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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숭고한 것이며,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다. 이런 인간의 생명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므로, 인간은 스스로 생명을 해칠 권한이 없다. 즉, 인간은 부여받은 생명에 대해 사용권만을 지닌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느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목적대로 생명을 사용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주어진 생명을 보존하여야 하며,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와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과 같이 인간의 완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와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유형, 노예화, 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매매, 또는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단순한 수익의 도구로 취급되는 노동의 악조건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행위 등은 인간 문명을 손상시키는 행위이며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극도의 모욕이다 (사목헌장 27항 참조). 1. 생명 경시 풍조 현대사회는 과학기술문명의 발달에 의해 인간이 많은 혜택과 편의를 제공 받는 사회이다. 그런데 현대 사회인들은 물질적인 가치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인간적인 가치를 소홀히 여기고 생명의 가치마저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경향은 일차적으로 가치관의 혼란으로 빚어진 것이지만 인간과 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지식과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여 왔는가에 달려 있다. 이 점에서 현재의 생명 경시 현상은 인간의 삶을 둘러싼 환경, 사회적 조건, 나아가서 생태계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들은 인간 생명 윤리의 측면에서 볼 때 인간의 기본적인 삶에 관련되는 것으로, 전문적인 어떤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들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안락사, 장애자, 낙태, 사형제도의 존속 타당성 등의 문제인 것이다. 또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어서 사회적 조건 및 생태계의 보존과 관련된 문제도 포함된다. 2. 낙태(임신중절) 태아도 엄연한 생명인 만큼 낙태는 어떤 경우에도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이를 마음대로 없애서는 안된다는 종교적 교리에 입각하고 있다. 1970년대에 이르러 고도화된 과학 기술과 인간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구실 아래 낙태는 증가되어 왔다. 그리고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인공 유산과 그 법적 자유화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런 현대의 그릇된 의식 속에서, 교회는 이에 대항하여 강력한 반대 운동을 펼치는 한편, 1974년 11월 18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결정적인 교회의 입장을 천명하게 된다([인공유산 반대 선언문]). 교회는 어떠한 경우일지라도 태아의 생명에 대한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을 신성시하여 그에 대한 반대의 경우를 엄격히 단죄하는 성서적 맥락에 근거를 두고 있다. 태아의 생명 역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달려 있다. 태아도 생명인 이상, 낙태는 생명을 해치는 살해의 행위로 규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런 살인의 행위를 강력히 단죄한다. 또한 교회는 이런 낙태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현실적 편리주의와 안일주의, 그리고 생명 경시 풍토를 개선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이는 현재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낙태를 합법화하였거나, 합법화하려는 조짐에 대하여 강력히 대응하는 것이며, 어떠한 이유로든지 간에 무죄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려는 교회의 입장인 것이다. 3. 자살 자살은 자기 사랑의 거부이고 생존 본능의 부정이며, 이웃과 여러 공동체 또는 전사회에 대한 정의와 사랑의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선물이며, 생명과 죽음의 주인 역시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은 하느님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즉,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관리할 자유와 책임을 부여받았지, 생명을 종식시킬 자유까지 받은 것은 아닌 것이다. 이런 윤리적 부당성을 토대로 볼 때, 자살은 하느님뿐 아니라 사회,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도 거스르는 중대한 죄악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가톨릭 윤리에서는 자살을 자신에 대한 사랑 의무와 완성을 위한 노력의 포기로 간주하고 그 예방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활기 있는 신앙과 종교적인 확신을 가지고 자살을 방지하는 데 있어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4. 안락사 (安樂死) 안락사(euthanasia)란 본래 심한 고통이 없는 '편안한 죽음'을 뜻했으나 오늘날에는 그 말의 본래 의미보다는 질병의 고통이나 단말마의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개입이라는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다. 결국 극도의 고통을 종식시키거나, 가족과 사회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울 수도 있는 정신질환 및 불치병 환자를 비참한 생명의 연장에서 구제하기 위한 '안락 살해'를 뜻한다. 교회는 우선적으로 안락사 자체를 치료할 수 없는 환자에 대한 직접 살해로 본다. 더구나 환자의 요청이 있건 없건 간에 이런 안락사가 사회적으로 일반화된다면 유아나 정신적 결함자, 그리고 신체적 불구자와 가정이나 국가에서 책임질 수 없는 자에 대한 공공연한 살인은 공공연하게 전개될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환자의 요청이 있건 없건 간에 안락사를 불법적이고 하나의 살인 행위로 규정한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볼 때 안락사는 죽음으로써 고통을 제거하려는 현세적인 자기 충만과 그리스도의 고통의 의미를 망각한 처사이기 때문이다. 1) 안락사를 허용하는 경우 교회는 직접적인 안락사를 결코 허용될 수 없는 살인의 행위로 단정짓는다. 