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특집 - 제주도 이야기... 그 2번째는 제주도 개관입니다.
역사나 문화, 지리 등에 관한 개괄적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파일로도 첨부합니다.
Ⅰ. 제주도 개관
1.자연 지리적 환경과 특징
1) 개요
한반도 최남단과 북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한국 최대의 섬으로 62개의 부속도서와 함께 섬으로 된 행정 도(道)를 구성하고 있다. 중앙에는 해발 1,950m의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이 위치해 있으며 한라산을 중심으로 360여개의 오름들이 산재해 있다. 제주도는 동서로 73Km, 남북으로 41Km이며,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일주도로의 길이는 182Km로 타원형을 이루고 있으며 총 면적은 1,825Km2에 달한다.
난대해양성기후이며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한 계절성 기후로, 한라산을 중심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가후 차이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연평균 기온는 16℃로 따뜻하며 가장 더운 여름이 33.5℃, 가장 추운 1월이 1℃로 이상적인 기온을 나타낸다.
고도에 따라 한대에서 아열대에 이르는 각종식물이 분포 되어있는데 그 수는 약 1,800여종으로 식물의 보고를 이루고 있으며 맑은 푸른 청정 해역에는 각종의 어족과 산호초 등 풍부한 수중자원을 보유 하고 있다. 제주는 섬 전체가 하나의 관광지로서, 관광 및 레져 휴양지로서 구비 해야 할 모든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더욱이 최근에는 각국 정상들이 제주를 찾아와 세계의 언론에 자주 떠오르면서 새삼 국제적인 관광지로서 부각되고 있는 축복 받은 섬이라 할 수 있다.
2) 제주의 자연지리적 특징
ⅰ)삼보(三寶)
제주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로, 첫째 지금까지 남아 있는 고어(古語)와 독특한 사투리가 섞인 언어, 둘째 맑고 푸른 청정해역의 풍부한 수중자원 셋째 학술적 가치가 높은 1,800여 종에 달하는 식물의 보고를 들 수 있다.
ⅱ)삼다(三多)
제주도에는 돌, 바람, 여자가 많다. 여자가 많다는 것은 통계학상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산에서, 밭에서, 바다에서 남자 못지 않게 언제나 열심히 일하는 제주 여인들이 이방인의 눈에 많이 띄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다.
ⅲ)영주 12경
제주는 섬 그대로가 관광지로서 손색이 없는 천혜의 땅이다. 이곳저곳 명승이라고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만 옛부터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해 많은 문헌에는 절경 중에서도 특히 빼어난 곳 열두군데를 정해 '영주 12경'이라 이름하였다.
제 1경 성산일출봉
성산리 해안에 돌출한 높이 182m의 산으로 정상에는 아흔아홉 봉우리가 거칠게 솟아 있다. 성산 일출봉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해돋이의 장관을 영주 12경의 첫 번째로 꼽는데 둥근 불덩이가 바다 한가운에서 솟아나와 바다를 불태우는 듯한 일출은 실로 장엄하다.
제2경 사봉낙조
제주시 동쪽 해안에 우뚝 솟은 사라봉에 올라 서녘 바다를 붉에 물들이며 수평선 너머로 지는 일몰의 감동을 맛보고 있노라면 엄숙함마저 감돈다. 산 봉우리에 팔각 정자가 있으며 북쪽 산비탈 위에는 등대가 서 있다.
제3경 영구춘화
제주시 용담동으로 흐르는 하천 양옆으로 기암괴석과 울창한 숲이 자리하고 있는데, 봄이 되면 곳곳에 진달래가 만발하여 절경을 이룬다. 동문 남쪽에 있는 '우선대' 효성 지극한 나무꾼이 이곳에서 신선을 만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제4경 귤림추색
늦은 가을 제주성에 오르면 돌담과 초가지붕 사이사이로 노랗게 익은 감귤이 귤나무 마다 주렁주렁 열린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그 넓은 감귤 과수원들이 밭으로 변해 안타깝게도 귤림추색의 절경을 감상할 수가 없다.
