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0일 오늘의 성인

2006. 11. 29. 오후 5:26:35

글자

* ♬ 오늘의 성인 8월 20일 ♬ *




1.베르나르도(Bernardus)

베르나르도는 '굳센 곰'이란 뜻이다.
세기의 위인, 그는 오늘날 '세기의 골키퍼' , '세기의 화해자' 이제는 더 이상 어떤 편에서도 충격을 가하지 않는 '세기의 정당한 공격수'등 너무도 많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그는 '12세기의 인물'이다. 여기에는 아무런 의심도 논쟁도 없다. 이 위대한 인물은 바로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이다.

교황의 조언자, 제2십자군의 설교자, 신앙의 옹호자, 분열의 치료자, 수도원의 개혁자, 성서 학자, 신학자이며 웅변적인 설교자, 어떤 명칭에서도 그는 보통 사람과는 구별이 된다. 이 모든 자질이 있었음에도 베르나르도는 젊어서부터 은둔하는수도 생활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1111년, 그의 나이 20세에 베르나르도는 시토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 집을 떠났다. 그의 다섯 형제와 두 명의 삼촌과 30명의 젊은 친구들이 그를 따라 수도원에 들어갔다. 쇠퇴해 가던 공동체가 4년 안에 베르나르도 아빠스와 더블어 '윔우드'골짜기 근처에 새집을 짓기에 충분할 정도로 생기를 되찾았다.

열성적인 이 젊은이는 타인에게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많은 요구를 했다. 쇠약해진 몸이 그를 더욱 더 끈기 있고 이해심 있게 만들었다. 그 골짜기는 얼마 후 클레르보 즉 빛의 골짜기로 이름이바뀌었다. 중재자로서, 상담자로서 그의 능력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수도원 문제에서부터 오래된 분쟁의 해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마음을 쏟았다. 그는 로마의 몇몇 사람들의 감정을 건드린 경우도 있었다.

베르나르도는 교황의 수위권을 옹호하는 일에 헌신했다.그는 로마로부터 온 걱정스러운 편지에 답하며 로마에 있는 훌륭한 사제들로도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에 충분하다고 대답했다. 만일 그들의 관심을 끌 만한 어떤 일이 생겼다면 베르나르도가 제일 먼저 그들에게 알렸을 것이다.

그 후 베르나르도는 무수한 분열을 진압하고 대립 교황주의와 맞서 로마 교황에게 유리하도록 해결하였다. 로마 교황청은 베르나르도에게 전유럽의 제 2 십자군들에게 설교하도록 설득했다. 그의 설교는 너무도 열광적이어서 대부대가 모였고, 마치 십자군의 리가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군인과 그들 지도자들의 이상은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이상과는 달랐으므로 십자군 계획은 완 전한 군사적 파멸과 윤리적 타락으로 끝이 났다.

베르나르도는 십자군의 타락에 대해 여러 가지 면에서 책임을 느꼈다. 이 무거운 부담이 그의 죽음을 재촉하여 그는 1153년 8월20일에 세상을 떠났다.

2.성 사무엘, Samuel

사무엘은 '하느님이 들어주신 자'란 뜻이다.

사무엘은 구약에 나오는 최초의 예언자이다. 구약의 사무엘 상,하에 그의 탄생과 배경에 대해 잘 적혀 있다. 특히 사무엘 상권을 읽어보면 사무엘의 탄생 배경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머니 안나가 야훼 하느님께 약속한 대로 사무엘은 하느님께 봉헌되어 사제 엘리와 함께 살게 된다. 사무엘이 예언자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도 새롭다. 하느님은 사무엘을 부르나 사무엘은 하느님이 아닌 사제 엘리가 부르는 줄로 알고 쫓아간다. 마침내 엘리 사제의 도움을 얻어 야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사무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최초의 왕인 사울을 축성한 예언자이다. 사무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의 라마에서 죽었으며, 8세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공경을 받기 시작하였다.


3.성녀 데레사 요르넷 이바르스, Teresa Jornet Ibars

카탈로니아 태생인 복녀 데레사는 수도회를 창설하기 전에 학교 교사로 지냈다.

그녀는 "경로 수녀회"를 창설했고, 1957년에 시복되었다


4. 성녀 마리아 데 마씨아스, M.Mattias

마리아 데 마씨아스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흠숭하고,

어린이의 교육 사업을 목표로 하는 수녀회를 창설하고, 비오 11세의 인가를 받았다. 변호사이던 요한 데 마씨아스씨의 맏딸로 태어난 그녀는 라지오와 캄파니아 사이의 발레꼬르사에서 자랐고, 가스팔 델 부팔로 성인의 사업을 듣고 큰 감명을 받은 차에, 그분의 제자이며 후일 자신의 지도자가 되신 가경자 요한 멜리니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1834년, 그녀는 소속교구의 주교로부터 학교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자, 단지 여교사가 되는게 아니라, 수도회의 창설을 꿈꾸고, 다음해부터 동조자를 물색케 되었다. 1837년, 그녀는 가정의 어머니들을 위하여 "영신수련"을 지도한 게 큰 성공을 거두게 됨으로써 부모들이 학교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으며, 1840년에는 두 번째 학교 문을 열었다. 이리하여 이 수녀회로 날로 발전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그녀는 수도회의 확장을 위하여 애쓰던 중, 로마에서 운명하니, 61세였다.


5.성 오스윈, oswin

633년, 그의 부친인 데이라의 국왕 오스릭이 웰스왕 카드왈론에 의해 살해되었을 때, 웨섹스로 잡혀가, 그곳에서 세례를 받고, 교육도 받았다. 성 오스왈드가 메르시아의 펜다왕과의 전투에서 패하므로써, 그가 데이라의 왕이 되었다.

그는 데이라의 크리스챤화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활동하던 중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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