그러나 소극적인 안락사의 의미 안에서, 예외적인 방법(기계 설치나 기타 기구 등)으로 뇌사자가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경우에는 설치된 기구를 제거함으로써 비롯되는 죽음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경우는 엄밀한 의미에서 안락사라고 보기는 어려운 경우이며, 교회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조건을 요구하고 있다. ① 건강을 회복할 희망이 절대 없어야 한다. ② 그 치료가 환자와 가족에게 큰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 ③ 환자의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5. 뇌사 교회에서는 아직 뇌사문제에 대한 공식적 교의를 발표한 적은 없지만 "죽음의 판정을 위한 뇌 관련 기준은 충분히 발전되어 있고 타당한 정의가 내려져 있기 때문에 몇 가지 구체적 조건만 충족하다면 윤리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의 신빙성과 확실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대한 광범위한 의견일치가 형성되어 가고 있다. 뇌사 논의는 의료분야에서 비교적 최근에 생긴 현상으로, 점점 더 세련되어가는 기술과 모든 기능을 통제하는 뇌기능에 대한 연구와 이해의 가능성이 열림으로써 가능해진 것으로 장기이식에 관한 논의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며, 죽음이 생긴 후에 이식을 위한 자신의 기관을 기증함으로써 중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연장된 삶을 누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일은 윤리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갸륵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조건과 사회적 합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지속적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 중의 하나는 인간으로 하여금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도록 인간에게 우주 지배와 경영권을 주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모상을 타고난 인간은 자신의 이성과 감성과 의지의 힘으로 점차로 자연과 짐승들을 정복하며 문명과 문화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발전의 뒷전에 쌓여 있는 산업 폐기물과 쓰레기들은 인간의 위협이 되고 있으며 또한 어떤 면에서 인간을 해롭게 하는 적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땅에 대한 정복과 우주 지배와 경영은 반드시 자연의 생태계를 존중하면서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꾀하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하겠다. 만일 인간이 자신만의 유익만을 위해 무자비하게 자연 질서와 환경을 파괴할 때 인간은 그 이기적인 욕심에서 우러나오는 악한 행동으로 인해 역시 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 환경의 보존은 인간을 위한 과학 기술의 발전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인간의 우주 지배와 경영은 하느님께서 섭리하신 창조 질서와 조화를 존중하는 가운데 이룩되어야 한다. 1. 우리의 자연 환경보호에 이상은 크게, 실천은 가장 작은 것부터 해야 한다. 즉 비닐 봉지 사용을 줄이는 작은 실천이 하느님의 창조질서를 존중한다는 큰 생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창조 질서, 자연 환경을 보호하여 이 세상을 존중하고 창조 질서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2. 하느님의 은총은 자연과의 올바른 관계가 성립될 때 나타난다. 인간은 자연 없이 살 수 없고, 자연은 인간에게 물질적, 정신적 혜택을 준다. 하느님의 은총은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이들 안에 은혜로이 나타나게 된다. 3.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은 결국 이웃 인간을 굶주리게 만들게 되며 그것은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신 하느님께 먼저 감사를 드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 나누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그리고 인간에게 먹을 것을 내주는 자연의 고마움을 느끼고, 더욱 자연을 소중히 가꾸고 아끼며 올바르게 개척하는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인공수정(人工受精, Artificial Insemination) 자연적인 성교로 이루어지는 자연 수정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가축의 우량 품종을 얻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인공수정이 인간에게 처음으로 적용된 것은 18세기 말로 처음에는 배우자간의 인공수정의 형태로 시작되다가 1884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인공수정은 사실상 오늘날 아기를 갖기 원하는 부부나 미혼 여성에게는 거의 보편화된 방법이 되어 버렸고, 이에 따르는 여러 가지 법적, 윤리적인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2. 호스피스 (Hospis) 호스피스는 중세 예루살렘 성지로 가는 순례자들이 편히 쉬어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숙소(Hospes)에서 기인된 말이다. 이는 임종의 병상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하여 투병 기간에는 높은 수준의 치료, 간호, 사회적.정신적 보살핌을 제공하고 임종시에는 품위있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환자의 가족들까지 보살펴 주는 활동이다. 이 호스피스 활동은 인간 생명에 대한 사랑에서 시작된 것이며 하느님의 모상대로 태어난 인간의 존엄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사랑에 찬 봉사 행위이다. 3. 대리모(代理母) 불임부부(不姙夫婦)나 자식 키우기를 원하는 독신자를 위하여 대신 아기를 낳아 주는 여자 4. 산아제한 교회에서는 산아제한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방법이 가톨릭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교회에서 허용하는 산아제한 방법은 자연적인 방법으로, 즉 가임기간을 피해서 성관계를 가질 것을 권장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용이하지는 않겠으나 한 달에 3, 4일간만 피하면 된다. |
제 16 장 그리스도인과 생명 ☜ 목록보기
2006. 10. 31. 오후 12: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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