제5경 정방하폭
여름철, 서귀포 동쪽에 있는 정방폭포 일대의 경치를 서귀포 앞바다에서 바라보는 경관을 말한다. 포말을 일으키며 내리꽂히는 물줄기가 마치 하늘에서 비단을 드리운듯한 장관을 이룬다. 그 옛날 바다에서 금및 구름이 솟아오르더니 그 속에서 황금색 용이 나와 한참동안 폭포를 바라보다가 사라졌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제6경 녹담만설
백록담은 한라산 정상에 위치한 분화구로, 둘레가 2Km 정도 되는 맑은 못이있다. 그 옛날 신선들이 타고 노닐던 흰 사슴이 연못의 물을 먹었다고 하여 백록담이라 이름 붙여졌다. 봄철이면 한라산 기슭에는 신록이 우거지고 들녘에는 유채꽃과 진달래가 만발하는데, 5월 정도까지 한라산 정상은 하얀 눈이 쌓여 있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제7경 산포조어
지금은 제주항이 개설되어 그 흔적이 없어졌으나, 예전에는 맑은 샘물이 흐르고 있어 은어들이 노닐던 산지포에서 한가로이 낚시를 드리워 낚시질을 하였다고 한다. 수평선 상에서 불을 밝힌 고깃배들의 모습과 어우러진 그 풍경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한다.
제8경 고수목마
제주도는 옛부터 넓은 초원에 우마를 방목하였다. 특히 한라산의 기슭은 가축을 방목하기에 더없이 좋은 풍토를 갖고 있다. 부드러운 오름 능선을 배경으로 중산간의 넓은 초원에서 떼지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우마떼의 모습은 아늑함과 평화로움을 자아낸다.
제9경 영실기암
한라산 정상 서남쪽에 있는 영실의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과 원시림의 장엄한 모습을 말한다. 미륵존불암은 이곳 영실동의 옥좌다. 이 삼존불암을 중심으로 하여 좌측에는 장삼을 차려 입은 듯한 1,250개의 바위가 예를 갖춘 모습이고, 우측으로는 500여개의 나한 불상이 우뚝 솟아 있다. 마치 석가여래가 불재자들에게 설법하던 영산과 흡사하다 하여 이곳을 영실동이라고 불렀다 한다.
제10경 산방굴사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산방산을 산세가 험준하면서도 수려한 암벽으로 이루어진 산인데 이곳에 있는 동굴에서 바라보는 남쪽해안의 경치가 일품이다. 또한 굴의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맛도 시원함이 비길데가 없다.
제11경 용연야범
제주시 용담동 한내 하류 계곡 절벽 사이로 흐르는 용연에다 달 밝은 밤에 배를 띄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시를 읊는 밤놀이의 흥취를 말한다. 이곳은 한발이 계속되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제12경 서진노성
서귀포 천지연 하류 서귀간구 높은 언덕 위에 있던 서귀진성 위에 서서 바닷가의 기암절벽과 앞바다에 떠 있는 그림 같은 섬들. 그리고 멀리 노인성(남극성)을 바라보는 경치를 말한다. 노인성은 불로장생을 상징하는데, 그래서 인지 이 고장에는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서귀진 성터조차 찾을 수 없다.
2.제주도의 역사와 유적
1) 역사
제주도는 지금으로 부터 약 200만년전인 신생대 제 3개에서 제 4기에 이르는 동안 여러차례의 화산 활동에 의해 생성된 화산섬이다. 화산 활동 및 빙하 해수면 변동과 지각운동에 의한 지형의 변화에 따라 제주도는 대륙과 連陸되었다가 또 孤島로 변화 하는 등 이러한 상태가 여러차례 반복으로 인하여 특수한 오늘의 제주도가 형성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섬의 중앙에 위치한 한라산 정상에는 그 당시 화산활동의 분화구인 직경 700m의 백록담을 볼 수 있다.
