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을 넘어선 평화

2008. 11. 13. 오후 5:09:18

글자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28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
   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4,27-28 )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여러분들은 언제 심장이 싸늘해지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와서 그러한 지경에
   들어 선 적은 없지만 나의 생의 70%를 살아온 지금 자주 겁이 납니다.
   특히 이중적인 상황안에 초대될 때 더욱 그렇습니다. 나와 마주한
   저 얼굴속에 다른 얼굴, 또 다른 진실이 들어 있는 것이 보여질 때
   섬뜩합니다. 그러면 관계가 흔들리고 삶이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두려움을 통하여 발견하는것은 실체와 우리의 느낌이나
   생각과 차이가 있다는 것이지요. 즉 우리가 놀라고 당황하는 것은
   실체라기 보다는 나의 상태, 가치관, 경험들을 통과하여 얻은 느낌
   일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통하여 뭔가를 발견하는 것은
   내 안의 그 상이 맺혀있기에 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삶을 살아가다보면
   자라에게 물릴 수도 있고 그 아픔으로 인하여 솥뚜껑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릴 수 있는데 하느님 아버지를 믿고 당신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들은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왜 겁이 나고 마음이 산란해집니까?
   곰곰히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은 우리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망신당하고 싶지않고, 어두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고 결론적으로는
   어떤 불이익도 체험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촛점을 우리의 불이익이거나 겁 혹은 산란함에 두기 보다는
   빛이신 주님을 따라오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빛을 따르는 이들은
   어둠속을 걷지 않고 오직 주님의 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변에
   흉악한 일이 일어나도 관여할 것은 관여하겠지만 주님께 의탁하고
   삽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한 가지라고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
   지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비리와 폭력은 존재하는 걸까요?
   우리 인간성 속에 들어있는 근본적인 어리석음 "자신이 하느님" 인 줄로
   착각하는데서 옵니다. 그러니 기도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기도는 우리에게 삶의 방법도 가르쳐 주시만,
   무엇보다도 우리가 누구인가를 잊지 않게 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잊지 않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의
   넓은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런 순간이 바로 평화 아니겠습니까?
   평화를 주러오신 주님께 그 분이 주시는 평화를 청합시다.
 
   - 수녀님의 묵상 글 옮김 -
 
 
 
 
   당신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 내는 그들에게서
 
   내 주여 찬양 받으소서.

   평화로이 참는 자들이 복되오리니,

   지존이여! 당신께 면류관을 받으리로소이다.

 

 (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노래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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