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종가(宗家) 가톨릭 교회
길거리를 가다보면 '원조 닭갈비', '본가 순대국밥', '종가집' 등 음식점 간판에 '원조', '본가', '종가'라는 말이 붙은 것을 많이 봅니다. 왜 사람들이 앞다투어 서로 원조, 본가, 종가임을 내세우는 것일까요? 아마도 처음 개발하여 시작했던 곳이 가장 맛있게, 음식 고유의 맛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가톨릭과 개신교가 있고, 개신교는 또 여러 종파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건 예수만 믿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음식을 맛있게 하는 곳은 많아도그 고유의 맛을 간직한 곳은 종가뿐이듯, 그리스도교의 종가(宗家)도 가톨릭입니다.
베드로의 후계자
2005년 4월 2일 오후 9시 37분(한국 시간 3일 오전 4시 37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서거하셨습니다. 이 소식은 전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킨 빅뉴스였습니다. 미국의 CNN 방송은 이미 9년 전부터 교황관저가 보이는 호텔방을 전세 계약할 정도로 이번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4월 8일 교황의 장례식에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 200여 명의 각국 정상들이 대부분 참석하였으며 400만 인파가 몰려 애도를 표하였다고 합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위대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교황'으로서 요한 바오로 2세를 20세기 및 21세기역사의 무대에 등장시킨 것은 가톨릭교회에 유보된 교황직이었습니다. 아니 요한 바오로 2세를 오늘 혼돈 속의 인류에게 선물했던 것은 베드로에게, 그리하여 그 후계자들에게 주셨던 예수님의 약속말씀이었습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 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18-19).
예수님의 이 말씀 위에서 교황직과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의 지존(至尊)이며 자긍(自矜)이며 힘입니다. 그 까닭은 교황이 예수님의 지상 대리자(代理者)요 그리스도 교회의 법통(法統)이요 하늘 나라의 열쇠를 맡고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종가, 가톨릭교회
가톨릭교회는 사도 베드로를 반석으로 하여 세워진 교회, 곧 그리스도교의 종가(宗家)입니다. 종갓집에는 법통이 있고 기풍이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신자들은 뭔가 풍기는 품격이 다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2000년 역사를 거쳐 오면서 이 가톨릭교회로부터 여러 교회로 갈려 나갔습니다. 그 계보를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가장 먼저 갈라진 것은 1054년에 와서입니다. 그때 서방교회(가톨릭교회)와 동방교회(정교회)로 나뉘어졌습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동로마 제국의 비잔틴문화가 성행하면서 동방교회의 위상이 강화되었는데 이것이 분열을 일으킨 원인으로 작용했습니다. 곧 동방교회는 서로마 제국의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노선을 고수하면서 서방 가톨릭교회로부터 독립을 꾀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서방교회로부터 수많은 개신교들이 갈려 나갔습니다. 개신교는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생겨난 루터교회, 칼빈의 예정설을 신봉하는 장로교회, 헨리 8세의 재혼 문제로 갈려 나간 성공회, 성공회 내 복음주의 운동에서 생겨난 감리교회 등이 대표적인 교파들입니다. 이 밖에도 한국에서 큰 교세를 일권낸 교회들로 침례교회와 오순절교회 등이 있습니다.
이 밖에 통일교, 여호와의 증인 등을 위시한 수많은 사이비(似而非)교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의 의미
가톨릭교회의 긍지는 '가톨릭'이라는 이름 자체에도 숨어 있습니다. '가톨릭'(catholic)이라는 말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지역, 모든 민족, 모든 이데올로기를 두루 아우를 수 있을 만큼 포용력이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보편되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 '모든 백성'에게 교회를 파견하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교회가 어떤 의미에서 '가톨릭적'인지를 매우 적절하게 설명한 이가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315-387)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교회는 온 세계를 두루 아우르기 때문에 '가톨릭'이라 불린다. .... 교회가 보편적으로 가르치되 모든 도리(道理)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르치기 때문에....교회가 통치자나 백성들이나, 배운 사람이나 배우지 못한 사람이나 구별 없이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참된 신앙의 품으로 데려오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가 어떤 죄악이라도 모두 돌보고 치유해 주기 때문에... 그리고 교회가 온갖 덕목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종류의 영적 은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종류의 영적 은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가톨릭'이라 불린다."
