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년 左派 정권을 물리치기 위해 미국에 7년째 정치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국제저널리스트 손충무씨 (INSIDE the WORLD 발행인) 와 그가 발행하고
있는 www.usinssideworld.com 특종 보도 기사들이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4월3일자 한국의 ‘주간현대’신문은 톱 기사로 “MB 대통령 측근들이 오래전부터
손씨와 접촉을 했으며 그로인해 MB 가 박근혜와 경선에서 승리 하도록 만들고
BBK 사건을 수세에서 공세로 만들었다.”고 보도 했다. 아래 기사는 현재 판매
중인 ‘주간현대’ (발행인.문일석) 제555호 (4월3일자)기사를 ‘주간현대’사로부터
승낙을 받아 전재 한다. <서울취재본부>
미국에 정치 망명 중이던 언론인 손충무 (INSIDE the WORLD 발행인)가 5-6월경
귀국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2000년 11월 미국에 3번째 정치 망명을 한 손충무는 워싱턴에 체류하면서
지난 7년 동안 20만건 이상 기사를 보도 했다. 손충무는 (www.usinsideworld.
com) 뉴스서비스와 함께 국내외 8개의 인터넷 매체와 2개의 TV, 미국 캐나다
현지 신문 4개사에 연재 칼럼을 쓰면서 친북 좌파 세력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줬다.
손충무는 또 2000년 6.15 평양회담 때 김대중 정권이 8억 달러를 제공 했다는
기사를 처음으로 발굴해 냈다. 김영완과 현대 재벌, 조풍언과 대우그룹 부정
사건을 파헤치는 수많은 기사를 보도, 결과적으로는 국내 보수 세력들에게
정보를 제공 했다. 또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상당히 기여한 숨은 공로자임이
최근 서서히 밝혀지고 있어 그의 귀국에 커다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MB와 만나고 있는 손충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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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밝혀지고 있는 새로운
사실은 이명박 대통령 진영에서
그에게 몇 해 전부터 상당히
공을 들였으며 이명박 대통령
(MB)이 직접 만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래서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
때 MB가 승리하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BBK 사건도 고비 마다
손충무의 기사에서 결정적
주요 정보를 얻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MB 측에서는 손충무의
도움을 받기 위해 이미
몇 해 전부터 종교계의
김홍도 목사, 김진홍 목사를
내세워 설득 작업을 했으며
경선 당시에는 MB측에서
활동 하던 전도봉 장군
(전 해병대사령관)이 손충무를
담당 그를 설득하여 막후
활동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 정치 망명중인 언론인 손충무 (INSIDE the WORLD 발행인)를 귀국
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언론계와 보수 애국단체, 예비역 장성들 사이에
조용히 태동 하고 있다.
'손충무 귀국환영 준비위원회'가 김경래(전 경향신문편집국장) 정재호
(전 경향신문 정치부장, 전국회의원) 장경순(전 국회의장) 유치송(전 민한당
총재) 전도봉(전 해병사령관) 김영관(전 해군제독, 성우회 회장) 서정갑
(국민행동본부 의장)등 30여명이 뜻을 함께 하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손충무는 지난 1997년 김대중과 김일성 관계를 폭로하는 '김대중 X-파일'
시리즈를 연재하고 책자를 발간하여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 당해 2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후 2000년 11월 미국으로 건너가 정치망명을 선언 한 후 언론사를 설립하고
지난 7년 동안 수 없는 다수의 기사를 보도하면서 국내 보수 세력들에게
공개리 정보를 제공 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을 만들어 내는데 알려지지 않은
숨은 공로자임이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손충무는 MB 캠프에 직접 참여 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지대에서 비밀리에 참여 했으며,
MB 특별보좌팀 자문위원 임명장도 받은 사실이 최근 밝혀지고 있다.
그러면 손충무와 MB 사이에 어떤 인연과 관련이 있었는지 증언자들을 통해
사실을 추적해 보자.
손충무와 MB 관계는 1964년 6.3 계엄령 때 서대문 감옥에서 첫 만남으로 전해
지고 있다. 당시 손충무는 경향신문 기자로써 6.3 사태 때 체포된 14명의 언론인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MB는 시위를 하다가 체포된 학생이었다.
지난 2007년 11월 이명박 후보는 어려운 1차 관문을 간신히 통과 하여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됐다.
