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과. 삶을 동반해 주는 은총, 성사 | 가까이 더 가까이

2006. 11. 3. 오후 5:12:13

글자
 

8과.   삶을 동반해 주는 은총, 성사

 

 

    일상에서 우리는 수많은 상징을 사용합니다.  신호등, 횡당보도에서부터 문자나 그림들 심지어 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많은 상징을 사용합니다.  우리가 이런 상징을 사용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는 언어를 대신하는 보이는 언어가 바로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나 몸짓, 동작 등의 상징언어가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은 보이지 않는 가치를 주고받을 때 그것을 담아낼 표징을 원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표시로서 장미 꽃다발이나 넥타이를 선물합니다.  그러면 받는 사람은 그 물건들을 받으면서 금새 "아, 이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구나!" 하고 알아듣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요컨대, 상징과 표징은 눈으로 보고 싶어하고, 귀로 듣고 싶어하고, 감각으로 느끼고 싶어하는 인간적인 욕구를 해소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입니다.

 

성사는 하느님의 눈높이 사랑이다

 

   이처럼 상징이나 징표를 원하는 사람의 속성을 하느님께서는 잘 알고 계십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사람들은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표현하시기 위하여 눈에 보이고 손에 마져지는 물건들을 사용하시는 동시에 귀에 들리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는 거룩한(聖) 은총을 보이는 것을 통해 베푸시는 것(事)을 성사(聖事)라고 합니다.  성사는 말뜻 그대로 '거룩한 일' 또는 '거룩한 거행'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 자신 및 당신의 사랑을 계시하실 때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눈높이를 낮추셔서 우리가 알아 볼 수 있는 표징들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으뜸 성사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이전 시기인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  역사 속의 사건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마침내 당신의 사랑을 사람이 보고 듣고 만지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그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을 통해 당신의 그 사랑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으뜸 성사입니다.

 

    이 사실을 성서는,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말씀하신 후, "마지막 이 시대에 와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히브 1,1-2)고 증언합니다.  그래서 그분을 보는 이는 아버지를 보는 셈이 되었습니다.(요한 14,9 참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성사로서 '교회'를 세우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성사라고 할 때,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인류 구원 업적을 보여 주셨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지만 부활하신 후 40일 째 되는 날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가 더 이상 예수님을 통해 직접 하느님을 만나 볼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님을 대신해서 우리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 길이 바로 교회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손수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가 '교회'를 통해 예수님과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로써 교회가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곧 교회가 하는 일이 예수님이 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성사'라 부릅니다.

 

교회는 자신의 사명을 '7성사'와 '준성사'를 통해 완수한다

 

   교회는 그리스도로부터 위임받은 구원전권을 '7성사'와 '준성사'로 성사화하였습니다.  이 성사들을 통하여 교회는 자신에게 위임된 구원전권 및 사명을 가시적(可視的)으로 구현해 왔습니다.

 

    7 성사란 예수님이 직접 주신 사명을 교회가 제도화한 일곱 가지 성사를 말합니다.  이것들을 각각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성사'를 통해 '원죄'와 '본죄'를 용서받고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견진성사'를 통해 우리는 성령의 특별한 능력, 즉 성령칠은(슬기,통달, 의견, 굳셈,지식, 효경, 두려워함)또는 아홉가지 은사(1고린 12장)를 받습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의 영혼은 '생명의 양식'을 먹고 양육되며, 미사에 참례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면서 '이웃과의 일치'를 확고히 하는 은총을 얻게 됩니다.

   '고해성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하여 '사함'을 받고 하느님과 교회와 다시 '화해'할 수 있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성품성사'를 통해 '사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받아 하느님 백성을 위해 봉사하며 세상의 구원 사업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교회의 축성을 받습니다.

 

   '병자성사'를 통해 우리는 위로와 '치유'의 은총을 얻게 되며,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자격을 얻습니다.

