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실리오, 바실리아 영명축일

2006. 1. 2. 오전 9:41:29

글자

  바실리오(Basilius) / 01월02일

바실리오(330-379)는 부유하고 명망 높은 크리스찬 가정 출신으로, 교회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집안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할머니는 마크리나 맏이, 부친은 바실리오 맏이, 모친은 에밀리아, 큰 누이 마크리나 그리고 두 동생은 니사의 그레고리오와 세바스테의 베드로인데, 모두가 성인품에 오르신 분들이다.

 

 그는 체사레아의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아테네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357년 경에 동방의 주요 수도원들을 방문한 뒤, 이리스강의 안네시에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그는 불과 5년 동안을 그의 공동체와 함께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 베네딕도와는 달리 규칙의 제정가는 아니지만, 그의 영향은 정교회 수도생활에 큰 발자취를 남겼고, 수도생활의 주요 길잡이로서 자리잡았던 것이다.

 

 40세 때에 그는 체사레아 교구의 주교로 착좌한 뒤로, 아리우스 사업을 펼쳤으며, 또한 당대 최고의 설교가로서 부자들의 탐욕을 질책했던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의 신학적 업적과 수많은 설교는 그를 동방의 네 분 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칭송받게 했지만, 49세로 운명함으로써 세인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던 것이다.

 

 그는 400여 통의 편지와 성령에 관한 저서 '필로칼리아' 등의 큰 업적을 남겼다. 나지안조의 주교로 45년간 봉직했던 성 그레고리오 나지안조 맏이와 성녀 논나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오(330-390)는 체사레아에서 수학하던 중에 성 대 바실리오를 만나 교분을 나누었고, 그 후에도 미래의 황제 율리안 배교자와 함께 10여 년 동안이나 함께 공부한 경험이 있다.

 

 그 역시 바실리오와 함께 이리스 강변에서 은수생활을 했으며 사시마의 주교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의 총주교에까지 임명되었지만, 그의 임명은 아리우스 이단이 판을 치던 세상에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바실리오와 함께 사도적 믿음, 그리스도의 신성 및 성령의 위대한 업적을 남겼기 때문에, 바실리오와 더불어 동방교회의 위대한 네 분 학자 중의 한 분으로 높은 공경을 받고 있다.

 

댓글 4

  • 2006년 1월 2일 오전 10:08

    <img src="http://hihyun21cc.com.ne.kr/etc/newbless2.gif"> 축하 메세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2006년 1월 2일 오전 10:46

    바실리아자매님 본명 축일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오늘 은총의시간 되시고 행복한 오늘 되세요....... 또한 건강 하시기 바랍니다.

  • 2006년 1월 2일 오후 2:19

    김클레멘스님과 이모니카님! 두분이 가르멜 전교회원으로 영성이 깊으신분들이 특별히 저의 축일을 축하해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카리스마를 잘 활용하시라고 검사결과 이상없이 잘 되었어요.

  • 2006년 1월 6일 오후 3:57

    <img src=http://user.chol.com/~c500418/animation_abc/Aniver018.gif>

축하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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