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IMF을 혹독히 치뤘는데 아직도 진행중이다
그 후로 10년이 지났는데도 뭘하며 지냈는지 잘 모르겠고 힘들게 지냈고
힘에 버거운 일도 했다는 기역만 난다
같은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어렵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중국왕래가 한창일때
나도 부지런히 그곳을 다녔다
늘 일을 생각했기에 가는곳도 백화점과 시장이였다 가끔 관광도 하기는했다
요즘 어느 큰마트를 가면 여기가 중국인지... 중국에 와 있는지 모를정도로
흡사한 것도 많지만 중국에서 한국과 비슷한 것을 찾았을 때도 같은 기분이였다
내가 노원으로 이사와 동부간선도로를 달리면서도 자주 중국을 본다
중국에 가면 성당을 꼭 찾았었다
그리고 너무 가난한 성당살림을 보면서 내가 어려워 돕지 못해 안타까웠다
가끔 만나는 교우들에게 들으면 그래도 다녀가는 한국교우들 봉헌이 큰보탬이 된다했다
심양에서 주교좌성당에 들렸을땐 한국사람이라 했더니 어느 어르신이 자꾸 따라오란다
먼저 앞서며 자꾸 뒤돌아보며 계속 오라며 지하로 자꾸 내려갔다
공산당 지하가 이렇게 생겼구나 생각하며 계속 따라갔다
어느 나무문을 노크하고 열었는데 그곳엔 둥근나무식탁에 신부님 두분이 앉아 있었다
그 어르신은 내가 한국사람이라 했더니 한국신부님에게 데려다 준 것이였다
황당하게 만난 신부님이였지만 중국노인들께서 이런 정도 주셨다
이름은 기역이 안나지만 서울교구 장위동에서 오셨다고 했던 건 기역난다
젊은 신부님이셨는데 지금 한국으로 들어오셨나 모르겠다
고생길을 다녔지만 희망을 놓지 않았던 과정을 겪고 보았다
노산에 올랐을때 무언가 큰감동을 받았던 기역도 잊지않는다
보이지 않았지만 내고통 안에서 갇혀있지 않았음을 이제야 보게된다
어느날 예수회에서 강의 듣는중 신부님 중 한분이 논문준비 과제라며 설문지 작성을 부탁했는데
그것들을 기록하며 그동안 안개같은 곳에서도 바로 서있을수 있었다는 믿음을 확신했다
내가 시간을 나눈것이 아니였고 그동안에 의문을 해결한것 같았다
항상 기뻐해야 하는 진리를 한단계 더 오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