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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 례 2. 기도 3. 신망애(信望愛)의 신앙생활 4. 용어 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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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흠숭하는 데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전례와 기도이다. 기도를 사적인 경신례라고 한다면 전례는 공적인 경신례이다.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에, 이러한 깨달음을 종교의식을 통하여 공동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와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앎이 경배행위를 통하여 더욱 구체화되고 보편화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을 들려 주시고 구원을 베푸시고자 인간을 불러 모으신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몰려 온 사람들은 이 은혜에 대한 감사의 정을 표하고자 예식을 거행한다. 이것은 인간과 하느님과의 만남의 잔치요 예식, 곧 전례이다.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구세주께서 천상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이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사도적 활동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전례를 통하여 인간측으로부터 찬미, 흠숭, 감사의 행위가 하느님께 올라가며, 하느님 편에서는 은혜, 강복, 용서가 인간에게로 내려온다. 따라서 전례 안에는 하느님께로부터 인간에게로 향하는 생명의 은총과 진리의 말씀이 포함되며, 인간으로부터 하느님께로 향하는 감사와 찬미의 기도와 제사라는 두 가지 측면의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전례는 교회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왜냐하면 사도적 활동의 목표는 모든 이가 신앙과 성세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한데 모이고, 교회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고, 또한 주의 만찬(성체)을 먹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례 10항). 1. 정의 1) 어원 전례(Liturgy)란 원래 그리스 말 Leiton (백성)+ergon (일)에서 나왔는데, 어떤 공적인 직무수행에 있어서 백성에 대한 봉사를 의미하였다. 쉽게 말해서 전례란 교회의 공식 의식이다. 교회가 성서나 성전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이다. 전례의 중심적 행위는 미사이고 그밖에 성사, 준성사, 성무일도, 성체강복 등이 전례에 속한다. 2) 정의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이 현세에서 상봉하는 가장 대표적인 의식이다. 즉 표지 또는 징표의 장막에 싸여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내려오고 인간은 하느님께로 올라간다. 이런 이중적 동향이 전례의 본질적 내용이다. 다시 말하면 전례는 인간이 하느님을 예배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인간이 성화되는 현장이다. 전례란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계속 수행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드리는 공적 예배이며 우리의 신앙을 감각할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 신비체(교회)의 완전한 공식 흠숭이다. 2. 전례의 구성 요소 전례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신자를 그 지체로 하는 그리스도 신비체인 교회의 공적 예배로서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구성된다. ① 교회 공동체의 공적인 예배 ②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인 예배 ③ 교회의 권위로부터 합법적으로 위임받은 교직자에 의해 거행 ④ 교회가 인준한 '전례서'에 따라 거행 3. 전례의 종류 교회는 전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 나간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제사인 미사와 우리를 초자연적 생명에 참여케 하는 성사와, 교회가 매일 드리는 성무일도로 이루어진다. 1) 미사 그리스도는 당신 사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교회의 전례 안에 항상 현존하신다. 그분은 미사, 특히 성체 안에 계시며 더 나아가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신다. 십자가상에서 당신 자신을 제헌하신 바로 그분께서 지금도 사제의 봉사를 통하여 제사를 바치고 계신다. 2) 성사 신자들의 신앙 정도에 따른 단계적 성숙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특별한 계기가 되는 시기에 성사를 거행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 구원의 삶에로 이끌어 주는 데 목적이 있다 3) 성무일도 성무일도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의 공적이고 공통적인 기도이다. 사제와 부제들은 성무일도를 바칠 의무가 있으며, 수도자들은 수도회의 회헌에 따라 성무일도를 바치게 되어 있다. 4. 신심 행사 신심 행사란 전례가 되기에 필요한 조건을 세우지 않고, 교회의 직무자의 참석 여부나 교회에서 인준한 규정된 예식서의 사용과 관계없이 행해지는 신자 공동체의 공동 예배나 축제, 혹은 단체 기도를 말한다. 신심 행위 중에는 '십자가의 길', '로사리오의 기도', '성시간' 등 교회가 인준한 것도 있으며, 어떤 지방이나 단체의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것도 있다. 5. 