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인 8월 16일김김정희2006. 11. 29. 오후 5:16:25글자A−A+ * ♬ 오늘의 성인 8월 16일 ♬ * 1.헝가리의 성스테파노(975-1038) 스테파노는 '왕관(면류관)'이란 뜻이다.교회는 전세계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은 싫든 좋든 간에 지역문화에 따라 항상 영향을 받는다.순수한 그리스도교란 없다. 즉 멕시코 그리스도교,폴란드 그리스도교, 필리핀 그리스도교 등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헝가리의 영적 수호자이며 국가적 영웅인 스테파노의 삶에서 명백히 알 수 있다.이교도로 태어난 그는 10세에 아버지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9세기에 다뉴브에서 침입해 온 잔인한 약탈자인 마자르족의 족장이다. 20세에 그는 지세라와 결혼을 하였는데 그녀는 후에 황제가 된 성헨리코의 누이이다.스테파노가 아버지를 계승했을 때, 그는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나라를 그리스도교화했다.그는 이교도 귀족들에 의한 일련의 반란을 진압했고, 마자르족을 하나의 강한 국가 집단으로 결합시켰다. 그는 교회 조직을 수립하고 또 자신이 교황에게서 왕의 칭호를 받기 위해 로마에 사신을 보냈다. 그는 1001년 크리스마스에 왕위에 올랐다. 스테파노는 교회,사제,가난한 이를 돌보기 위하여 십일조 제도를 수립했다. 사람들은 10개 마을을 단위로 교회 하나를 지어야 했고, 사제 한 사람을 책임져야만 했다.그는 과격하게 이교도 풍습을 제거하고 성직자와 종교에 봉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든 이에게 결혼하도록 명령했다. 특히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1031년, 그의 아들 에메리히가 죽자 그의 여생은 후계자에 관한 논쟁으로 한층 더 비참해졌다. 그의 조카들은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는 1038년에 세상을 떠났으며, 1083년에는 그의 아들과 함께 시성되었다.스테파노는 사실상 그때까지 국왕이라는 정식 칭호는 갖지 못했다.그래서 교황 실베스테르 2세는 그의 포교상의 공적을 참작해 비로소 정식으로 국왕의 칭호를 수여하고 아름다운 왕관을 선사했다.그 왕관은 그 후 대관식 때마다 사용되었고, 현재는 유일한 국보로서 보존되어 있다. 왕이 된 그는 더욱 정치에 열심해 그 나라는 나날이 번성해 갔다.스테파노는 위엄 있는 한 나라의 국왕이면서도 매우 겸손하여, 복장은 소박한 것을 택하며 빈민에게도 손수 선물을 나누어 줄 정도였다.때로는 불량배에게 붙들려 변을 당한 일도 있었다. 스테파노는 이런때에도 조금도 분개하지 않고 도리어 무도한 그들에게 사과까지 했다고 한다.그와 같이 온화한 왕은 누구에게든지 친절했다. 사람, 특히 성인들이 누구나 다 마찬가지로 겪었듯이 스테파노도 시련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왕은 평화를 사랑했으나,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될 피치 못할 사정이 전후 세 번 있었다. 세 번의 전쟁 중에 왕자는 다 전사하고 남은 것은 다만 에메리코라는 태자 하나 뿐이었다.에레리코는 덕이 높고 생활이 성스러워 부왕의 계승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라 하여 스테파노는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찌 된 셈인지 자기보다 7년이나 앞서 1031년에 사망하고 말았다.그때 아들이 무덤에서 기적이 계속 일어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에메리코도 현재 성인으로서 존경받고 있는 분이다. 2.로코(Rocco) 로코는 '키 큰 사람' 또는 '휴식'이란 뜻이다.프랑스의 몽펠리에르 출신인데, 그의 부친은 그 지방의 장관이었다. 그러나 20세 되던 해에 부친을 잃자, 그는 로마 순례를 했는데, 그 당시 이탈리아를 휩쓴 전염병의 희생자를 돕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그 역시 피아첸짜에서 전염되었으나, 기적적으로 쾌유되었다. 이때부터 그에게는 치유의 은사가 풍성하게 드러났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순례자로 변장한 스파이 혐의를 쓰고서 5년 동안이나 투옥되었다. 로코는 감옥에서 죽었는데, 나중에서야 그가 전직 장관의 아들이며 현 장관의 조카임이 판명되었다. 그는 무엇보다도 치유의 은사를 베푸는 사람으로 유명하고 또 그렇게 공경받으며, 이탈리아에서는 로코, 스페인에서는 로께로 부른다 3.세레나(Serena) 성녀는 로마 황제 디오클레지아노(Diocleziano)의 아내로서 왕후이 었다.왕후는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성녀이다. 4.성 라우렌시오 로리까토, 통회자(1243년 순교) 아뽈리아의 파넬로 태생인 그는, 젊어서 실수로 인하여 사람을 죽인 일이 있었던 사람이다. 이 사건에 대한 보속으로 그는 꼼뽀스텔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수비아꼬로 가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사끄로스페코 교외의 어느 동굴에서 33년 동안이나 살면서, 무서우리만치 고행을 하여, 로리까토란 칭호를 들었으니, 이는 "흉갑을 입은 사람"이란 뜻으로 고행하는 사람들의 복장이다. 5.아르사치오(arsacius) 페르샤 태생의 로마 군인이었던 그는 리치니우스 황제 치하의 박해 때 크리스챤 신앙 때문에 체포되었으나 얼마 후에 석방되었다. 그러나 그는 니코메디아의 어느 마을로 가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는 기적을 행하고 예견하는 선물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그는 지진이 일어난다고 예언한 사실 때문에 살해되었는데, 실제로 지진이 일어났다고 전해온다. 추천 🔗 공유 스크랩🚩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