박근혜 후보와 피 말리는 1년여의 싸움 끝에 1.4% 승리라는 어려운 승리를
얻었다. 그 승리는 사실상 박근혜에게 진 싸움이나 다름없었다. 근 2년 가까이
이명박의 인기는 박근혜 보다 10-25% 이상 앞서 있었다. 그러나 투표 뚜껑을
열었을 때 黨員과 黨內 대의원 투표에서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패배 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MB가 간신히 승리 한 것은 일반 시민의 투표에 의해서 1.4% 겨우 이겼다.
한나라당 당원이 아닌 시민들 투표에서 1.4% 이길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 기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박근혜 캠프 측 사람들이 지적
하고 있다.
2007년 6월호 신동아 잡지에 톱기사로 장식한 '박근혜 X-파일-전두환 수사기록' 기사는 그때까지 입으로 전해지던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계를 최근에
처음으로 다룬 본격적인 기사였다. 또 신동아 8월호는 박정희 정권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조사한 수사기록과 노태우 정권과 최태민 구속사실이 보도 됐다.
한편 월간조선 7월호에도 '최태민 목사 딸, 사위 등 서울 강남 수백억원대
부동산 소유' 기사가 나왔으며 때를 같이해 10여 주간지들이 박근혜 최태민 목사 기사를 보도 하는 바람에 박근혜 전 대표는 미쳐 대응도 하지 못한 채 난타를
당했다.
손충무와 김재규 중정부장
그 바람에 이명박이 승리했다. 당시 시중에서는 "죽은 김재규와 최태민이
박근혜의 발목을 잡았다"는 소문이 널리 번지었다. 또 언론계에서는 "신동아와
월간조선이 워싱턴에 정치 망명중인 모 언론인을 찾아가 설득하여 자료를 입수
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당시 말로만 나돌던 소문이 사실로 확인 됐다. 손충무가 3차례에 걸쳐
최태민 목사를 체포 수사 하도록 만든 장본인임이 확인 됐다. 또 신동아
취재팀과 월간조선 취재팀이 직접 워싱턴으로 가서 손충무를 만나고 자료를
가지고 온 사실도 확인 됐다.
그런 확인은 손충무 자신이 서울중앙지검 수사 검사와 국제전화로 몇 차례 통화
하면서 심문에 응하고 자신이 후배 언론인들의 인터뷰에 응하였음을 밝혔음이
검찰에서 확인 됐다. 또 서울중앙지검이 워싱턴 주미 한국 대사관에 파견된
법무관을 손충무와 직접 만나 확인 했음이 최근 귀국한 워싱턴 근무 외교관들로
부터 확인 되었다.

▲ 주간현대 보도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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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07년 봄과 여름에 2차례 전도봉 장군이 도쿄에 가서 강연차 도쿄에 머물고 있던 손충무를 직접 만나 최태민 자료 공개를 간곡히 부탁 한 것으로 전도봉 장군 측근들이 밝히고 있다.
그래서 한국 언론에 최태민목사-박근혜 관련 자료가 지난해 여름부터 보도되기
시작 한 것이다. 결국 MB가 박근혜 전 대표에게 1.4%를 간신히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도봉 장군이 결심을 하고 손충무를 설득하여 후배 언론인들이 워싱턴과
도쿄를 방문 취재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어렵게 1차 관문을 통과한 이명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BBK 사건과
이회창의 등장이었다. 노무현 정권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한국 언론들과
KBS, MBC, SBS - TV들은 BBK 김경준과 이명박을 연결 시켜 매일 보도해
MB의 부도덕성을 보도 했다.
그런 점 때문인지 여당의 이해찬, 장영달 의원과 정동영 후보는 "이명박 정도는
한방이면 날아간다" 고 큰소리 쳤다. 여당의 실세 문희상 의원은 "선거가 시작
되면 재미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선거는 우리가 승리한다."고 장담했다.
2007년 9월 LA의 미 연방 구치소에서 4년째 한국에 가지 않고 미국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버티고 있던 김경준이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하면서 "나는 억울하다. 나는 이명박이 시키는 대로 했다. 이명박이 투자를
해주어 BBK를 운영 할 수 있다."는 말을 흘려 언론들이 연일 크게 보도 했다.
