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 오늘의 성인

2006. 11. 29. 오후 5: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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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성인 8월 15일 ♬ *




1.성모승천대축일(Maria)

성모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생활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라갔음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에 대한 최초의 날짜와 장소는 명확하지 않으나,3~4세기부터 순교자나 성인들을 그들의 사망일에 기념하는 사상에 부응하여 4세기 중엽의 '복되신 동정녀 기념일'이 성모의 죽음과 승천의 축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또 6세기 경에는 그 명칭이 'Dormitio'(일시적인 잠에 떨어짐)로 불렸으며 마우리치우스 황제(재위 582~602)에 의해 8월 15일로 정해졌다고 전해온다.
그후 7세기에 동방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지켜져 서방으로 전해졌으며 8세기에 8월 15일로 날짜가 확정되고 명칭도 'Dormitio'에서 '마리아의 승천으로 변화되었다.
이때 이미 교회는 성모 마리아의 승천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아주 일찍부터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긴념해 왔지만 이 교리가 공적으로 선포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원죄가 없으시고 평생 동정이신 하느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현세의 생활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밝히고 이를 선언 하는 바이다"(비오 12세의 사도헌장) 이 교의는 1950년 11월 1일 지난 수세기 동안 신자들이 믿어 왔던 신비를 교황 비오 12세가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이다. 성모승천이 비록 성서에 기록된 것은 아니지만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전승 (傳承)과 구세사(救世史)에 있어서 성모 마리아의 역할, 성모 마리아와 그리스도와의 관계, 교회 안에서 성모 마리아의 위치 등으로 받아들여진 신학적 결론이다.
즉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이며 하느님은 성자를 잉태하여 생명의 창조주를 낳으신 성모 마리아의 육신에 무덤의 부패를 면하게 하신 것이다. 교회의 달력을 살펴보면 성모께 대한 축일이 여러 번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감명 깊고 기쁜 인상을 주는 축일은 성모 승천 대축일일 것이다.
이 축일을 지내는 뜻은 두 가지가 있다. 즉 정결하신 성모님의 복된 임종과 천국에서의 비할 데 없는 영광을 누리는 그것이다.
성모께서 성령 강림 날 사도들과 더불어 성령을 받으셨다는 것은 사도 행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 후의 성모님의 동정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 후의 성모님의 생활은 사생활로서 인류구원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게서는 성령 강림 얼마 후 소아시아에 있는 에페소라는 곳에 가셨다.
십자가상에서의 예수의 유언대로 사도 성 요한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시며 덕을 닦고 천국에서 당신 아들을 다시 만날 기쁨의 날만을 기다리시며 여생을 보내신 것이다.
그의 임종의 장소와 일시가 어떻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전래된 바 없으니 이는 매수 섭섭한 일이다.

2.마리 스텔라(Mari Stella)혹 스텔라(Stella)

마리 스텔라는 혹은 스텔라는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을 지칭한다.
바다의 별이신 성모님을 마리 스텔라라고 하면서 망망대해에서 별처럼 항해하는 배들에게 등불이 되어주시는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즉 고단한 인생길에서 희망이 되시고, 삶의 등불, 동반자가 되어주는 성모님을 주보로 모신다. 그래서 특히 하늘에 올라 우리의 전구자가 되어주신 성모님을 기념하여 성모승천대축일은 8월 15일에 축일을 지내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성모님의 축일 중 본인이 좋아하는 축일에 지내면 된다.


3.아르눌프(Arnulf)

장교였으나 세상보다는 하느님께 봉사하는게 더 유익하다는 생각을 한 아르눌프는 그길로 수도원에 들어가 협소한 방을 만들어 절대 고독을 즐 기며, 오로지 기도와 보속에만 전념하였다.
그뒤 강제로 주교로 임명되었 으며 모든 업무에서 놀라운 지혜와 정열을 보여주었다


4.아르눌프 혹은 아르눌(armulf or arnoul)

성 아르눌은 플란데르 사람으로 프랑스의 앙리 1세와 로베르군의 장교였으나, 세상보다는 하느님께 봉사하는 게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길로 소와송에 있는 쌩-메다르드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손수 협소한 방안에 들어가서 절대 고독을 즐겼으며, 사람들과의 접촉은 전혀 없이 오로지 기도와 보속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생활을 원장으로 선출되어 억지로 불려나갈 때까지 계속하였다. 1081년, 소와송의 성직자와 주민들의 선거에서 그가 주교로 선출되었음을 알렸을 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주님, 몇가지 보속 밖에 아무런 공이 없는 이 죄인을 떠나가소서." 그는 거의 강제에 의하여 주교직을 맡았지만, 모든 업무에서는 놀라운 지혜와 정열을 보여주었다. 1120년에 소집된 보베의 회의에서는 그의 생애를 찬양하고, 성인을 위하여 경당을 짓기로 결정하였다


5.타르시치오(Tarsicius)

로마의 부제였던 성 타르시치오는 감옥에 있는 어느 신자에게 성체를 모시고 가던 중,
폭도들에 의하여 비아 아삐아나에서 끌려가서 매맞아 죽었다. 이 사건은 카르디날 와이즈만의 소설 [파비올라] 속에도 묘사되어 있고, 교황 담소는 시를 남겼다.
타르시치오는 첫 영성체하는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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