생활 적용 및 주의 사항 1) 가톨릭 신자에게는 하느님께 드리는 전례의 극치가 미사 성제 거행에서 드러난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준비하여 경건하게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고 인간에게는 유익함이 있도록 예배해야 한다. 2) 현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은 하느님을 도외시하거나 나아가서는 하느님의 부재를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이는 현대 문명의 세속화 과정에 해당되는 것으로 신앙의 위기를 가져 오기는 하지만, 오히려 우리가 전례를 통해 하느님의 면전에서 우리의 종교적 자세를 더욱 정화하고, 항상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의 신비 앞에서 마땅히 더욱 겸손해지는 데 도움이 된다. 3) 전례와 신심 행위의 우선 순위를 전례에 주어야 한다. 미사에 참석하기 보다는 신심행위에 비중을 둔다면 이는 바른 신앙 생활이라 할 수 없다. 4)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각자의 형편대로 교회의 행위로서의 일과 전례기도(성무일도)에 참여하도록 간곡히 초청된다 (교회법 1174조 2항). 기도가 종교적 행위라는 말은 종교인의 삶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이며 뿌리이기 때문이다. 1. 정의 1) 하느님의 뜻에 응답 자신의 한계를 깊이 체험하고 나서 무한하신 분을 고백하며 동시에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게 되는데 이러한 자세는 기도의 가장 낮은 단계이다. 즉, 이러한 자세는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여쭈려는 노력에 불과하다. 이러한 '아룀'만으로는 하나의 기도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란 하느님께 의식적으로, 혹은 의지적으로 마음을 돌리고 그분과 대화하거나 또는 아무 말없이 하느님 곁에 머무르면서 인간의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사랑하고 그분의 뜻에 '응답'하는 행위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볼 수 없는 하느님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면서 점차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이다. 2) 하느님과의 대화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대화이다. 대화란 서로간에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을 건네는 것이 하나의 대화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상대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가 먼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사실 기도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은 많이 하면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귀기울이는 경우는 극히 적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차례에 기도를 끝내고 돌아가 버린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기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태도이다. 또 기도란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대화이며 신앙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이다. 교리나 신학이나 신자생활에 관한 지식은 하느님께 대한 간접적인 설명인데 반해 기도는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대화로서 그분을 직접 체험하고 그분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 1)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여쭈어 보았고 또한 하느님의 응답을 들으셨다. 그분은 하느님을 '압바(Abba)'라고 부르셨는데 이는 우리의 어린 아이들이 자기의 아버지에 대한 신뢰에 찬 친밀감을 나타내며 부르는 '아빠'와 같은 말이다.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시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항상 당신의 '아빠'에게 기도하셨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 당신의 참된 과업이 무엇인지 깨달았고 이를 그대로 행동에 옮기신 것이다. 비로소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하느님께 대한 신뢰 하느님을 아버지로 대하는 신뢰심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기도는 빈 말을 늘어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미약함이나 무능력함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신뢰심에 가득찬 사람의 기도는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3. 그리스도인의 기도생활 1) 기도 속에 사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일상적인 작은 일에서부터 인생의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기도 속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그 전체가 기도의 소재가 되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기도란 영원한 생명에의 양식이며 가장 훌륭한 활동이자 신앙의 표현이다. 2) 흠숭과 감사의 마음 기도란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기도할 때 하느님을 흠숭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기도는 또한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신앙과 감사의 눈으로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들려 주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이를 행함으로써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통교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하느님의 음성을 온전히 듣고 응답하는 자세가 요청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믿고 신뢰하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림으로써 힘과 용기를 얻고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뜻 안에서 봉헌하게 된다. 3) 하느님 뜻에 투신 기도는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그분의 뜻에 자신을 전적으로 투신하게 해 준다. 