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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8,33ㄴ-37 그때에 빌라도는 예수님께 33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하고 물었다. 34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네 생각으로 하는 말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하여 너에게 말해 준 것이냐?” 하고 되물으셨다. 35 “나야 유다인이 아니잖소? 당신의 동족과 수석 사제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긴 것이오. 당신은 무슨 일을 저질렀소?” 하고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36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37 빌라도가 “아무튼 당신이 임금이라는 말 아니오?”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임금이라고 네가 말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려고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려고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목소리를 듣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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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인 1970년대, 많은 이들이 ‘금관의 예수’라는 노래를 좋아하며 불렀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 중 일부는 이렇습니다. 얼어붙은 저 하늘 얼어붙은 저 벌판/ 태양도 빛을 잃어 아 캄캄한 저 가난의 거리/ 어디에서 왔나 얼굴 여윈 사람들/ 무얼 찾아 헤매이나 저 텅 빈 얼굴들/ 오 주여 이제는 여기에 ……/ 우리와 함께하소서. 이 노래는 예수님의 모습을 왜곡한 기득권층을 비판한 노래입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사셨던 예수님의 진정한 모습을 복원시키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예수님께서는 금관을 쓰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와 예루살렘의 기득권층으로 말미암아 가시관을 쓰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만일 가난한 사람들의 굶주림을 외면하고 의로움 때문에 박해받는 사람들의 외침에 귀를 막는다면 예수님께 금관을 씌워 드리는 것입니다. 부귀와 명예를 추구하며 권력에 기대어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한 몸을 던지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분을 우리의 임금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임금은 가난하게 사신 임금, 남을 섬기신 임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임금이십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