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나이 가는 길에 귀줍지 말라 <무사 쥬베이>

2000. 10. 10. 오후 4:09:34

글자

 

 

한때 ’주바이’라는 무사가 강호를 주름잡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언제부터 강호에 등장하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늘날까지도 그의 빼어난 검술은 세간에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이제 그의 전설 뒤에 숨은 내막을 공개할 때가 왔다.

 

고려시대 그는 야채상을 하는 천민의 자식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어려운 시절이었다. 흉년이 들었고, 전염병까지 돌았다. 그가 태어날 때 이미 아내를 저승으로 보낸 그의 아비는 도저히 야채상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업종을 늘려 칼장사까지 겸업하게 되었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칼장사를 개업하던 날 아침, 그의 아비는 자신이 만든 칼 수 자루를 안고 옮기던 중 그만 다리가 꼬여 넘어지는 바람에 자신이 만든 칼에 찔려 세상을 하직하게 되고, 아비의 시신 앞에서 그는 이렇게 울부짖었다고 한다.

 

"아버지이! 복상사(腹上死)로 세상 하직하는 게 소원이라더니, 복상사는커녕 검상사(劍上死)가 웬 말입니까! 아버지이이이이이~"

 

그러나 이미 불귀의 객이 된 이가 무슨 대답이 있으랴. 이제 소년가장이 된 그는 열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생계를 꾸려가야 할 처지에 서게 되었다.

 

결국 그는 아비가 남기고 간 유일한 유산인 칼 여덟 자루와 채소 중에서 무 서른 개를 들고 전국을 떠도는 유랑상이 된다.

 

전국을 떠돌다 보니, 칼은 보관만 잘 하면 녹이 슬면 슬었지, 썩는 물건은 아니었으나, 무는 아무래도 엄연히 유통기한이 있는 식품인지라 그는 무 먼저 팔기로 작정 목청 돋구어 외쳤다.

 

"무 사시오! 무 사시오!"

 

그러나 아무도 무를 사는 사람은 없었다. 며칠이 지나도 무 한 개 못 판 그는 길을 가는 마음씨 좋아보이는 한 여인네를 발견, 그 여인네를 붙들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무 사시오, 낭자. 무 좀 사시오."

 

그러나 여인네는 도무지 무를 사주지 않았다. 그는 매달리다 못해 애교까지 부리며 말했다.

 

"아잉~ 무 좀 사줘봐이잉~"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여인네 토악질을 하는가 싶더니, 닭살 돋은 팔뚝을 문지르며, 무를 하나 사주고 달아나는 게 아닌가! 옳거니! 이거다, 싶어진 그는 그날부터 비음(鼻音)을 최대한 섞어 이렇게 외치고 다니게 된다.

 

"무 사조봐이~ 무 사줘봐이~"

 

과연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지라,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그의 무 사달란 소리를 듣고 자지러지며 무를 사 주고 달아나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한데, 마지막으로 하나 남은 무를 팔기 위해 어느 음산한 고을로 들어서기 직전 숲속에 이르렀을 때 그의 눈앞에 뭔가가 떨어져 있어, 그는 무심결에 그걸 주워들었다. 그건 사람의 귀였다.

 

그는 아무래도 이 고을에 사는 사람이 귀를 흘리고 갔나보다 하고 생각하며,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귀를 들고 고을로 들어섰다.

 

"무 사 조봐이~ 무 사조봐이~"

 

한데 이게 웬일인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고을 사람들이 달려나와 반색하며 맞이하니,

 

"아이고, 반갑소! 우리가 그렇게 기달리던 무사 주바이 님이 아니심감? 에그머니! 그 손에 들고 있는 귀는...? 귀에 피어싱을 한 걸 보니, 이건 틀림없는 귀문 8인방 일당의 것인데, 벌서 귀를 베어왔다니, 정말 소문대롭니다! 여보셔들! 우리가 초청한 무사 주바이 님께서 벌써 귀문8인방의 귀를 베어오셨소!"