제주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북부지방인 제주시와 북 제주군 일대에서 선사문화 유적 발견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고, 양, 부 三姓이 건국하였다는 三姓神話가 있으나 그 정확한 연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제주도는 州胡, 耽羅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우는 부족국가로 이어져 내려 왔으나 웅대한 왕국이나 고도의 문화국가를 이루지 못했다. 백제, 신라, 고려에 속국이 되면서 독립국가적인 명맥만을 이어 오다가 고려 숙종 10년(서기 1105년)에 비로소 고려의 중앙집권제 밑에 들어가 탐라군이 되었다. 제주라는 명칭은 고려 고종때 (서기1214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처음에는 백제를 섬겼으나 백제가 망하자 통일신라에 입조하여 성주와 왕자라는 봉작을 받고 '탐라'라는 국호로 자치권을 인정받았다. 이후 고려 왕조가 원의 침략을 받아 굴욕적인 조약을 맺게 되자 이에 항거한 삼별초는 제주도를 최후의 거점으로 삼아 항파두리성을 쌓고 대몽항쟁을 벌였다. 삼별초 항쟁은 여·몽 연합군에 의해 평정되었고 이후 제주는 약 100년간 원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그때 몽고군의 생활 풍습은 제주 도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조선조에 들어서 제주는 버림받은 오지도서 취급을 받아 조선조의 정객과 학자들의 유배지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 유배되어 내려온 우암 宋時烈, 추사 金正喜등 많은 정객과 학자들의 훈학으로 인하여 제주에 유학의 보급과 문화 발전에 변화를 일으키기도 하였다. 효종 4년(서기 1653)때에 제주도의 유일한 정사문헌인 {耽羅志}가 만들어졌으며 조선조 이후 일제치하를 거쳐 해방후 전라남도에서 분리 道로 승격하였다. 1948년 4월 3일, 유사 이래 가장 큰 불행이랄 수 있는 4·3항쟁이 발생하여 30,000여명이나 되는 무고한 제주 도민들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으며 시기적으로 앞선 1901년에도 신축교안(이재수의 난)이 일어나 천주교 신자 700여명이 사망하는 등 제주도는 근·현대사에 있어 반봉건·반제 항쟁이 육지 못지 않게 활발한 지역이었다.
1981년 7월 1일 서귀읍과 중문면이 합쳐져 서귀포시로 승격됨으로써 2시 2군 6읍 5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종합개발계획에 따라 관광지를 3개 단지 20개 지구로 지정하였고 컨벤션센타 건립, 1997년 아·태 영화제, 1998년 세계섬문화 축제 유치 등으로 국제적인 휴양지이자 국제회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2)제주도의 문화유산
제주도 문화유산의 근거가 되는 유적과 유물은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구석기시대의 어음리빌레못 동굴유적으로 부터 시작해서 신석기시대의 고산리 유적, 문무토기시대의 상모리 유적으로 이어지는 각 시대의 것이 제주도 각지에서 발견 되고 있는데 여기서 발견 된 유적, 유물로 비추어 제주도는 구석기시대 부터 이미 사람들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기원후의 고대탐라 문화유적으로는 탐라국의 시조인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三姓이 땅속에서 솟아나왔다는 탐라건국 설화의 발생지인 삼성혈 사적지를 비롯하여 도내 각지에서 발견되는 고인돌 무덤과 곽지리의 패총유적, 적갈색 토기 유물 등이 있으며 특히 제주시 산지항 축조 공사장에서 발견된 중국 한나라때의 화폐, 청동거울 등의 금속유물은 다른 지방에서 유입된 것으로서 이때에도 대륙과의 교역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역사시대의 유적으로는 화북동의 三射石(지방 기념물 제34호), 온평리의 婚姻池(지방 기념물 제17호), 고성리의 항몽유적지(지방기념물 제29호), 삼양동의 5층석탑, 제주시의 오현단(지방기념물 제1호), 관덕정(보물 제322호), 제주 향교, 아라동의 산천단, 조천리의 戀北亭(유형문화재 제3호), 대정읍의 대정성지, 성읍리의 정의읍성, 사라봉의 김만덕묘 등이 있으며 그밖에도 많은 문화재가 제주도 내 각지에 산재해 있어 제주문화의 깊은 뿌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제주도에는 국가지정문화재 42건(보물2건, 사적 3건, 천연기념물 25건, 중요민속자료 7건, 중요무형문화재 5건) 도지정문화재 76건(유형문화재 14건, 무형문화재 10건, 기념물 44건, 민속자료 8건)의 유·무형 문화재가 지정 보호되고 있다.
