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사회의 잣대로 군을 재단하면 안 돼
1) 언론들이 7월 4일 강화도 해병2사단 소초 총기난사 사건을 보도하면서 해병대 죽이기에 나선 듯 하다. 언론들이 주어진 막강한 언론권력을 악용하여 정치적 목적으로 사실을 조작하거나 왜곡하여 '사이비 사건(pseudo-event)'또는 '사이비 영웅(pseudo-hero)'만들기를 다반사로 하고 있다.
광우병난동사태를 비롯한 많은 정치적 사건들이 언론계의 종북좌익세력들에 의해 날조되고 왜곡된 '사이비 사건'들이고 지금 강화도 해병2사단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언론들의 과열 과장 보도 역시 언론의 '해병대 죽이기' 선동이다. 서해안을 지키는 한국의 해병대가 좌익언론들의 정치용 뉴스 만들기(making)의 제물이 되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2) 언론들은 선동기관처럼 고상하고 그럴 듯한 명분 뒤에 추악한 정치선동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방과 사회의 치안과 국민의 행복을 파괴하는 부정적 선동의 역할을 언론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좌경적 언론들이 조직적으로 국방기관(군대), 치안기관(경찰), 공안기관(국정원) 등을 '폭력집단'으로 몰아 마녀사냥식으로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좌경적 언론들이 반란적 좌익집단은 두둔하면서 애국적 우익집단만 때리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노사타협을 무시하고 쇠파이프를 들고 경찰에 밤새 대적한 민노총의 폭력을 언론들이 비판적으로 보도한 일 있는가? 우익애국집단의 작은 흠집은 크게 확대하여 통째로 매도하면서 종북좌익집단의 큰 잘못은 덮어주는 언론의 보도행태는 일종의 군중 기만이다.
왜 한국의 언론은 민주와 평화를 앞세운 좌익집단의 기만과 폭력에 그토록 관대한가? 얼마 전 금지구역으로 접근하는 민항기에 해병대원이 신호탄을 쏜 것을 두고 '민간인을 향한 총질'로 둔갑시켜 비난한 언론들이 이제는 아예 '해병대 죽이기'에 나선 듯 하다.
3)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을 다루는 언론들은 부정확한 보도와 분석과 처방을 하고 있다. 해병대 죽이기에 나선 언론들은 인과관계도 잘 판단하지 않고 군대의 병영문화에 총기난사의 책임을 덮어씌운다. 이번 강화 해병대 2사단 소초에서 벌어진 총기난사의 원인이 완전히 규명되기도 전에 언론들은 서둘러 해병대를 '반인륜적 병영문화를 가진 폭력집단'으로 인민재판했다.
총기 난사자인 김모 상병도 "기수열외를 당할 것 같아서 총을 쐈다"는 취지의 고백을 했다. '기수열외를 당할 우려' 때문에 동료들에게 총을 쏘는 비정상적 군인을 기준으로 군대의 병영문화를 매도하는 보도는 언론의 부정확한 판단이다. 군대나 경찰에서 발생되는 사건들에 대해 언론들이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하여 국익에 해를 끼치고 있는 것이다.
치안·공안·국방기관에 대한 언론의 악마화 작업은 너무 강하다. 이번에 서둘러 해병2사단의 지휘관들을 처벌한 것은 언론의 인민재판에 밀린 국방부의 패배 선언이다. 생명과 인권에 무감각한 총기난사자부터 먼저 엄벌하는 것이 먼저이고 순서 아닌가?
4) 이번 해병대 충기난사 사건에 대한 국방부의 조치와 언론의 보도는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2005년 6월 19일 연천군 28사단 81연대 수색중대 530G사건과 이번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의 처리는 너무도 상반되기 때문이다.
북괴군의 공격으로 의심되는 소위 530GP사건은 "신임병사가 상급자들의 괴롭힘에 앙심을 품고 총기를 난사한 하극상에 의한 총기사고"라고 군 수사기관이 발표하면서 가해자들에게 당시 국가보훈심사위원장이던 한명숙은 훈장을 주었고 관련 상관들(당시 수색대대장은 국정원 근무, 연대장은 미군기지이전총괄팀장)은 처벌받지 않았다.