하느님의 뜻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가장 올바르고 최선의 것을 선택하라는 양심의 당위적인 명령 속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기도는 자기의 개인적인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공동선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의향으로 바쳐야 한다. 4. 기도의 내용과 자세 1) 기도의 내용 기도는 인간이 하느님께 드리는 사적인 경신례이다. 따라서 기도 속에는 하느님께 대한 흠숭, 감사, 청원 그리고 통회의 마음이 들어 있어야 한다. 2) 기도의 자세 ① 자신이 하느님 앞에 있다는 마음 자세로 하느님께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형식적인 기도나 불손한 태도는 올바른 기도의 자세가 되지 못한다. ② 하느님께 대한 신뢰의 자세이다. '당신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소서'라는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의 뜻에 응해야 한다. ③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신앙의 자세가 요청된다.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에 대한 신앙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④ 하느님의 뜻에 대한 순응의 자세와, 그것이 꼭 성취되리라는 확신과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 5. 기도의 종류 기도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다. 그러나 기도가 지향하는 바는 다 같다고 할 수 있다. 어느 길이 더 좋고 나쁘다는 것을 말하기 보다는 진정한 자세로 길을 걸어 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즉, 자신의 마음을 하느님께 들어 올리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세를 갖추고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기도의 모습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서 알 수 있다. 1) 방법상의 분류 ① 염경 기도 - 구송 기도 정신 속의 생각과 마음 속의 감정을 하느님께 표현하기 위하여 소리를 내어서 하는 기도이다. 이 염경 기도는 미사와 성사, 준성사와 성무 일도, 말씀의 전례 등과 같은 전례 기도와 아침, 저녁 기도, 십자가의 길, 여러 호칭 기도 등의 비전례 기도로 구분할 수 있다. ② 묵상 기도 - 정신의 기도 하느님과 직접 관계되는 일이나, 우리를 하느님께로 이끌어 가는 일들을 생각하며 속으로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묵상의 재료로는 성서의 말씀이나, 교회의 가르침 이외에, 일상 생활에서 오는 신앙적 문제나 대자연에 대한 감동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③ 관상 기도 - 신비적 기도 이 기도는 기도의 형태라기보다는 기도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깨닫고 있는 것과 관계없이 우리의 모든 생활에 침투되는 분위기이며 동향이다. 2) 목적상의 분류 ① 흠숭기도 절대자 하느님께 드리는 공경이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행위이다. ② 감사기도 나의 존재와 여러 가지 은혜를 풍부히 베푸심에 감사드리는 기도이다. ③ 용서기도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또는 궐함(하지 않음)까지도 잘못한 죄에 대하여, 뉘우치며 용서를 빌어야 한다. ④ 간청기도 우리의 필요한 것을 청하는 것이다. 구원을 위하여, 또는 현세적으로 필요한 어떤 것을 간청하는 것이다. 6. 생활 적용 및 주의 사항 1) 기도할 때에 빠지기 쉬운 분심에는 고의적인 분심과 그렇지 않는 것이 있다. 고의로 하는 분심이 아닐 경우에는 그 분심이 오히려 더 뜻깊은 기도가 되게 할 수도 있겠으나, 고의로 분심을 할 경우에는 되도록 그 이유를 찾아내어 제거하고 인내하면서, 끊임없이 하느님께로 마음을 들어 올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2) 자기의 삶이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는 삶으로 영위될 때 하느님께 감사와 흠숭을 드리고, 자기의 삶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생활로 이어질 때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며 하느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이렇게 올바른 삶에로 나아가는 내적 쇄신의 과정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3) 우리는 때때로 성당을 찾아가 일상생활의 모든 잡념을 벗어버리고 잠시나마 하느님 앞에 침묵하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곤 한다. 그리고 슬픔과 고통들을 하느님 앞에 잠잠히 드리게 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시간을 통하여 우리는 신앙에 생기를 불어 넣고 하느님 안에서 그분의 거룩한 뜻대로 살아가도록 다짐한다. 4) 우리는 흔히 직장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오후 시간에 성당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성당 안에 들어가 잠시 기도나 성체조배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성당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방문하는 것이고 그분의 사랑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매일의 생활 중에 이러한 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1. 대신덕(향주덕)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향해 가는데 있어서 반드시 지녀야 할 덕이다.