    이 7성사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한 사람의 영적 일생을 동반해 줍니다.  삶의 각 단계에서마다 결정적인 은총을 베풀어 줌으로써 그 사람의 영적 생명이, 생명과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이에 대하여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 이 일곱 성사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중요한 모든 단계와 시기에 관계 된다.  성사들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을 탄생시키고 성장시키며, 치유하고 사명을 부여한다.  이 접에서 자연적인 삼의 단계들과 영적인 삶의 단계들은 어느 정도 유사하다"(가톨릭교회교리서).

 

    그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태어남(세례성사) →양육됨(성체성사) → 성숙함(견진성사) → 타인을 위한 봉사1(혼인성사) 또는 타인을 위한 봉사 2(성품성사) → 용서(고해성사) → 치유(벙자성사) 또는 죽음(종부성사)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7성사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때문에 성사 집행자의 성덕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베풀어지는 무상은총입니다.  이를 '사효적(事效的)'이라고 말합니다.

 

    준성사는 7성사에는 속하지 않지만 성사의 특성을 지니는 거룩한 상징(행위)들을 말합니다.  준성사로 말미암아 신자들은 성사들의 그 본래 효력을 받도록 준비되고, 생활이 성화됩니다.  준성사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축복: 축복은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 행복과 은총을 간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축복에는 사람(부부, 어린이, 노인 순례자 등)의 축복, 건물이나 운송수단(집, 전답, 차 비행기 등)의 축복, 가정(개인)용 성물(고상, 성상, 묵주, 성화)의 축복 등이 있습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것들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해주고, 하느님을 위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2) 축성: 축성은 물건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성스럽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축성에는 제구(성작, 성반, 제대, 감실, 성물)의 축성, 장소(성당, 성지)의 축성, 사람(성직자, 수도자)의 축성 등이 있습니다.

   축성은 주교와 사제들만이 할 수 있으며 특별한 경우에는 주교만이 할 수 있습니다.  축성된 사람이나 물건은 오로지 하느님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3) 구마: 구마는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을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청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를 행하셨으며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님께 받았습니다.  세례를 거행할 때도 간단한 형식의 구마를 행합니다.

   이 밖에도 어떤 지향을 정하거나 목적을 위하여 특정한 기도나 행위 또는 존재를 하느님께 드리기로 약속하는 봉헌 의식도 준성사에 포함됩니다.

  이 준성사는 '인효적' 은총을 갖기 때문에, 참여자의 정성과 마음 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성사는 의무가 아니라 은총이다

 

     모든 성사들은 의무가 아니라 은총입니다.  선물입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교회가 우리에게 베푸는 사목적 보살핌(Pastoral Care)이 그대로 성사를 통해 드러나는 것입니다.  또한 성사들 안에서 우리는 '교회'를 통해 지속적으로 베푸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몰아적 사랑을, 나아가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느님의 가이 없는 사랑을 만납니다.

 

     성사는 거저, 공짜로 제공되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오너라.  여기에 물이 있다.

너희 먹을 것 없는 자들아, 오너라. 돈 없이 양식을 사서 먹어라.  값없이 물과 젖을 사서 마셔라"(이사 55,1).

   보는 '눈'과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이 속속들이 누릴 수 있습니다.  누리는 사람만이 뜨겁게 감동합니다.  감동하는 사람만이 벅찬 가슴으로 감사드릴 줄 압니다.  이것이 가톨릭 성사의 깊은 맛이요 멋입니다.

 

    이러한 하느님 은총의 선물은 성사를 깨닫고, 마음껏 누린 이들이 바로 우리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선조들입니다.

