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기념일

2005. 10. 14. 오후 7:58:28

글자

 


   
  

    
예수의 성녀 데레사  姉妹님!

10월 15일 靈名祝日祝賀합니다

靈肉間에 建康하시기 바랍니다.

 

◎ 2005년10월15일(토)-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 예수의 성녀 데레사 (1515-1582) 동정 학자

    

  2,000년의 가톨릭교회의 역사상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하나있다. 그것은 1970년 바오로 6세 교황이 우리 교회의 많고 많은 성녀들 중에서 두 성녀를 뽑아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던 것이다. 두 성녀가 바로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970년 9월 27일 선포)와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1970년 10월 4일 선포)이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1515년 3월 28일 스페인의 아빌라에서 부친 알폰소 산체스와 모친 도나 베아트리쯔 사이의 부유하고 다복한 가정에서 11명의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당시 유럽세계는 혼란과 개혁의 진통을 겪고 있었으니, 그것은 프로테스탄트의 강렬한 종교개혁과, 갓 태동한 인문주의와 문예부흥(르네상스)의 물결이었다. 성녀는 이런 새로운 시대 안으로 태어난 것이다. 어릴 적 성녀는 발랄한 성격과 아름다운 미모와 풍족한 재산을 바탕으로 멋진 결혼을 꿈꾸었다. 그러나 12살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자신의 마음을 성모님께 완전히 의탁하였다. 16살에 아우구스티노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1535년 만19살의 꽃다운 나이에 돌연 생각을 바꾸어 아빌라의 카르멜 수도회를 찾았다. 데레사에게 있어서 세속과의 이별은 ‘셀 수 있는 모든 뼈를 떼어놓는 것’과 같았다. 바로 이듬해 1536년 성녀는 갑자기 혼수상태에 돌입하여 며칠동안 병석에 눕는다. 사람들은 성녀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례를 치려했다. 그러나 성녀는 혼수상태에서 환시를 보았던 것이다. 그 후 성녀는 끈기와 인내로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시험을 견디어 낸다. 수도생활 20년째 되던 1555년 어느 날, 기둥에 묶여 갖은 고문과 채찍으로 만신창이 된 구세주의 모습이 담겨진 성화를 보는 순간, 강렬한 하느님의 힘에 사로잡혀 직관과 환시의 길로 접어든다. 그 후 성녀는 완덕의 길에 끊임없이 정진하여 신비로운 계시를 받는 은총을 누렸다. 성녀가 받은 환시와 계시의 내용은 당대 신학자들로부터 가톨릭 신앙과 일치하는 것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1560년 놀라운 계시를 접한 성녀는 대의를 위해 수도서원을 포기하고 스스로 노력하면서 제3자로 수도생활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 후 성녀는 같은 고향 출신인 십자가 성 요한(1542-1591)의 도움을 받으면서 ‘맨발의 딸들’을 완덕의 길로 초대하기 위해 수도회의 느슨한 규칙을 고대의 엄한 규칙으로 돌려놓았고, 스스로 수도회를 세웠다. 성녀는 새로운 시대사조와 신학적 오류로 말미암아 피폐한 교회의 쇄신과 개혁을 위해 여생을 바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와중에 수많은 곤경과 반대에 부딪혔으나 하느님과의 놀라운 일치와 불굴의 용기로 이를 극복하였다. 성녀는 신비적인 계시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1573년에 ≪완덕의 길≫을, 1577년에는 ≪영혼의 성≫을 저술하였고, 그 외에도 수많은 수도생활의 가르침과 교회쇄신과 개혁에 관한 그들을 남겼다. 정열적인 가슴과 놀라운 직관력과 조직력을 가졌던 범상치 않은 부인, 신비신학자, 예수의 데레사는 1582년 10월 4일 살라망카의 알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데레사는 1622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이냐시오 로욜라(1491-1556),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 마드리드의 이시도로(1070-1130), 필립보 네리(1515-1595)와 함께 시성(諡聖)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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