3.제주도 문화의 여러모습
1) 민속과 풍물
ⅰ)초가집
제주도의 초가는 과거 제주도 민간주택의 일반적 형태로서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가족구조 및 그 생활양식을 반영하는 건축물이다. 그 기본구조는 기둥, 귀틀, 보, 보짓, 내도리, 중보, 중마루, 상마루 등 뼈대를 나무로 만든 후 주위 벽을 굵은 돌로 쌓아 두르고 제주도 전역에서 자생하는 연한 갈대처럼 생긴 띠풀(새)로 지붕을 덮은 것이다. 벽은 흙을 발라 붙여 돌담을 단단히 하고 지붕은 띠로 덮은 후 직경 5cm의 굵은 밧줄로 바둑판 처럼 얽혀 놓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태풍과 바람이 많은 제주의 기후조건에서 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지혜로운 건축기술이라 할 수 있다. 지붕은 1년 또는 2년에 한번씩 덮은 위에 다시 덮어 가므로 상마루선이 완만하고 부드러운 선을 이루게 된다.
ⅱ)물허벅
물허벅은 과거 제주에 수도가 설치되기 이전에 멀리서 물을 운반하기 위한 중요한 생활용기의 하나였다. 운반도중에 물이 넘치지 않도록 부리는 좁게 만들고 허리는 불룩한 평태의 물허벅을 등에 지고 다닐 수 있도록 대를 쪼개어 평평하게 만든 받침이 깔린 물구덕에 놓고 등에 지고 다닌다. 육지부에서는 물동이 같은 것을 보통 머리에 이고 다니는 반면 제주에서는 머리에 이고 다니는것이 없다. 이는 아마 바람이 많은 제주 특유의 자연환경에서 비롯된 것으로 미루어 볼 수 있다. 이 물허벅은 수도가 일반화된 근래에는 그 필요성이 없어져 박물관 전시용으로 변해버린 생활유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ⅲ)애기구덕
애기구덕은 아기를 잠재우는 요람으로 이동식 아기침대 역할을 한다. 그 크기는 보통 높이 50-60cm, 폭30-40cm, 길이1m 정도 크기이며 재료는 대나무로서 구덕안 중간에 끈으로 엮은 망을 설치하여 통풍이 잘 되게하고 오줌을 누더라도 아래로 흐르도록 편리하게 되어있다. 애기가 울면 구덕을 좌우로 흔들어 달래거나 재우게 된다. 일손이 부족하여 온 식구가 밭에 나가 밭일을 할 때에도 아기구덕을 지고 밭에까지 가서 아기를 재우거나 돌볼 수 있도록 만들어 졌으며, 과거 제주도민이 누구나 사용 하였던 필수적인 가재도구였으나 이 또한 요즘은 없어진지 오래고 박물관에서나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ⅳ)갈옷
제주특유의 노동복으로 풋감의 즙을 사용하여 천연섬유에 염색한 것으로 빛깔은 적갈색으로 처음에는 뻣뻣하여 입기에 좀 거북스러우나 자주 이용할 수록 부드럽고 색감도 연해진다. 노동복으로 남여를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땀이 나도 몸에 달라붙지 않고 통풍성이 좋은 것이 특징이며 매우 질겨서 오래 입는다. 요즘에도 효용성이 놓아 옷을 만들어 여름철 피서용 의류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천연섬유에의 복고 풍조 등으로 상품화도 이루어 지고 있어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생활 문화유산의 하나이다.
ⅴ)돌하르방
제주를 상징하는 것 중에 대표적 하나인 돌하르방은 옛적에는 우석목, 무석목, 돌하르방 등 여러가지 명칭으로 부르다가 오늘날 돌하르방이 대표적인 명칭이 되었다. 제주도 지방 민속자료 제2호인 이 돌하르방은 제주시에 21기, 대정읍에 12기, 표선읍 성읍리에 12기 등 도합 45기가 있으며 도시개발 등으로 인하여 지금은 당초 세워져 있던 자리가 많이 바뀌어 삼성혈, 관덕정, 제주시청, 제주대학, 제주방송국, 제주공항, 성읍리 등 여러곳에 산재해 있는데 본래는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 등 각 주현성의 성문 앞에 세워져 있던 것이다. 석상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부리부리한 큰 눈에 흡사 자루병 같은 코를 하고, 입술은 단정히 다문 얼굴에 둥근테가 있는 모자를 쓰고, 두 손은 배에 나란히 모아 위엄있게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석상이 만들어진 시대는 정확하지 않고 그 역할은 성문 앞에서서 수호신적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육지부의 장승의 기능과 유사했던 것으로 보고있다. 지금은 이 당초의 기능은 사라지고 대신 관광기념품의 모델 역할을 맡아 제주를 상징하고 있다.