이에 비해 7월 4일 강화도 해병2사단 소초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총격의 원인(기수열외 당할 가능성?)이 애매함에도 불구하고 사고책임을 물어 해당 초소장과 부사관이 구속되고 연대장과 대대장이 보직해임 되었다. 총기난사도 누가 연관됐느냐에 따라서 언론이 다르게 다루고 국방부의 처벌도 확연하게 다르다. 530GP사건의 처리는 국군의 무법상태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5) 군대에서 총기난사자들의 범죄 책임을 군대에 함부로 떠넘기지 말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에서 흉악범들의 책임을 개인의 부도덕이 아니라 사회구조 문제로 둔갑시키는 해괴한 책임전가가 성행하고 있다. 물론 개인의 범죄가 사회구조 문제와 연관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범죄는 개인의 책임인 것이다.
사회구조에 개인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세계관은 무책임하다. 예를 들면 군대에서 군기가 세거나 혹은 이번 경우처럼 왕따가 있었다고 해도 그런 구조적 문제가 모든 해병대원들에게 총으로 동료를 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 보다는 나쁜 자가 동료를 쏠 확률이 더 높다. 옛날에 비해 군대의 군기가 매우 약해진 상황에서 군대의 병영문화나 기수열외를 핑계로 동료들에게 총질하는 것은 악인의 범죄일 뿐이다.
군기가 허물어져서 이번 해병대 총기사고가 난 것이 아닌가? 범인의 죄를 사회구조의 한계로 돌리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넘어 도덕적 책임전가의 범죄다. 집단에 대한 범죄자의 이런 뻔뻔한 책임전가는 좌익적 작태이기도 하다.
6) 군대나 경찰에 대한 좌익몽상가들의 비현실적 진단이나 인권관은 더 큰 문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종북좌익분자들이 말하는 인권이나 평화의 고상한 명분은 결과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이 될 수 있다. 이 세상의 실존적 곤경을 완전히 무시한 좌익 유토피안들은 인간세계의 구조적 모순을 완전히 없앤다는 교만과 몽상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학생 지도에 체벌을 완전히 근절하겠다는 교육정책은 하나의 폭력(구타)을 막지만 다른 폭력(왕따)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영국은 체벌금지 규정 철폐는 이에 대한 반성인 것이다. 이번 해병대 총기난사 사건은 구타를 없애고 나니까 왕따가 생긴 경우이다. 권위주의적 집단(군대)에서 육체적 체벌을 막으니까 정신적 왕따가 시작된 것 아닌가?
폭력적 병영문화를 근절한다고 해서 군대가 천사들의 사교장으로 바뀔 것 같은가? 그래서 하나의 학대(harrassment)를 막으면 다른 학대가 등장하는 인간사회의 한계를 더 고민해야 한다. 인권도 사회적 분야에 따라 변형적 학대를 막기 위해 달리 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7) 공적 관계(impersonal relations)를 중시하는 군대라는 특수집단이 과연 과잉민주화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도 정부와 국민들은 더 고민해야 한다. 군대는 어느 나라에서나 '권위주의적 공동체(authoritarian community)'이므로 개인의 자유가 상관의 명령에 의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특수집단이 바로 군대이다.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은 보이스카웃트보다 더 무질서한 사교집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특히 해병대는 고의적으로 극한상황을 조성해서 체험하는 더 극단적인 권위주의적 독재집단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을 무시하고 알량한 민주나 인권을 함부로 해병대에 들이대면 나중에 전쟁시에 진짜 해병의 목적인 승전에 실패해서 결국 국민 전체의 민주와 자유와 인권을 박탈시키는 패잔병으로 전락할 수 있는 것이다.