   다른 나라처럼 선교사나 성직자들이 직접 들어와 복음을 전파한 것과는 달리, 한국 천주교회는 신학파 남인 학자들의 진리 탐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천주교회가 한국 땅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것은 서학이라는 이름을 통해서였습니다.  1780년 경기도 광주 천진암과 주어사에서 당대의 석학 권철신의 주재 하에 서학을 본걱적으로 연구하는 강학회가 열리게 되는데, 여기에 이벽이 뒤늦게 가세하면서 이 강학회의 성격이 최초의 천주교 신앙 연수회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학문적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이승훈으로 하여금 북경에서 부족한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고 돌아오게 합니다.  1784년 한국인 최초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고 들어온 이승훈이 이벽, 권일신 등에게 세례를 베풂으로써, 천주교가 조선 땅에 더 이상 학문이 아닌 신앙으로서 둥지를 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 신앙 선조들은 진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천주교와하느님을 자발적으로 숭요함으로써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내 한국 천주교회는 박해를 받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조상 제사를 거부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천주교회는 조상 제사 문제를 조상신을 숭배하는 우상숭배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조상 제사를 금지하였습니다.  그러자 국가에서는 전통 질서와 가치관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천주교를 박해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천주교의 평등사상이 유교의 신분 사상에 도전이 된다는 사회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양반과 천민의 구별이 뚜렷하였던 당시의 유교적 계층 구조 속에서 양반과 천민의 구별, 남녀의 구별을 없애는 천주교의 평등 사상은 사회의 풍기를 문란하게 하고 기강을 해이시키는 사학으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박해는 100여 년 동안 계속되었는데, 1785년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있던 증인 김범우 집에서 집회를 하다가 발각된 을사추조적발사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후 전라도 진산에서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인 권상연이 조상의 신주를 불사른 진산사건이 발단이 되어 신해박해(1791)가 일어납니다.  그후, 신유박해(1801), 기해박해(1830), 병오박해(1846), 병인박해(1866) 등이 일어납니다.  특히 흥선대원군에 의해 일어난 병인박해 때는 아홉 명의 성직자와 만여 명의 순교자들이 순교를 하게 됩니다.

 

   이러한 박해 중에서도 우리 신앙 선조들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간직하려 노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직자들이 없으면 설사를 집전할 수 없기 때문에 선조들이 누릴 수 있는 은총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초기에는 신자들 스스로가 성직제도를 창설하여 여러 성사들을 집전하였으나, 교회법상으로 어긋난 행위임을 알고 2년 후 그만두고, 성직자 영입 운동을 펼치게 됩니다.  그 결과 1794년, 신해박해로 조정의 천주교 탄압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인 주문모 신부가 최초로 입국하여 활동하지만,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하게 됩니다.  조선의 신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도욱 선교에 열성을 기울이는 한편, 계속 성직자의 파견을 간청하였습니다.

 

    이러한 열망이 마침내 받아들여져 1831년 조선의 교구로 설정되고 1836년 중국인 유방제 신부와 프랑스인 모방, 샤스탕 신부와 엥베르 범 주교가 입국하여 조선교회는 활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또한 모방 신부는 김대건 등의 신학생을 선발해서 마카오로 유학을 보냅니다.  그 결과 1845년 우리나라 최초의 한국인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페레올 주교로 부터 사제 서품을 받고 입국하게 됩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는 성무 집행에 전념하다가 1846(병오)년 메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입국시키기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순위도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10여명의 신자들과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는 1849년에 서품을 받고 그해 겨울 조선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는 12년 동안 전국을 돌면서 신자들을 보살피고 상사를 집행합니다.  이러한 최영업 토마스 신부와 열 두 명의 프랑스 선교사의 노력으로 신자 수가 2만 3쳔 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듯이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 선조들은 선교사들에 의해 의무적으로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여 은총을 누렸습니다. 또한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박해와 순교를 무릅쓰고 신앙생활을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더 풍부한 성사의 은총을 누리기 위하여 성직자들을 영입하는 동시에 한국인 사제 양성에 힘썼습니다.

    이러한 신앙 선조들의 피땀 흘린 노력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으며, 성사를 통하여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천하기

 

1,   성사가 아무리 좋아도 그것이 어떻게 좋은지를 알아야 참여하게 됩니다.  7성사 일곱 가지와 세 가지를 확실히 외워서 그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보십시오.

 

2.   그리스도인은 모두가 '그리스도와 성사' 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2고린 2,15).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시켜 써 보내신 소개장입니다."(2고린 3,13).

   당신이 내무반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의 보이는 표징이 되어야 할지 구체적으로 결심해 보십시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군종 교리서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