ⅵ)정낭
제주의 옛 풍습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삼무(三無)'일 것이다. 거지가 없고 도둑이 없으니 대문 또한 존재 가치가 없었다. 정낭은 이 삼무의 미풍양속을 그대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제주선인들의 선량함과 여유를 말해주고 있다. 제주의 옛 민가들은 대부분 초가집이었는데 한길에서 집 마당까지 독특한 형태의 골목을 갖고 있었다. 이 골목을 '올래'라고 하였는데, 올래의 초입에는 '정주먹'과 '정낭'이 세워져 대문의 역할을 대신하였다. '정주먹'은 제주도 내에 널려 있는 현무암을 깎아 세운 것으로 두개가 한조를 이루는데 정주먹에는 대개 서너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그 구멍을 가로질러 길게 걸쳐놓은 막대가 '정낭'이다. 정낭은 집주인의 부재를 알리는 동시에 방목한 마소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울타리 역할을 하였다. 현재는 점차 사라져 가는 제주 초가와 함께 옛 풍물로 기억되고 있다.
ⅶ)방사탑
외부로 부터 침입하는 살과 부정을 막기 위해 마을의 경계나 기가 허한 곳에 세워졌다. 탑을 쌓아 올릴 때는 그 속에 밥주걱이나 솥을 묻는데 밥주걱은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담아들이라는 뜻에서이고, 솥을 묻는 것은 뜨거운 불에도 끄떡없는 솥처럼 어떠한 재난도 이겨내고자 하는 바램에서였다. 탑은 보통 2기로 이루어지는데, 1개의 탑 상부에는 사람의 머리 모양이나 새의 형상을 한 석제를 올려 놓았다. 새는 까마귀의 형상으로 '재앙을 쫒는 상징물'의 의미를 갖는다. 최근엔 이 방사탑을 현대적이고 예술적인 조형물로 승화시키는데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탑동 '해변공연장' 건물이 있고 '산굼부리'나 '목석원' 등 대부분 관광지 입구의 돌탑들 또한 방사탑의 변형된 모습들이다.
ⅷ)민요
제주 고유의 민요중에 제주지방 무형문화제 제 1호로 지정된 대표적인 민요 5수는 오돌또기, 해녀노래, 맷돌노래, 산천초목, 봉지가이다. 그중 오돌또기는 아리랑에 비유되는 제주도에서의 대표적인 창민요로서 그 구성진 가락은 언제나 남국 제주도의 독특한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ⅸ) 영등굿
음력 2월달에 영등신에게 올리는 제주 고유의 무속제이다. 영등신은 흔히 '영등할망'이라 부르는 신으로서 음력 2월 1일 제주를 찾아와서 같은달 15일에 떠나간다고 하며 특히 어촌에서는 어민들의 해상안전과 해녀체취물의 풍요를 빌기 위하여 행한다. 이 굿은 2월 1일에 영등신 환영제를 하고 2월 1일에서 15일 사이에 영등 송별제를 올린다. 이 기간동안에는 바다에 나가서는 안되며 지붕을 이거나 밭에 나가 김을 매어서도 안되는 여러가지 금기를 지키며 생활의 풍요를 내려받기 위하여 영등신은 정성껏 모셔진다. 영등굿에는 제주 특유의 신앙과 생활민속이 담겨 있으며 제주의 민속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제주도 지방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ⅹ)해녀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데, 특히 제주에 가장 많다. 봄이 시작되면 제주도 해안마을 바다에는 미역을 따는 해녀들이 내는 긴 휘파람 소리가 그칠 줄 모른다. 그들은 이것을 '숨비 소리'라 하는데 해녀들이 물속에서 참았던 숨을 내뱉으면서 내는 소리이다. 제주도 해녀들은 새벽에 물질을 해서 아침상을 마련하고 물이 빠지는 낮 동안에는 들일을 하다가 오후가 되면 다시 바다에 들어가 소라나 전복을 따다 팔아서 가게를 꾸려왔다. 그녀들은 농사일이 없는 겨울철에도 태왁 하나에 의지해 추운 겨울 바닷속을 훑어 해산물을 따 올린다. 생활력이 강한 제주 여인들과 마치 한몸처럼 얽히고 설켜 찰랑거리는 바다는 해녀들의 삶의 터전이고 꿈이고 고향이다. 제주의 여인들을 열두세살이 되면 헤엄치기와 잠수하는 법을 배우고 늦어도 열댓살이면 제 몫을 하는 해녀가 된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라도 근력이 있을 때가지 험한 파도와 싸우며 물질을 계속하는 등 제주 해녀의 강인함과 근면성은 놀라울 정도이다. 바다에는 아무런 경계가 없는 것 같지만 사실 마을마다 제 바다가 있어 아무 바다에서나 물질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다른 마을로 시집을 가게 되면 친정 마을의 바다에는 들어갈 수 없다.