 

고을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들어올려 행가래를 쳤고, 그는 자기가 무 장수 겸 칼 장수라는 사실을 밝힐 새도 없이 무사 ’주바이’가 되고 말았다. 더구나 칼까지 등에 매고 있었으니, 그가 아무리 무사가 아니라, ’무 사!’를 외치는 무 장사라고 해봐야 믿을 사람은 없었다. 그제서야 그는 자기를 ’무시 주바이’로 오인케 할 ’무 사줘봐이~’를 외쳤던 자기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고을 사람들로부터 푸지게 식사를 대접받으며 들어보니, 귀문 8인방이란 조직은 전국을 떠돌며 마을마다 쑥대밭을 만들고 다니는 도적 떼로 살인, 강도, 강간에 미성년자 유인 및 약취 혹은 과다노출 등등의 온갖 몹쓸 짓이란 몸쓸 짓은 다 하고 다니는데, 바로 옆고을까지 진출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느낀 이 고을 주민이 가진 돈을 탈탈 털어 강호 최고의 무사를 초빙했으니, 그게 바로 당신이라는 요점이었다. 그리고 귀문 8인방이 이 고을에 쳐들어오는 것은 바로 내일 아침이라 했다.

 

그렇다면 진짜 무사 주바이는 어찌 되었단 말인가! 그는 우리의 주인공이 이 마을에 도착하기 직전 우연찮게 숲속에 볼일을 보러 들어온 귀문 8인방의 고수 이무기와 일대일로 조우하게 되었다.

 

다- 다- 다----!!!

 

한동안 서로의 기(氣)를 읽던 두 무사는 서로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허공에 불이 번쩍 하며, 두 무사가 교차했다.

 

 

 

이무기의 한쪽 귀가 떨어져 나갔고, 주바이는 양쪽 귀가 떨어져 나갔다. 주바이는 떨어진 귀를 주워들고 절규했다.

 

"으아아아~ 이 자식! 오늘 귀 뚫었는데!!!"

 

그리고 그는 아쉬운대로 이웃 마을의 의원에게 귀를 봉합하러 달려갔던 것! 우리의 무 장수가 그 자리에 도착한 것은 눈이 어두운 이무기가 떨어진 귀를 찾다 포기하고 자리를 뜬 직후였다.

 

그 이튿날, 졸지에 주바이가 되어 홀홀단신으로 귀문 8인방과 상대하게 된 우리의 무 장수! 그는 한 손엔 무를 들고, 한 손엔 검을 들고 고을 어귀에 서 있었다.

 

그는 ’무 사주봐이~’를 외치고 다닌 자신을 원망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연찮게 줍게 된 이무기의 귀를 원망했다. 하여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구슬프게 당시 자기의 심정과 후손에게로의 경고를 담은 가사에 애닯은 곡조를 붙여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수백 년 후 그의 후손이 포함된 6인조 가수의 노래로 되살아나기도 한 그 노래는 다음과 같다.

 

"♪싸나이 가는 길에 귀 줍지 말라~ 없어도 자존심만 지키면 눈물 따윈 내게 없을 꺼야...♪"

 

이윽고 온몸으로 살기(殺氣)를 뿜으며 귀문 8인방이 나타났다.

 

낯선 주바이 앞에 멈추어 선 귀문 8인방. 이들의 두목 격인 살무사가 이무기에게 물었다.

 

"야, 니 귀 떨어뜨린 놈이 저 놈이냐?"

 

"아닌데요, 양쪽 귀가 붙어 있는 걸 보니..."

 

"이상하군. 전혀 살기가 느껴지지 않는 걸 보니, 자신의 기(氣)를 감출 수 있는 고수가 틀림없다..."

 

"무는 왜 들고 있지? 저거 혹시 듣도보도 못한 암기(暗技) 아닌가?"

 

귀문 8인방 사이에 이러한 속삭임이 오가며 경계의 기색을 어릴 즈음, 주바이가 난데없이 들고 있던 무를 번개같은 동작으로 공중에 무를 던졌다. 그리고 역시 번개같은 동작으로 검을 빼는가 싶더니, 넣었다.

 

일순!

 

무는 공중의 한 지점에 멈춘 듯 했다.

 

그러나 그 직후 무는 조각조각 나뉘어 주바이의 앞에 우수수 떨어졌다.

 

귀문 8인방의 입이 떡 벌어졌다. 주바이는 그들을 향해 눈을 치켜뜨며 이렇게 읊조렸다고 전해진다.

 

 

 

"니들...... 깍두기 되고 싶냐?"

 

그의 말에 귀문 8인방의 머릿속에는 자신들의 신체가 깍두기가 되는 상상이 순간적으로 떠올랐고, 그들은 몸서리를 치며 삼십육계(三十六計)하였고, 결국 우리의 무 장수 주바이는 채소상이었던 아버지에게서 배운 유일한 기술 ’무 썰기’로 위기를 모면하였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수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고, 이 이야기는 일본에게까지 전해져 <무사 쥬베이>라는 만화로까지 만들어졌으니, 이를 후세에 널리 알리기 위해 여기에 적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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