그처럼 군대의 민주화는 자칫하면 군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진 어려운 과제인 것이다. 책임과 의무를 경시하는 인권과 민주가 넘치는 군대는 오합지졸의 패잔병 집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8) 상관의 정상적 명령이 부하에게 거부되는 민주군대는 '장개석 군대'가 될 수 있다. 물론 군대에서 상관의 부당한 명령이나 권위는 개선되어야 한다. 특히 폭력 근절은 군대의 사기와 단결에도 보탬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관의 정상적 명령이나 권위가 부정된 군대는 그 존재목적인 국방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상관을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명령체제가 서지 않는 군대는 응석받이들이 시간만 썩이는 곳이 된다. 군대에서 이 세상의 실존적 곤경을 제한적으로 체험하는 것은 모순으로 가득찬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좋은 체험교육이 될 수 있다. 우리는 6.25 남침으로 300만이 죽었던 것과 북한에서는 300만명이 굶어죽는 것을 체험한 민족이다.
그런 비참한 현실을 직면한 한국의 젊은이들이 군대에서 겪는 모순과 곤경은 결국 대한민국의 번성과 자신들의 성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응석받이 세대가 가진 한계를 함부로 군대의 권위주의적 병영문화에 떠넘기지 말아야 건강한 질서의 군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9) 사회의 민주화를 무지막지하게 군대에 들이대면 위험성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게임의 룰이 바뀐 것을 너무 급격하게 군대에 적용시키기 말아야 한다. 한국의 산업화시대에는 군대가 사회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군대가 이 사회를 이끌지 못한다.
한국의 전통사회는 유교적 권위주의 때문에 군대의 병영문화에 친화적이었지만 민주화가 급격하게 과도하게 진행되고 후기 현대사회로 접어든 한국사회에서 군대는 사회에 대치되는 집단처럼 되었다.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나 권위에 대한 복종을 무시하는 배타적 자유(negative freedom)를 체현한 개인주의적 군중인간들이 권위주의가 필수적 덕목인 군대에 갔을 때 견디지 못할 정신적 고통을 겪게 마련이다.
비근한 예로 훈련기간에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것만으로도 인터넷에 중독된 훈현병에게 군대는 생지옥이 될 수 있다. 군대의 병영문화가 과잉민주사회처럼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군대의 해체를 촉진하고 전쟁을 자초할 수 있다.
10) 분단된 한국상황에서 군대에 낭만적 평화주의를 강요하면 안 된다. 젊음을 군대에서 모두 보내는 북한의 선군정치를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군대의 목적은 한시적으로 젊은 국민의 개인적 자유를 제한하더라도 국방을 튼튼히 함으로써 결국 온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보호하는 것이다.
이런 공리주의적 목적이나 결과를 이뤄내기 위해서 군대는 자유의 제한과 고통의 자청을 동반하는 훈련을 하게 된다. 군대에서 강압적 훈련이나 기합을 배제하면 과연 전란의 시기에 목숨을 바칠 군대가 조직되겠는가? 평소에 엄격한 관물과 제식을 했던 모범군인들이 전시에 가장 용맹한 전사가 되더라는 해병대 장성의 증언을 11일 들었다.
평시에도 엄격한 규율과 군기를 유지하는 군대가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지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북한의 냉혈적 특수부대와 군대를 무시하는 남한의 응석받이 군인들이 전쟁하면 누가 이기겠는가?
11) 해병대의 총기사건을 너무 지나치게 비난보도하는 언론계의 종북좌익세력의 정치적 목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군대와 경찰과 국정원을 권위와 명예의 측면에서 죽여 놓고 하나 남은 해병대를 또 언론이 죽이고 있다.