이명박은 참으로 어려운 입장에 있었다. MB측이 아무리 자신이 관련이 없다고
해도 3개 보수 언론을 제외한 모든 언론매체와 3개 TV는 김경준과 에리카 김
변호사 (김경준의 누나) 의 주장만 보도 할 뿐 MB의 이야기를 무시 했다.
전도봉 장군이 보낸 사람

▲ 전도봉 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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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또 전도봉 장군이 나섰다.
전 장군은 2007년 10월 15일- 20일 사이 3차례나 워싱턴으로 손충무에게 국제전화를 했다. 또 손충무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알고 메릴랜드 벌티모어에 사는 해병전우회
백승기 회장에게 꽃을 들고 병원으로 병문안을 가도록 했다.
그때를 손충무는 이렇게 말했다
"전도봉 장군이 갑자기 전화를 하여서 '우리 해병대 전우회가 이명박 후보를 지지 하고 있는데 손 발행인께서 LA에 가셔서 김경준을 직접
만나보고 취재를 해서 바르게 보도를 하여 주십시오. 국내 언론은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서
장악을 하니 국민들이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경험이 많고 미국을 잘 아시는 분이 취재를 해서 바른 보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하는 부탁이었다"
손충무는 또 "나는 전 장군의 부탁으로 최태민 목사 자료를 공개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끝난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사람까지 보내어 3차례나 간곡하게 부탁 하여서 당시 치료 중이었지만 할 수 없어 LA로 갔다."고 말했다. 그리고 11월 1일에 "이명박 낙마
시켜주면 BBK 사건 없던 것으로
해 주겠다" LA에 소문 - 제2의
김대업 노리는 BBK 김경준 송환 배후에 어떤 음모가 있다 "고 폭로 기사를
크게 보도 했다.
그리고 "LA에 정체를 모를 사람들 몰려와 김경준-에리카 김 모셔간다는 소리가
상당히 널리 퍼져 있다"고 기사화 했다. 이 기사가 www.usinsideworld.com 기사로 보도 되자 국내의 10여개 인터넷 언론들이 옮겨 전재 했으며 하루에 7천여명의
독자들이 클릭을 했으며 수 만명의 네티즌들이 블로그로 퍼날랐다.
그리고 11월 26일 "김경준 BBK '이면 계약서 가짜일지도?-김경준 가족들의
끝없는 거짓 폭로에 놀아난 한국 언론과 정치인들..."이라고 기사화했다.
또 12월 6일 " BBK 김경준 제 발로 서울에 간 것은 여권 실세들과 D.J 측근
보장 -김경준 아버지 김세영 때늦은 후회, 이명박 낙마 시킬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기사 속에는 "국가정보원 고위 인사들과 열린우리당 정동영 측근들과 실세들이
김경준을 만나고 에리카 김 (김경준의 누나)을 만나고 김경준의 아버지를 만나
설득하고 포섭 했다."고 기사화 했다.
이런 기사가 보도 되자 MB와 한나라당은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안상수 원내
대표가 12월 7일 INSIDE the WORLD 가 보도한 주간지 신문을 들고 "정부 여당의 김경준 기획입국"을 폭로하고 나서면서 정부 여당을 공격하기 시작 했다.
그러니까 손충무가 LA 현지에서 보도한 기사 몇 건이 수세에 몰려있던
한나라당의 입장을 수세에서 공세로 바꾸면서 BBK 승세를 잡기 시작 했다.
또 그때쯤 정형근 의원, 박계동 의원등 여러명이 워싱턴 손충무에게 전화를
하여 확인을 했다.
손충무가 보도한 기사 때문에 "김만복 국정원장 측근들이 에리카 김과 김경준의
아버지를 만나 설득 했으며 정동영의 후보 고문 변호사와 D.J 집안 사람들까지
LA를 다녀 갔다." 는 정보가 국내 선거판에 퍼지기 시작 했다.
BBK-김경준을 내세워 제2의 김대업 사건을 만들려던 노무현 정부 여당은
INSIDE the WORLD의 www.usisideworld.com이 보도 하는 기사 때문에
공세에서 이번에는 수세로 몰리는 묘한 입장이 됐다. 그러니까 손충무는 그 몇
건의 기사 보도 이후 하루에 70여통씩 모함과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손충무의 기사가 진실이고 정확했음을 증명 시켜주는 사건이 생겼다.