곧 '덕목'과 '은총'이라는 표현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구비하고 있는 자산이 부족함 없이 온전하기에 '모든 도리'와 '어떤 죄악이라도'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 가르침과 행적이 모든 것을 포괄하기에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에서처럼 그 대상으로 온 인류를 지향하기에, 가톨릭적(보편적)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백미, 성인들의 통공
'통공(通功)란 단어의 원어는 '꼼뮤니오'(라: communio)입니다. 이는 '친교'를 의미하기도 하고 '나눔'이나 '교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먼저, '통공'을 '친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15,5-8참조)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 가지와 잎새들이 줄기와 연결되어 한 생명으로 사는 것처럼, 여러 성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한 생명'으로 살고 있습니다. 한 생명체에는 수억의 세포들이 결합되어 한 생명을 이루는 것처럼 세상, 연옥, 천국에 있는 수많은 성도들은 한 그리스도의 생명에 결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의 친교입니다.
다음으로,'통공'은 말 그대로 공(功)을 통(通)한다는 뜻을 지닙니다. 즉 누군가가 다른 성도를 위해서 기도, 선행, 희생 등을 통해서 대신 공을 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지상교회'의 성도들끼리 서로 육신과 영혼에 필요한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통공'을 행할 수 있고, '지상교회'의 성도가 '연옥교회'의 성도를 위해 공을 쌓음으로 죄로 인하여 당연히 받아야 할 잠벌을 면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달리 말하여 보속은 빚을 갚는 것인데, 이 빚은 당사자가 갚아도 되고 다른 사람이 대신 갚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세의 성도가 자기 보속이나 공로를 다른 성도를 위해 바치면 그것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결국, 통공은 은총을 나누는 것입니다. 수도자들이 산속에서 기도하지만 그 기도는 세상을 위한 기도입니다. 세상과 은총을 나누는 것입니다.
교회는 교황을 위해, 주교를 위해, 사제와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합니다. 신자들의 기도가 합해져서 교회를 거룩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이런 교회의 권고를 따라 기꺼이 정성으로 기도할 줄 아는 신자는 교회에 힘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이 교회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그것을 거저 누리게 됩니다. 나의 기도, 공로, 내가 누려야 할 은총을 세상을 위해, 교회를 위해, 연옥 영혼을 위해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도 누릴 수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 공경은 우상 숭배가 아니다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공경합니다. 이는 존경하는 것이지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부 개신교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가톨릭은 마리아를 신(神)으로 숭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오로지 삼위일체 하느님뿐입니다. 마리아는 다만 공경(恭敬)할 따름입니다. 공경하되 다른 성인(聖人)들께 드리는 공경보다 더 정성껏 공경합니다. 그래서 삼위이신 하느님께 '흠숭지례(欽崇之禮)'를 드린다 하고, 마리아에 대한 공경은 가장 존경한다 하여 '상경지례(上敬之禮)' 그리고 성인들에 대한 공경을 '공경지례(恭敬之禮)'라 합니다. '흠숭'과 '공경'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상(偶像)'이라는 말을 바로 알아들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20장 4절의 말씀에 의하면 우상은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 위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어떤 것이든지 그 모양을 본따 새긴" 신상(神像)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본래 '형상 없는' 하느님을 어떤 '모습' 속에 고정시키는 것, '제한 없는' 하느님을 어떤 '틀' 속에 가두어 두는 것, 그것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하느님에 대한 어떤 '고정된 관점'도 우상입니다. 하느님을 어떤 틀 속에 가두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그러나 '이미 존재했던' 어떤 사람을 기념하여 석상이나 동상을 만드는 것은 우상이 아닙니다. 역사속의 주인공 예수님을 기억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은 상들은 우상이 아닙니다. 마리아의 실제 모습을 추정하여 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도 우상이 아닙니다. 성상(聖像)도 성화(聖畵)도 우상이 아닙니다. 만약에 이런 것들이 우상이라면 사진도 찍지 말아야 합니다. 사진이 추억을 떠올리도록 도와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듯이 이런 것들도 신앙의 장애물이 아니라 신앙에 도움을 줍니다.
