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으셨던 예수님을 성전에서 찾으심을 묵상합시다."
새벽 여명에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새날을 또 다시 허락해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본다.
오늘아침 해뜨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영원히 잠든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해 보면서...
내가 그들 가운데 끼지 않고 새로운 날을 맞은 것이 무슨 뜻일까?
하느님께서 나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하시기에
오늘이라는 크다란 하루를 이 부족한 나에게 선물하시는 걸까?
인생은 한낱 풀포기나 들꽃과 같아서 금새 시들고 지는것이다.
사람이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것들은 하느님 앞에서 지나가는 바람처럼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며 헛된 것임을 느껴본다.
비록 인간적인 상황이 절망스러울지라도, 고통스러울지라도.
이 모든것 또한 하느님앞에서 시드는 꽃이나 지는꽃에
불과하다는 것도 느껴본다.
그런데도 우리는 내 안에서 나를 허물고 세우는것들에 대해서
필요이상 애착을 가지거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우리안에는 미움과 원망, 증오가 가득하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여전히 마음속에 가두어놓는 경향이 많다.
내 자신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얼마나 초라하고 보잘것 없으며
허물과 죄가 많은가?
나에게 주어진 어려운 상황, 죄스런 모습들, 추한 모습들,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두겹, 세겹 꽁꽁 둘러싸맨 나의 내면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숨기거나 없는척 하기에 바빴지
있는 그대로 하느님앞에 서기를 망설이며 얼마나 겁을 먹고 있었던가?
하느님없이 내 뜻대로 행하려고 했던 것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조금만 바람이 몰아쳐도 그걸 이겨내지 못하고 절망하며,
금새 악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하느님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참 많았음을...
눈에 보이는 파릇파릇한 새싹길에 취해 휘파람 불며
걸어갔던 그 길이 좁은 자갈길로 바뀌고,
그 자갈길이 앞을 분간할수 없는 산길로 바뀔때까지,
내 안에서 서서히 나를 무너뜨리고 있는 그 길을 계속 가고 있었음을...
그래서 입구도 출구도 없는 미로속에서 정신없이 헤메다가
죽음에 임박해서야, 그때서야 하느님을 애타게 부르고 찾았음을....
신앙은 자신감이다.
주위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을 볼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자신의 단점인 작은키를 내세워 당당하게 너울을 벗은 세관장 자캐오처럼
우리 역시 내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잘못된 모습들,
숨기기에만 급급했던 있는 그대로의 초라한 모습을 가지고
예수님을 만날때, 진정 살아있는 돌로써 하느님집,
신령한 성전으로 쓰일 참 돌이 될수 있음을 생각해 본다.
나의 이 모습이 설사 잘못된 길에 들어선 미로속의 모습일지라도...
가파른 산속에서 길잃은 어린양의 모습일지라도...
이러한 나약한 모습들마져도 하느님 사랑의 손길임을 깨닫는다면...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세상가치로 볼때 비록 보잘것 없어 보일지라도
이 자리는 더 없이 소중한 자리이며, 어느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하느님 집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설령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어떤죄를 짓고 어떻게 당신을 배반할지라도...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려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언제나 변함없음을 우리가 깨닫는다면....
그래서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변화된다면...
그 깨달음속에는 오늘도 우리를 믿고 한결같이
기다리시는 하느님이 계실 것이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하여도 재앙을 두려워 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시편 23, 4)
옮겨온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