꼭 4개월 만에 진실이 밝혀 졌다.
인사이더월드 기사가 정확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재판장, 윤경 부장판사) 에서는 "검은
머리 한국인 때문에 BBK 사건이 발생했다"는 말을 유행시킨 BBK 사건의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BBK 주범 '김경준이 정부여당의 이명박 죽이기
기획입국'에 관한 증인 신문을 하는 날이었다.
이날 검찰측 증인으로 나온 신모(50)는 애당초 김경준의 증인이 될 뻔한 인물이다. 그는 지금 대전교도소에서 복역중 BBK 사건 재판의 증언 때문에 안양에 있는
서울구치소로 이전되어 있다. 신아무개는 BBK 사건 재판의 증인으로 출두 하게
된 것은 기구한 그의 운명 때문이다. 신아무개는 지난 2005년에 한국에서 강도,
상해, 폭행등 범죄를 저지르고 미국으로 도주했다.
한국 경찰은 인터폴 (국제경찰기구)를 통해 신아무개의 체포를 요청했으며
검찰은 미국 정부에 '범죄인 인도요청'을 당부했다. 미 연방 수사국 (FBI)는
신아무개가 LA로 잠입한 사실을 파악하고 수사를 펼친 끝에 2006년 말
체포하여 추방 재판 절차를 밟으며 LA 연방 구치소에 수감시켰다.
신 아무개가 LA 연방 구치소에 수감되어 그 안에서 김경준을 만나게 됐다.
당시 김경준도 FBI에 체포 되어 한국으로 범죄인 인도 절차 재판을 하고
있었으나 김경준이 미국시민(Christopher Kim) 임을 주장 미국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4년째 재판을 계속하면서 한국 송환을 거부하고 있었다.
LA 구치소 안에서 1년 동안 김경준과 사귀게 된 신아무개는 2007년 봄부터
김경준이 활기를 띄우면서 "나는 한국에 송환되면 불구속 상태로 호텔에서
수사를 받을 것이다. 누나 에리카 김을 통해 정동영 측근인 열린 우리당 박영선
의원과 국가정보원하고 얘기가 되어 있다."고 큰 소리 치기 시작했다."고 증언
했다.
신아무개는 "어느 날 김경준이 '나도 알고 있는 국정원 직원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명박을 낙선 시키면 무죄로 해준다' 고 말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이면
계약서라는 것을 봤는데 철자법도 틀리고 해서 지적해 주었더니 다시 만든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한편 신아무개는 "김경준이가 나에게 먼저 귀국하면 BBK 이면 계약서를 봤다는
이야기를 퍼트려 주고 내가 보낸 사람들에게 증언을 해주면 무료로 변호사를
대주고 돈을 주겠다 고 부탁을 하여 대전 교도소에 수감 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신아무개는 김경준 보다 1개월 더 먼저 송환 되었으며 대전 교도소에
있었다.
2007년 11월 정동영의 측근이며 열린우리당 변호사인 이모 변호사가 3번이나
찾아와 "김경준과 약속한대로 '이면 계약서를 봤다는 사실을 언론에 알릴 수
있도록 해주면 우리가 당신의 가석방을 도와주고 2억원을 주겠다. 각서라도
쓰겠다."고 설득했음을 증언 했다. 이로써 김경준의 기획입국은 진실로
드러났으며 손충무가 자신의 이름으로 LA 현지에서 몇 차례에 걸쳐 보도한
기사가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결국 BBK 사건의 흐름을 몇 건의 기사가 바꿔놓았으며 이명박이 살아났고
대통령에 당선이 됐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박근혜 캠프에서도 손충무와 잘
아는 언론인 출신들이 있었다. 또 안병훈 선거대책본부장, 홍사덕, 서청원 등도
평소 손충무와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도 MB 막후에 손충무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감쪽같이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들이 손충무로 하여금 MB를 돕지 못하도록 막을 수만 있었다면 지금쯤
박근혜가 청와대의 주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결국 손충무로 하여금 MB를 돕도록 오래전부터 설득한 김홍도 목사, 김진홍
목사, LA로 가서 보도하도록 부추긴 전도봉 장군의 국제 전화 수십 통의 성화
때문에 MB가 청와대에 입성에 일부 기여한 셈이다.
<주간현대 취재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