2) 식생활 문화
ⅰ)자연환경에의한 특징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벼농사를 거의 짓지 않았다. 편평한 땅이 매우 드물기도 하였지만, 빗물이 땅속으로 금방 스며들어 논을 만들 수 없었다. 제주도 전체 넓이의 27 퍼센트 정도가 경작지인데, 그나마 밭벼라도 심어 가꿀 수 있는 밭도 거의 없어 농사사정의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척박한 땅에서 지을 수 있는 농사에는 한계가 있었다. 제주도에서는 예로부터 곡식으로 밭벼, 피, 보리, 조, 콩, 팥, 메밀 같은 것들을 가꾸었고 채소로 무, 배추, 파, 마늘 같은 것들을 가꾸었다고 되어있다. 그 사정은 많은 세월이 흘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게다가 교통까지 불편하여 먹거리는 늘 부족하고 귀할 수 밖에 없었다.
ⅱ)소박한 식생활
식량확보에 급급하다보니 제주여인들은 '요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 식량이 귀하다 보니 필요한 만큼만 만들어 먹었고 일이 많다 보니 시간상 여유가 없어 되도록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어 먹는 음식을 만들게 되었다. 이러한 제주 사람들의 생활환경이 바로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주만의 음식과 식생활 풍습을 만들어 냈다.
제주사람들의 밥상 차림은 대체로 보리밥과 된장국, 김치, 젓갈, 된장, 생나물이나 익힌 나물 한두가지가 기본이었다. 조금 나은 상차림에는 생선이나 고기류가 곁들여 졌으나 기본 상차림의 반찬수가 적어 겉보기에는 초라하지만, 국과 반찬류에 생선이 들어가기도 하고, 거의 항상 싱싱한 채소가 곁들여지기 때문에 영양면에서 그리 나쁘지 않다. 할아버지나 아버니에게 외상 또는 겸상으로 상을 차려드리고 나머지 가족들은 찬마루나 찬방바닥 짚을 깐 부엌 바닥에 음식을 차려 놓고 모두 둘러앉아 먹는 경우가 많았다. 다른 지방과 달리 낭푼이라고 부르는 크고 둥근 놋그릇이나 나무로 만든 남박에 밥을 담아 가운데 놓고 온 식구가 같이 먹기도 했는데 이러한 풍경은 쉴새 없이 일에 쫓겨 살아야 하는 제주 여인들의 바쁜 생활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음식들을 보면 자연이 그대로 느껴진다. 산, 바다, 돌, 밭 등 다양한 자연적 조건 위에서 생산되고 체취한 것들을 제철에 섭취하고, 저장과 조리 방법 역시 자연조건을 최대한 이용하였다. 결국 척박하고 거친 자연환경과 그것을 극복하며 억척스럽게 조달할 수 밖에 없었던 귀한 먹거리는 재료의 자연성을 잃지 않은 개성적인 향토음식을 만들어냈다고 하겠다. 쌀밥을 두고 '곤밥'이라 불렀음은 그만큼 쌀이 귀하고 구하기 힘든 물건이었는지 알게 해주고 '쌀계'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또한 이를 뒷받침한다.