좌익집단의 사기와 폭력과 반역에 대해서는 은폐나 축소 보도를 하면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과 행복을 보호할 군대, 경찰, 국정원 등 애국우익기관들만 집중적으로 때리는 것은 언론계에 좌익세력이 득세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저축은행 비리사건과 같은 대형 금융사기사건에 대해 특집방송을 하지 않은 언론계가 군대 때리기에만 열을 올리는 것은 편파의 극치이다. 군대와 경찰에 대한 긍정적인 보도는 일체 없다. 군대와 경찰의 기를 죽인 언론이 이제 해병대 때리기에 몰입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공안기관, 치안기관, 국방기관 등 안보관련기관 죽이기를 한국 언론이 조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12) 군대를 민간의 눈으로 함부로 재단하면 거짓말이 된다. 안락한 의자에서 몽상한 시각으로 군대를 판단하면 그것은 구조적으로 허구적이 될 수 있다. 일단 군대를 군대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그 다음에 외부에서 충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이클 왈쩌는 종교단체, 교육단체, 기업집단, 군대집단 등에 각각 다른 윤리적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다원주의적 정의론'을 주장했다. 군대를 향해 성직자나 몽상가의 윤리나 논리를 들이대는 것의 한계나 모순을 우리는 깊이 고민해야 한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민주팔이들이 모든 사회적 영역들에 민주나 평화의 규준을 마구잡이로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평화군대'까지. 그 결과 적을 향해서도 '평화'를 주절대는 비정상적 군중들이 군부에까지 번성해 있다. 적을 적으로 보지 못하고 군대를 군대로 보지 못하는 비정상적 군중선동꾼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체제를 허무는 것은 물론이고 군대까지 망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13) 군대의 인권은 사회의 인권과 달라야 한다. 군대의 부분적 인권침해 사건을 보고 군대 자체를 반인권적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부분적 진실을 전반적 구조악으로 보는 논리의 비약이고 사실의 왜곡이다.
김대중과 노무현 좌익정권이 평화와 인권의 이름으로 주적을 없애고 고참에게 복종하는 병영문화를 약화시킨 결과 오히려 군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악질적 학대가 증가한 것으로 판단된다. 예를 들면 이번에 '기수열외'라는 말이 최근 몇년에 생겼다고 한다. 기합을 너무 엄격하게 통제하니까 동료(특히 부하)에 대한 적대감이 왕따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군대가 권위주의적 명령체계를 생명으로 여기는 특수집단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낭만적인 인권개념을 군대에 들이대면 결국은 기수열외와 같은 변태적 인권침해가 발생될 수 있는 것이다. 총기난사와 같은 극단적 인권침해를 몰고 오는...
14) 군대의 특수성에 좀더 고민하는 한국언론이 되어야 한다. 군대는 적을 죽이는 전쟁수행집단이다. 이익의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이나 지식의 취득을 목표로 하는 학교나 고상한 도덕을 향하는 종교집단과 너무도 다른 적을 죽이는 죽여야 하는 집단이 군대다.
유능하게 적을 죽이는 기술이 군대의 최고 미덕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권위에 복종하면서 그런 특수한 목적을 수행하다 보니까 동료(특히 부하)에 대한 비인간적인 억압이나 학대가 군대에 쉽게 발생될 수 있는 것이다. 구타나 왕따가 군대에서 최대한 척결되어야 하지만 일정한 기합이나 통제는 피할 수 없는 또 피해서도 안 되는 군대의 병영문화에 속한다.
상관의 권위와 부하의 복종은 군대가 작동되는 제1계율이다. 군대의 가혹행위만 과장하고 부도덕한 총기난사자를 미화하는 낭만적 인권개념이나 군대진단은 올바른 병영문화 구축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군대의 특수한 윤리를 파괴하는 환상적 정치선동은 결국 군인을 죽인다.
15) 오늘날 한국언론의 집중적인 해병대 마녀사냥은 우직한 군대에 대한 교활한 언론의 이지메(왕따)나 학대로 볼 수 있다. 소위 민주화가 과도하게 진행되면서 언론의 횡포는 한국사회에 최고의 사회적 폭력으로 등장했다.
국익이나 상식도 없이 마치 독재자처럼 휘둘러대는 언론의 몽상한 '인권'이나 '평화'는 한국사회에 기만과 폭력이 난무하게 만드는 핵심적 변수가 되고 있다. 언론이 군대보다 억울한 희생자들을 더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변명에 약한 군대와 경찰에 대한 한국언론의 무자비한 마녀사냥은 마치 빨치산이 점령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포로된 군인과 경찰에 대한 인민재판과 다를 것이 없다.
해병대를 폭력집단으로 무자비하게 매도하는 언론들의 선동문화가 국군의 병영문화보다 더 폭력적인 것이다. 이것이 인권과 민주와 평화를 과잉 강조하는 한국언론의 위선과 모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