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9일 오늘의 성인

2006. 11. 29. 오후 5:22:25

글자

* ♬ 오늘의 성인 8월 19일 ♬ *




1. 루도비코(Ludovico)

루도비코는 '빛나는 전투'란 뜻이다.

그는 시칠리아 섬의 왕 가롤로 2세의 아들이며 헝가리의 왕 스테파노 5세의 딸 마리아를 모친으로, 또 프랑스 왕 루도비코는 아버지의 친족이고, 투린기아의 성녀 엘리사벳은 어머니의 친척이 되는 고귀한 신분으로서, 그의 졍결한 마음, 그의 독실한 신앙은 일찌기 타인들의 감탄을 사게 되었으나, 이처럼 아무런 부족함이 없었던 왕후의 집안에도 하느님의 시련은 내려졌다. 즉 가롤로 왕에게 불만을 품은 시칠리아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생포하여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유폐한 일이다. 왕은 4년후에 겨우 석방되었으나 그 대신 공작(公爵)50명과 왕자 3명을 인질로 남기게 된 것이다. 루도비코도 그 중 한사람으로 바르셀로나에 감금되어 갖가지 냉대와 모욕을 받았다.

루도비코는 아버지에게 하느님께 일생을 바치고 싶다는 소망을 알렸으나 본래 그런것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펄쩍 뛰며 "세상을 버린다는 건 말도 안된다. 너는 아라고니아 왕의 여동생을 왕비로 맞아들여 내 상속자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느님과 맺은 서원은 교황께 알리면 되지 않는가?"하며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나 루도비코의 결심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후세에 상속받을 천국의 보물에 비하면 현세의 왕위나 궁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하며 시종일관 뜻을 변치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아버지도 차남인 로베르토에게 그 상속권을 넘기기로 하고 루도비코의 수도원 입회를 승낙했다.

루도비코는 열심히 학문을 연마하여 사제가 된 후 교황 보니파시오 8세의 집전 아래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가 하느님과 맺은 서원대로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한 것은 그 후의 일이고, 장엄한 종신 서원을 발한 것은 1296년 예수 성탄 축일 전날이었다.

그 수입의 태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하며 매일 극빈자에게 어진 어머니와 같이 대했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심으로 노력했다. 그러자 그의 성덕은 온 천하에 알려져 그 주교를 탐내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빨리 불러 가셨다. 1297년 7월 뜻하지 않은 열병에 걸려 루도비코는 병석에 누운 지 1개월만에 병자 성사를 받고 8월 19일, 열렬한 기도 중에 그의 순결 무구한 영혼을 하느님께 바쳤던 것이다. 그의 나이 24세요, 그 생애는 세상사람이 생각하는 평균 생명의 반도 못되는 짧은 세월을 이 세상에서 보냈으나, 남들이 백년에도 이룰 수 없는 공적을 남겨 놓았다. 1317년 시성되었다.

2.요한 에우데스(Eudes)

예수 성심회의 창설자이자 학자였던 사제 요한에우데스는 14세 되던 해에 예수회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부모의 소망과는 달리 설교회에 입회하여 사제로 활동하였습니다. 한때 그는 노르망디에 만연된 전염병 희생자를 돌보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향후 10여년 설교가요, 고해사제 그리고 얀세니즘의 강력한 반대자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성인은 1643년에 예수 마리아회를 세워 신학교의 정신적 방향을 바로잡고 일반 신도들의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성인이 오늘날 크게 알려진 계기는 성녀 마리아 마르가리따 알라콕과 함께 예수 성심 공경 신심을 널리 전하고 성모 신심을 보편화 하는데 기여하였기 때문입니다.

순결하고 티없으신 성모 성심께 대한 신심의 17세기 성 요한 에우데스에 의해 최초로 시작되었는데 그는 성모 성심을 예수 성심과 긴밀히 연결시켰습니다.이는 예수님의 성심을 공경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다. 교회는 이 신심에 대해 오랫동안 신중한 태도를 취하였습니다.

성모 성심 공경은 19세기에 따로 날을 잡아 기념하기 전까지는 예수 성심 신심 미사에서 기억하는 형태로 전례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 1805년, 비오 7세는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을 기념하는 축일을 지낼 것을 허용하였고, 1855년에는 에우데스에 의해 만들어진 경문을 바탕으로 한 고유미사가 행해졌으며 1857년 고유한 성무일도 경문도 만들어졌습니다.


3.안드레아(Andrew)

실리치아의 호민관이었던 성인은 페르시아와의 전투 때 예수 그리스도 를 신뢰함으로써 승리를 거두자 그의 부하 다수와 함께 크리스찬이 되기 로 결정하였다. 체살리아의 베드로 주교로 부터 세례를 받자마자 체포되 어 순교하였으며 동방의 '위대한 순교자'로 전해지고 있다.


4. 에밀리아(Emily)

1314 원장 베르첼리 에밀리아는 강제로 결혼시키려는 부친의 강압을 뿌리치고,

수도원을 세워야 한다는 확신을 부친에게 설득하여, 마침내 도미니꼬 율수 3회의 첫번째 수도원을 세웠으며,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자주 성체를 모시기로 유명하였는데, 그 당시의 교회는 성체를 자주 모시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자주 탈혼에 빠졌고 환시를 보았으며,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 그녀의 신심이 뛰어남을 입증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공경은 1769년부터 공식으로 인정받았다


5.디모테오(Timothy)

디모테오는 '하느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 또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자'란 뜻이다.

디오클레시아노 황제가 크리스챤을 상대로 계속하여 강경책을 펼 때였다. 성 디모테오 일행은 팔레스티나에 살던 크리스챤이다. 그는 용감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며 비인간적으로 매를 맞았으며, 쇠사슬로 묶인 채 가자에서 천천히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여 장렬히 순교하였다.

성 아가삐오와 테클라는 맹수의 밥이 되는 형을 받았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아가삐오는 목숨을 건졌으나 즉시 노예로 팔려갔다가 주인의 손에 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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