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양식인 성체(1)
"내가 생명의 빵이다!" (요한6)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빵의 본래 의미를 살펴보면, 빵은 바라보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먹어야 하는 것이다.
빵집 앞을 지나간 사람과 그 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아무리 맛있는 빵이라 하더라도
그 빵을 먹은 사람에게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빵을 먹는 사람 입장에서야 먹는 것이지만 빵의 입장에서는 먹히는 것이다.
먹힌다는 것은 스스로를 소멸한다는 것으로, 예수님은 스스로 기꺼이 소멸할 준비를 하고
계셨던 것이다. 인간을 위해 하느님의 아들 즉 하느님이신 분이
하느님이심을 벗어버림에만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말이다.
소멸 그 자체가 그분의 목적이셨을까? 빵이 누군가의 입에서 십혀져 존재를 감추는 것만으로
다 된 것인가?
소멸하면 그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이제는 빵에게 달린 일이 아니라 빵을 먹은 사람과
관련된 일이다. 사람들이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양식을 섭취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우선 배고픔이 해결되었으니 편안할 것이고, 그리고 배고픔의 상태 때 보다는 휠씬 더
적극적인 활동을 하게 됩니다. 만약 양식을 섭취하고 아무런 활동(에너지 활용)이 없이
빵이 있다고 해서 먹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병에 걸립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현대인의 질병 "비만"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섭취해서 얻은 에너지를 활용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양식으로 섭취한 것이 병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당신 스스로를 빵이라고 하셨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과 피를 양식과
음료로 내놓으셨으며 그것을 먹고 마셔야 영원히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빵으로 우리에게 기꺼이 먹히심으로 당신 스스로를 소멸하셨고,
우리는 그 몸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 해서 기꺼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빵을 먹고 활동할 수 있음에도 활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듯이
우리 영혼의 상태도 사랑으로 받은 에너지를 사랑으로 활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한데 말입니다.
이제 그 사랑을 먹은 우리들은 그분의 사랑을 살아내는 것으로 에너지를 활용해야 합니다.
그것을 먹지 않는다면 힘을 받을 길도 없고,
또한 먹고도 그분의 사랑을 살아내지 않는다면 우리의 몫을 다 한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빵이라고 표현하심은 지당하신 것이었으며,
그분은 기꺼이 먹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나를,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누군가에게 생명을 부여해야하는 귀한 몫이 부여 되었습니다.
그분은 소멸하셨으니 우리 안에서 늘 함께 하시는 그 분과 함께!
죄인인 나를 기꺼이 살려주심에 대한 감사... 죄인인 나를 위한 그분의 한없는 희생...
이제 그분은 나를 제2의 그리스도로 세상에 파견하시는 것입니다.
이렇듯 성체성사는 감사와 희생, 파견과 충만의 신비로 가득한 것입니다. 아멘
09 08 05 조유딧수녀님 훈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