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6월 2일 수사님의 묵상

2005. 6. 2. 오후 12:16:23

글자

불가능한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마르 12,28ㄱㄷ- 34]

 

<복음>

율법학자 한 사람이 와서 그들이 토론하는 것을 듣고 있다가 예수께서 대답을 잘 하시는 것을 보고 "모든 계명 중에 어느 것이 첫째가는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첫째가는 계명은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라.' 또 둘째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는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이 말씀을 듣고 율법학자는 "그렇습니다. 선생님,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신 말씀은 과연 옳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 과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는 것' 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훨씬 더 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뒤에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마르 12,28ㄱㄷ-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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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내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형식적인 사랑인 것 같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볍고 오래가지 못하며 깊이가 없는 사랑이다.

따라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하나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사랑말고 또있을까 싶다.

사랑의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대개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아니 그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누구나 체험으로 알고있다.

사랑의 삶은 평생을 두고서 닦아야 할 그 무엇이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기에는 아직도 나는 나를 중심으로 하며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내몸같이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또한 사실 불가능함을

나는 잘알고 있다. 그만큼 나는 이기적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가능한 사랑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당신을 믿는 믿음의 힘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당신의 힘으로, 당신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에게 힘입어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필립 4,13)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사실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힘껏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의 사랑실천이 불가능한 것은

그분과 함께하라는 일종의 신호인 것이다.

그분의 말씀대로, 그분으로부터, 그분과 함께, 그분을 향해 걸어오라는

신호인 것이다.

나의 한계와 약점, 불완전함, 미성숙함, 나의 죄...

이 모든 것이 신앙적으로 바라보고 활용할 줄 알때

사랑실천에 좋은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할 때는 악취만 풍기면서 스트레스로 쌓여만 갈 뿐이다.

댓글 1

  • 2005년 6월 6일 오후 12:27

    사랑...♥이 세상을 유지하는 거대한 힘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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