ⅲ)제주도 음식의 특징
우선 식단이나 조리방법이 간단하면서 재료 자체의 자연 맛을 많이 살렸다. 그리고 생활정도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세끼만 먹었고 간식은 거의 없었다. 대체로 주식 대용이었지만, 세끼 식사 이외의 음식으로 고구마 철에는 고구마를 먹었고 여름철에는 보리개역과 사탕수수를 심어 그것을 베어먹었으며 계절에 맞춰 나오는 참외나 수박 등을 먹었다. 사면이 바다이고 날씨만 좋으면 사계절 신선한 채소를 재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육지보다 저장식품이 발달하지 않았고 생식을 많이 하였다. 다만 자리젓, 멸치젓, 게웃젓(전복 내장으로 만든것) 등과 건미역, 톨말림, 모자반말림, 무말랭이 등은 제주도 특유의 저장식품으로 꼽을 수 있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발효 식품도 있었는데 '보리쉰다리'가 대표적이고 감주, 오메기 술 등이 있다. 보릿가루나 밀가루에 술로 발효한 보리상외떡 또한 제주 특유의 방법으로 만든 발효식품이다. 이외에도 쇠고기보다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으며 산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다래, 머루, 오미자, 볼래, 시러미, 삼동, 으름, 산딸기 등으로 천연과즙이나 과실주, 잼 등을 특화하여 널리 보급할 수 있었다.
제주 음식은 고춧가루를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고추장도 귀하여 돼지고기 음식에는 잘 사용되지 않고 국을 끓일 때 배추같은 것은 손으로 잘라 넣으며 야채는 대부분의 경우 생으로 많이 먹는다. 만드는 방법이 간단한 냉국은 여름철에 많이 먹었는데 들에 나가 일을 할 때 재료만 준비하여 가지고 가면 즉석에서 물을 부어 만들 수 있으므로 이런 용도로도 많이 이용되었다. 제주지역의 음식에는 여러가지 음식 재료를 한데 섞어 만드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찌개류는 별로 발달하지 않았고 대신 수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많았다.
ⅳ)제주도 전통 음식
-자리물회
여름철에 먹을 수 있는 대표적 회로 '자리돔'이라 하는 자그마한 흑돔을 말한다. 자리는 제주도 연근해 어장에서 5-8월까지 잡히는 어종으로 잡아온 싱싱한 자리를 회를 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자리강회'이다. '물회'는 잘게 썰은 자리를 식초에 버무려 뻐가 말랑말랑하게 되면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고 양념을 한 다음 얼음물을 넣고 먹는다. 입안에서 씹히는 연한 자리살의 고소한 맛은 여름 제주의 맛을 대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몸국
몸국은 제주도의 잔칫집에서 많이 먹던 별미음식이다. '몸'은 잔가지가 많은 모자반에 속하는 해조류로 바위틈에서 자란다. 연골을 삶은 국물에다 돼지고기를 넣고 몸과 파, 김치를 넣어 다시한번 끓이면 몸국의 특유의 맛이 우러난다. 햇몸으로 끓인 국은 '참몸국'이라 하여 별미로 친다.
-성게국
성게는 5월 말에서 6월 사이의 제주바다에서 많이 잡히는데, 이 무렵에 가장 살이 오르고 맛이 좋다. 성게는 단백질과 비타민, 철분이 많아서 빈혈에 특히 좋아 옛날에는 산모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이 국은 숙취에도 아주 좋으며 성게는 고가에 거래되기 때문에 해녀들은 어려움을 무릅쓰고 가시투성이 성게를 조심스럽게 줍는다고 한다.
-꿩 메밀국수
메밀은 변비를 없애주고 혈압을 안정시켜 주며 산모의 보양식으로도 좋다. 제주여인은 산후 음식으로 미역국보다 메밀국수를 먼저 먹었다고 한다. 꿩메밀국수는 꿩고기를 삶아 우려낸 육수에 제주산 메밀로 만든 국수를 넣어 끓인다. 밀가루 음식에 비해 먹은후 소화도 잘되고 맛이 담백해 누구나 부담없이 먹을 수 있다.
-빙떡
꿩메밀국수와 함께 메밀을 이용한 대표적인 음식이다. 메밀가루를 반죽해 지진후 팥고물이나 무우 숙채를 속에 넣어 둥글게 말아먹는데 예전에는 명절이나 제사때 반드시 상에 오르는 음식이었고 별미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재료와 맛이 독특한 제주의 대표적인 떡이며 훌륭한 건강식이다.
3) 가족제도에 나타난 특징
한국의 가족은 '먼조상에서 부터의 자손만대에 이르는 부계의 초시간적 제도체'라 규정할 수 있다. 조선중기 이후 부계친족집단의 결속이 강화되고 조직화되면서 한국사회에 이념적인 전형으로서 보편화된 이러한 가족구성원리는 현실 가족생활 속에서 개인에 대한 집의 우위성, 문중 조직의 강화, 가장의 권위, 장남우대상속과 부녀자의 낮은 지위, 정조관념의 강화와 이혼·재혼의 금기, 조상숭배와 제사 중시, 장남봉사, 양자의 성행 등의 특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한국 가족의 구성원리에 비추어 보면 제주도의 가족제도는 상호 모순되는 듯한 두가지 원리가 공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비부계적(非父系的)인 요소와 동시에 부계적 원리가 공존하고 있다.
