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성인을 주보로 모시고 계시는 대전교구 공세리 성당을
성지순례로 탐방하며 9월 순교자 성월에 다하지 못한 묵상을
어제 신부님의 상세한 강론설명으로 깊은 묵상을 해 봅니다.
영적으로 좋아한 스콜라스티카 성녀는 베네딕도 성인을
영적 오빠로 삼으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고 합니다.
순교로 지켜온 110년의 믿음의 터
공 세 리 성당 - 예수 마음 피정의 집 -
베네딕도 성인이 주보성인
공세리 성당은 명동성당의 축소판이라 일컬읍니다
공세리 성당은 충남 대전교구에서 첫 번째로 설립된 성당이다.
1895년 파리외방전교회 드비즈 신부가 이곳에 와서
공세 창고를 헐고 복음 창고인 성당을 세운 것이다.
지금까지 성직자, 수도자가 공세리 쌀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성당 건물 주위에는 십자가의 길도 있어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묵상과 기도를 도울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2002년도에 150명을 수용하는 "예수마음 피정의 집:이
완공되어 성지 순례객들의 피정 장소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며, 47편의 영화 장소로도
유명하시다고, 신부님의 상세한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으며, 팜플렛 내용을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병인박해 때의 아신 공세리 지역 순교자들
선교의 전진기지 박씨 3형제 순교자의 묘
밀양 박씨 3형제
박의서(사바스 - 치명일기 수원조 387번) ; 후덕한 인품과 신앙심으로 죽음이 두려워 신앙심이 흔들리거나
배교하려는 마음 없이 깨끗하게 주님을 증거하고 목숨을 바쳐
순교하였다. 박의서 3형제는 아산 걸매리에 살았으며,
이 후손들 중에는 현재 사목 중인 박상래, 박노헌, 박중신, 박성팔
박성남 신부 다섯 분의 사제가 있다.
박원서(마르코 - 치명일기 388번) ; 박원서는 본래 태중 교우로, 마음이 우람하여 수계를 잘못하고,
노름도 약간 하고, 서털구털 지내므로 그 형님이 항상 걱정하며
살다가 병인년에 3형제가 함께 수원으로 잡혀 갈 때 말하기를.
"내 평생에 천주를 공경함을 실답게 못하였더니,
오늘 주께서 나를 부르셨다"
하고 즐거워하며 장차(將差)더러
"나를 이번에 올려 가거든 갑작스럽게 하지 말고 바로 죽여 주면
우리 주모께로 가서 살겠다" 하며, 오히려 그 형님과 아우를
권면하고, 기쁜 마음으로 순교하였다.
박익서(세례명 미상 - 치명일기 389번) ; 천성이 곱고 순결하여 오로지 한마음으로 하느님을 공경하여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였다. 이들 삼형제와 이 마리아가 함께
수원으로 잡혀가 1867년 3월 8일 순교하였다.
십자가의 길
지극히 순결하신 예수님!
주님께서 온갖 고통을 다 겪으셨으니, 저로 하여금
이 지상 사물에 대한 애착을 끊게 하여주소서.
주님만이 사랑받기에 합당한 분이오니, 오로지 주님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랑이신 예수님!
무엇보다 모든 것에 앞서 주님을 사랑하오며, 제가 범한 죄를 깊이 뉘우치나이다.
이제부터 다시는 주님을 떠나지 못하게 하시고,
언제나 주님을 사랑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행하게 하여 주소서.
성 가정을 위한 기도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며, 가정생활을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
저희 가정을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가 성가정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가정생활의 자랑이며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 집안을 위하여 빌어 주시어 모든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시며 언제나 주님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다가 주님의 은총으로
영원한 천상 가정에 들게 하소서.
@ 아멘.
더 자세한 설명자료는 위의 홈페이지로 이용바랍니다.
박세리 동생이 아닌, 공세리 성당에 여러분을 초대하신다고,
주보를 잃어서 어제 미사집전해주신 주임신부님
성함, 본명도 모르지만 넘 재미나게 강론을 하셨습니다.
어제만해도 800여명의 순례객들이 참여
대화마을 성당은 전체교우가 야외미사를 오셨습니다.
*(서울 7지구 월계동성당, 저희 노원성당10구역, 상계2동성당
행당동 성당, 인천 만수1동 성당, 송파구 마천동 성당)*
어제 참가한 성당을 미사전후로 호명
하시면서, 진심으로 환영해주신
신부님과, 활기차게 미소로
성가지도해주신 수녀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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