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8일 오늘의성인

2006. 11. 29. 오후 5: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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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성인 8월 18일 ♬ *




1. 헬레나(Helena)

헬레나는 희랍어로 '태양'이란 뜻이다.

로마 제국이 비로소 가톨릭에 자유를 준 것은 저 유명한 콘스탄티노 대제인데, 그때까지 300년 동안 계속된 박해에서 흔연히 신앙을 위해 생명을 바친 무수한 신자들의 용감성과 또 그들의 평상시의 훌륭한 행동은 아울러 뜻있는 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이다.

콘스탄티노 대제의 아버지 콘스탄디오나 어머니 헬레나도 그러한 감화를 받아 은연중 가톨릭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헬레나는 곧 세례를 받고 후세에 성녀로서의 존경을 받을만한 훌륭한 신앙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그녀가 태어난 해는 확실치 않으나 대개 250년 전후로 추측된다. 그녀의 아들인 콘스탄티노가 274년 2월 17일에 출생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향은 소아시아의 비치니아 주에 있는 드레파눔이라는 곳이었으며 그녀의 양친은 명문의 집안도 아니고 재산도 넉넉하지 못했으므로 헬레나도 손수 벌어서 먹고사는 법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본래 미모에다 아름다운 마음씨의 소유자였으므로 마침 그곳에 배속 근부 중인 로마의 장교 콘스탄티오 클로루스의 눈에 들게되어 낮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초산(初産)을 한 곳은 나이수스라고 하는 지금의 닛슈 시(세르비아 영내에 있다)이며 그 아기의 이름이 곧 콘스탄티노였다

당시 헬레나의 몸은 왕대비라는 높은 지위에 있고 또한 조폐권까지 가지고 있어 그녀의 부유함은 비할 데가 없었으나, 그녀는 빈민에게 희사하거나 성당 건축을 위한 것이라면 한 푼도 아끼지 않고 모든 원조를 제공했으며, 자기의 존귀한 신분을 잊고 천한 사람들과 함께 예식에 참여도 하고, 기도하기를 좋아했다. 콘스탄티노 황제는 그 후 자기의 기념 도시인 동 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톤스탄티노폴리스, 톤스탄티노의 도시라는 뜻이다)을 그 수도로 정했다.

헬레나는 예수께서 일생을 지내신 팔레스티나 지방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곳에 살게 됨을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또한 그녀의 유일한 소망인 성지 순례를 마침내 326년에 이루었다. 그때 교회의 원수들은 옛날의 성스러운 유물을 없애기 위해 갈바리아 산상에 세워졌던 주님의 십자가를 어딘가로 치워 버리고 그 대신 그 곳에다 베누스 여신의 동상을 세워 놓았었다. 헬레나는 여러 곳을 발굴해 고생 끝에 겨우 주님의 십자가를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그녀의 문장은 십자가이다.

헬레나는 또다시 주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과 주님의 승천지인 올리브 동산에 기념 성당을 건축하고 많은 유물을 모시고 콘스탄티노플에 귀환했으나 얼마 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났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80세였다. 그녀의 상본은 보통 머리에 아름다운 관을 쓰고 화려한 복장에 망토를 두르고 위엄을 갖춘 왕대비의 복장으로 십자가를 안고 있는 모습으로 그린다

2.베아트리체 다 살바(B. da Silva)

베아트리체는 포르투갈에서 브리트(brites)로 알려진 분인데, 그녀는 개혁 프란치스꼬회의 창시자인 성 아마데우스의 동생이다. 그녀는 이사벨 황녀의 시녀로 있다가, 그녀가 요한 2세와 결혼할 때 스페인으로 함께 수행하였는데, 이때의 나이는 20세였다.

베아트리체의 미모가 여왕에게 질투심을 느끼게 하여, 어이없는 누명을 뒤집어 쓰고는 3일 동안 투옥되었는데, 이때 음식조차 조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석방된 그녀는 궁중생활에 환멸을 느끼고 톨레도로 가서 씨토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녀는 오랫동안 여자 수도회 창설을 꿈꾸어 오다가, 1484년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무염시태 수녀회를 창설하게 되었다. 가톨릭이던 이사벨라 여왕이 이 수녀회의 첫 공동체로 사용하도록 갈리아나 성을 하사하였다. 그녀는 씨토회의 규칙을 따랐고, 푸른 외투에 흰 수도복을 입었는데, 성모님의 발현이 여러 번 있었다고 한다. 베아트리체는 1490년에 사망하였는데, 이때부터 이 새로운 수도회는 톨레도의 대주교이며, 프란치스꼬 회원인 씨메네스 추기경의 영향을 받게 되므로써, 마침내 글라라회 규칙을 준행하는 단체로 승인받았다. 프란치스꼬회는 베아트리체 다 살바와 더불어 바울라 몬딸도의 축일을 함께 지낸다. 바울라는 마투아의 글라라회원으로 신비가이며, 1514년에 운명하였고, 1906년에 시성되었다.


3.아가비도(agapitus)

당시 15세의 어린 나이였던 아가비도가 집정관 안티오쿠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다가 신앙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여 심한 매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다가 참수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음식과 마실 물도 없이 4일 동안이나 독방에 갇혔고, 타오르는 석탄을 머리에 쏟아붓고 하여 그의 뼈가 드러날 정도였다.


4.안젤로 아우구스티노(ANGELO AUGUSTINE)

안젤로 아우구스티노 마찡기는 플로렌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가르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레 셀베, 프라스까띠 그리고 플로렌스 등지의 수도원 장상직을 역임하면서 덕행의 귀감으로 존경을 받았다.

또한 그는 설교가로서도 큰 명성을 얻었는데, 청중들은 그의 입에서 꽃들이 쏟아지는 광경을 수차례나 목격했노라고 증언하였다. 또한 그는 1413년에 야고보 알베르띠가 착수한 수도원 개혁 사업을 주도해 나갔는데, 그의 개혁 원리는 모든 사유 재산의 사용 금지와 수도원 외부의 거주 금지 등이 주축을 이루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고한 1438년 8월 16일에 선종하였다.


5.알리피오(alypius)

북 아프리카 타가스테 태생인 알리피오는 어린 시절부터 성 아우구스띠노의 절친한 친구였는데, 카르타고에서 그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그의 부친이 아우구스띠노와 상종하지 말라고 금지할 때까지 그와 함께 마니교도가 되었다.

알리피오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로 가서, 다시 아우구스띠노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알리피오는 까씨치아꿈에서 아우구스띠노와 함께 있었ㅇ며, 388년에는 그와 함께 아프리카로 돌아 왔다. 그들은 아우구스띠노가 세운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 3년 동안 타가스테에서 기도와 보속의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 다음에 히뽀로 가서 거기서 그들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팔레스티나를 순례한 후, 알리피오는 393년에 타가스테의 주교가 되어, 오랫동안 봉사하였다. 그 이후는 아우구스띠노를 위해 여생을 보냈다. 그는 아우구스띠노가 까씨치아꿈에서 쓴 대화란 책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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