우리가 훌륭한 신앙의 삶을 산 인물을 존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모 마리아를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된"(루가1,42)여인이라 칭송하였습니다. 태초의 하와 이래 역사 속에서 찬란하게 이름을 떨쳤던 여인들, 오늘날 이 세상에서 탁월한 재능(才能)이나 업적(業績)이나 미모(美貌)로 세간의 갈채를 받는 여인들, 미래에 태어나 최고의 찬사와 존경을 받게 될 여인들을 통틀어도 성모 마리아보다 복된 여인은 없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말 그대로 모든 세대를 관통하여 "여인 중에 가장 복된" 여인인 것입니다. 마리아의 '복됨'에는 그 어떤 여인도 견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중재자가 아닌 전구자
가톨릭교회의 기도문에는 성모 마리아의 전구(轉求)를 간청하는 '성모송'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이 기도문을 살펴보면 성모님께 중재를 청하는 기도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전구는 우리가 우리의 사정과 필요를 아뢸 때, 그겅을 자비심과 연민으로 깊이 공감하시고 아드님이신 예수님께 '우리의 기도'에 '자신의 기도'를 보태서 전해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전구를 청하는 기도는 성모님을 통한 '전달'의 효과뿐만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변화'와 '중재' 나아가 '연대'의 효과를 가져다주는 기도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의 유일한 중재자가 되시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성모님이 구원에이르는 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성모님을 거치지 않고도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 마리아는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모님은 예수님께 우리가 나아가는 데 장애가 아니라 모범이요 안내자요 동반자입니다. 굳이 성모님을 통하지 않아도 되지만, 통하지 않으면 그만큼 전구의 은혜를 못 누릴 따름입니다.
수호천사와 수호성인
다른 종교나 교회에서는 볼 수 없는 가톨릭교회만의 특별한 보물을 하나 대라고 하면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것들 중의 하나가 수호천사(守護天使)와 수호성인(守護聖人)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호천사(守護天使, guardian angel)란 하느님의 명에 따라 사람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천사를 말합니다. 하느님은 각 사람들에게 날 때부터 수호천사 한 명씩을 정해 주어 사람을 보호하게 하였습니다. (마태18,10). 사람이 가는 길마다 지켜 주고(시편91,11) 사람의 시중을 들어 주며(히브1,14),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줍니다.(토비 12,12).
수호천사와 더불어 어떤 직업, 장소, 국가, 개인을 위하여 하느님께 청원하며, 보호해 주는 성인을 수호성인(守護聖人, patron saint)이라 합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쓰게 되는 세례명은 신앙의 모범을 보여준 성인들의 이름을 따르는데, 그들이 바로 우리들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수호천사와 수호성인은 우리들 신앙의 길잡이이자 보호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정해 주신 수호천사에게 자주 기도를 드려야 하며, 수호성인에게도 자신을 위하여 하느님께 기도해 달라고 청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수호천사나 수호성인 또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성인들의 통공'과 관련된 교리입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신자끼리, 임종한 신자들과도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고, 영적인 기도를 통해서 영적 보화를 서로 교류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실천하기
앞 시간에 이어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을 외워 봅시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여기서의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가톨릭교회를 의미합니다. 죄란 죽음을 의미하지만, 교회는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음과, 영혼의 불멸성과 함께 육신의 부활도 믿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은총을 간직하고 죽은 사람들은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에도 참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멘'으로 끝을 맺는데, 이는 '믿다'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사도신경의 첫마디를 원어로 보면 '나는 믿나이다'(크레도 인 데움, Credo in Deum)인데 마지막으로 이를 다시 되풀이하고 확인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