ⅰ)비부계적 원리와 부계적 원리
제주도 가족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지적되고 있는 장남분가와 균분상속의 전통, 부계혈연집단의 결속약화, 조상제사의 분할 등은 한국의 전통적 가족과는 매우 상이한 모습이다. 또한 부녀자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고 남녀의 사회적 접촉이 비교적 자유로우며 이혼과 재혼에 대한 금기의식이 대단히 미약하다. 장례나 혼례과정에 출가한 딸이나 사돈댁 또는 외가친족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육지의 전통적인 가족과는 다르다. 이러한 현상은 다분히 비부계적인 요소이다.
반면에 제주도 가족에서도 전통적인 한국가족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들을 중시하는 남아선호의식이 매우 강하며, 조상을 숭배하고 조상제사를 중시하였다. 문중조직이 발달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상제사를 장남이 전담하는 곳에서는 종손의식도 뚜렷이 나타나고 아들이 없을 때는 반드시 양자를 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관행은 부계적 성격이 강한 요소들이다.
이와 같이 제주도는 오랫동안 한반도의 문화권에 속해 있었으면서도 가족제도와 친족제도에 관한 한 한국의 전통가족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전혀 원리를 달리하는 부분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ⅱ)이원적 구성원리의 공존논리
제주도 가족 및 친족제도에 상호 양립하기 어려운 두가지 요소, 즉 부계적 요소와 비부계적 요소가 공존하고 있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두가지 원리가 공존하고 있는 현상을 환경에 대한 제주인의 두 가지 대응양식으로 설명해 보겠다.
비부계적 특성들은 열악한 환경에 합리적으로 적응하기 위한 제주인의 생존전략, 즉 적응의 메커니즘으로 이해될 수 있다. 빈약한 자원과 매우 열악한 기후풍토 속에서 가족노동을 효율적으로 조직화하여 최대한으로 투입하기 위해서는 가족구조가 단순하지 않으면 안된다. 제주도의 농업생산방식은 개별적인 노동투입이 용이한 전작농업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전작농업과 나잠어업에 여성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남녀의 지위가 비교적 평등한 부부중심의 핵가족적 형태를 유지하기가 더욱 쉽다. 제주도의 장남분가와 핵가족화도 근본적으로 이런 관점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합리적 적응이 강조되는 사회에서는 능률과 실질을 추구하게 된다. 그러므로 친가, 외가, 처가를 구분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과 긴밀히 협동하고 결합한다. 의식구조에 있어서는 합리주의·실용주의·개인주의를, 생활태도에 있어서는 소박하고 근검절약하는 태도를 형성시키게 하였으며 가족제도에 있어서 전통적인 한국가족과 상이한 소위 비부계적특성들을 유지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점에서 더욱 강화된 부계적 특성들은 제주도가 안고 있는 척박한 땅, 심한 기후 변화 등 자연적 환경 조건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의 환경조건은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적응을 강요하는 조건이 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자에 의탁하여 현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원초적 동기를 자극시켜 각종 민간신앙이나 무속이 성행하도록 했다. 조상신을 숭경하고 제사를 중시하는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조상은 단순히 '먼저 살다 간 자'가 아니라 자손의 길흉화복을 주재할 수 있는 절대자로 신격화된다. 조상의 음덕이 자손의 현실생활에까지 미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제사를 담당할 아들의 획득이 중요시 되지 않을 수 없고 그를 위한 축첩, 양자, 사혼 등의 관행이 널리 행해지게 되었다. 한국의 전통가족에서 행해지는 조상제사가 부계의 가계 계승의 의지를 핵심원리로 하는 것이라면 제주도의 조상제사는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하고자 하는 신앙적 동기가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 가족제도에서 나타나는 두가지 상이한 원리는 열악한 환경에 대한 인간의 두 가지 대응양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모순된 원리의 양립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두 가지 원리의 공존인 것이다.
첨부파일: 개관.hwp(48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