담고 있습니다. 즉 신약은 하느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약을 새롭게 하시고 완성하시어 그분 안에서 모든 인류와 맺으신 새로운 계약입니다.
4복음서, 사도행전, 서간문, 요한묵시록으로 구분됩니다.
3) 신약과 구약의 관계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 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마태5,17-18).
구약은 신약의 예표이고 신약은 구약의 완성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노(354~430)는 이 두 성서의 긴밀한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구약에 신약이 감추어져 있고 신약에 구약이 밝혀진다."
구약성서는 신약성서를 준비하며 신약성서는 구약성서를 완성합니다. 둘은 서로를 밝혀 주며 모두 다 참된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을 이해하기 위해 구약을 읽을 필요가 있고 또 구약을 올바로 알아듣기 위해 신약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실천하기
성서 말씀이 아무리 훌륭해도 성서에 있는 말씀이 아직 내 안에 살아 있지 못하면 소용없습니다. 성서 말씀을 외워서 마음에 담고 다닐 때 희망, 치유, 능력, 행복, 지혜, 생명등을 가져다줍니다. 다음 성서 말씀들 가운데 자신의 것으로 삼고 싶은 성구를 골라 외워보십시오.
-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마태7,7).
-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마태18,19).
- "늘 기도하십시오"(1데살5,17).
- "희망을 가지고 기뻐하며 환난 속에서 참으며 꾸준히 기도하십시오"(로마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