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 최양업 토마스 신부 1

2014. 11. 13. 오후 12: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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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트) 최양업(崔良業) 토마스 신부 1

 

   최양업 신부 집안이 신앙을 받아들인 시기는 

   최양업(崔良業)의 증조부 최한일(崔漢馹) 때의 일이다.

   최한일은 1787년 서울에 거주할 당시, 아우 최한기(崔漢驥) 와 함께

   내포의 사도 이존창에게서 교리를 배워 신자가 되었다.

   신앙을 받아들인지 오래지 않아 아들 최인주(崔仁柱)를 남기고 세상을 떴다.

   

   최인주는 모친인 경주이씨를 모시고 살다가, 

   1791년 신해박해 때 고초를 겪었다. 

   최인주와 그의 모친은 더 큰 화를 피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 여러 지역을 전전한 끝에 청양 땅에 정착하였다.

 

   최인주는 경주 이씨와 혼인하였는데, 셋째 아들이 최경환이었다. 

   최경환은 이성례를 아내로 맞이하여 1821년 장남 최양업이 태어났다.

 

1821. 3. 1 충청도 홍주 다락골 새터(충남 청양군 화성면 농암리의 다락골)에서

               기해박해 순교성인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 1805-1839) 과 

               복자 이성례(李聖禮 마리아 1800-1840)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다락골은 최인주의 활동으로 교우촌이 되어, 최경환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경제적으로 넉넉해졌으나, 비신자인 친척들과

               교류하면서 신앙이 식어가자, 최경환은 가족을 설득하여 서울의 낙동

               (서울 중구 회현동)으로 이주하였다. 신자들이 자주 드나들자, 

               천주교 신자임이 발각되어, 박해를 받을 위험을 느껴, 형제들은 각자

               다른 교우촌을 찾아가기로 결정하였다. 

               

                맏형 영렬 가족은 목천(木川) 서덜골

                (서들골, 충남 천안시 목천읍 송전리)로

                둘째 영겸 가족은 용인 한덕동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목4리)로 이주하였다.

    

                최경환 가족은 강원도 김성(금성?)과 경기도 부평의 산간 지대로

                옮겨 살다가 

1838년경   과천 수리산(修理山)의 뒤뜸이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9동 담배촌) 로 이주 정착하였다.

                산농을 일구어 살 만한 마을로 만들고 신자들이 이주해 와

                교우촌이 되어, 최경환은 모방 신부에 의해 수리산 교우촌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1839.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붙잡혀 

 

1839. 9. 12(음력 8월 5일) 최경환 프란치스코 옥사 순교

 

1840. 1. 31 서울 당고개에서 이성례 마리아 순교      

 

               최양업 토마스의 신학생 유학

               당시 모방 신부는 지도층 신자들에게 신학생이 될 소양을 갖춘

               소년들을 추천하도록 하였는데, 가장 먼저 추천된 소년이 최양업이었다.

 

1836. 2. 6(음력 1835. 12. 30) 서울의 후동(后洞)에 있는 모방 신부의 거처에 도착

               하여 라틴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1836. 3. 14 최방제,

 

1836. 7. 11 김대건이 모방 신부의 거처에 도착 함께 공부하였다.

 

1836. 12. 3 세 신학생 서울 출발

               ( 파리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가 있는 마카오로)  

 

1836. 12. 28 변문 도착, 샤스땅 신부 만남, 중국인 안내자와 함께 

                  중국 대륙을 가로질러

 

1837. 6. 7(음력 5월 5일) 마카오 도착

                  세 신학생들은 극동대표부 안에 설치된 '조선 신학교'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였다.

 

1837. 11. 27  최방제 위열병으로 사망

 

1839. 4 - 1839. 11 마카오에서 아편 거래 문제로 일어난 소요 때문에

                           필리핀의 마닐라와 콜롬보이에서 피신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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