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고 참된 삶을 지향할 때 형성되는 그리스도인의 덕목이다. 그래서 이를 대신덕(對神德) 혹은 향주덕(向主德)이라 한다. 인간은 이 덕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달하며 하느님 사랑의 증인이 된다. 즉 믿음, 희망, 사랑의 세 가지 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우신 사랑을 끝없이 믿고, 죄를 피하여 영원한 생명이신 하느님을 희망하며, 선을 행하고 사랑이신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 희망, 사랑은 하느님과의 일치의 조건이며 결과일 뿐 아니라 신앙 생활의 시작과 마침이요, 방법과 힘이 되며, 신앙인의 근본 태도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이다. 이는 하느님과 인류의 선에로 방향지워져 있는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위하여 살고 서로를 완전하게 도와줄 수 있게 한다. 2. 믿음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께서 창조와 계시를 통해 알려 주신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서에 따르면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부르시고 또 인간이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자유로운 응답, 즉 자기를 온전히 하느님께 자유로이 바치며 그분의 사랑에 맡기는 태도가 곧 믿음이다. 온갖 의혹과 어두움이 덮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 수없이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침묵하시더라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내 보이신 당신의 사랑을 믿습니다. 설령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모순 투성이인 세상 한 가운데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응답이 바로 믿음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믿기 위해서는 알아야 하고, 알기 위해서 믿는다"고 하였다. 모든 사물을 하느님의 눈과 지혜로 볼 줄 아는 그런 참된 믿음은 사랑의 행위를 통하여 더 잘 드러나게 될 것이다. 3. 희망 희망은 믿음을 근거로 생겨나며, 인간이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에 대한 소망이다. 우리는 희망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풍요로운 은총을 주실 것이며, 또 우리 신앙의 최종 목표가 무엇인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 구원에 대한 의혹은 희망이 부족한 것에서 생기며 희망의 덕을 거스르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구원을 원하므로 희망은 어떤 의미에서 확실성을 가지게 된다. 그것은 내가 구원되기를 바라는 한, 나는 구원될 수 있다는 확실성이다. 그리고 설혹 우리가 구원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분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 성서는 베드로 사도가 주님을 세 번이나 부정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는 주님으로부터 그의 형제들을 믿음 안에서 굳게 하도록 불리워 선택받은 사람이었지만 그분을 배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베드로 사도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과 희망을 주셨다. 이렇게 희망은 우리의 행위를 근거로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기대로서가 아니라, 나의 부족함과 부당함에도 불구하고 크신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이다. 4. 사랑 하느님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이 갖게 되는 자연스런 덕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는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두고 있으면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사랑의 삶으로 보여 주며 살아가게 된다. 나아가 하느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전적인 내어드림, 즉 자신의 뜻과 자신의 지성과 자신의 모든 인격의 봉헌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며 하느님의 사랑으로 가꾸어진 희망 안에서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랑을 통해서 믿음과 희망이 보다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믿고 신뢰할 수 있으며 희망할 수 있고 그분께 온전히 내어드림으로써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시도하는 모든 인간적 노력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그 표현인 이웃 사랑을 통해서 더욱 하느님께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이다". 5. 생활 적용 및 주의 사항 1) 인간의 덕은 우리의 행위를 규제하고, 우리의 열정에 질서를 부여하며 우리의 행실을 이성과 신앙에 따라 인도하는 지성과 의지의 흔들리지 않는 마음 가짐이다. 인간의 덕은 지혜, 정의, 용기, 절제의 사추덕(四樞德)을 중심으로 분류할 수 있다. 2) 향주덕은 그리스도인들을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도록 준비시킨다. 향주덕의 근원과 동기와 대상은, 믿음으로 알고 희망하며 우리가 그분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하느님이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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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0. 31. 오후 12: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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