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죄와 7극

2008. 3. 13. 오후 4:41:39

글자
 
한국 가톨릭의 공식적인
 
첫 순교자 윤지충의 공술서에서
 
" 罪人 尹(持忠) 供 .  저는 어려서부터 공직에 나아갈 생각으로 과거 준비를 위하여 공부를 하였읍니다. 제 오죽잖은 소망은 다만 임금님께 대한 충성의 의무와 부모님께 대한 효도와 형제에게 대한 우애의 의무를 다하기에 힘쓰는 데 있었읍니다. 계묘 (癸卯,1783) 년 봄에 저는 진사(進士)가 되었읍니다.  이듬해 겨울, 서울에 가서 명례방골에 사는 중인(中人) 김범우의 집에 우연히 들렀더니, 그 집에는 <천주실의>라는 책과 <칠극(七克)>이라는 책, 이렇게 두 권이 있었읍니다.

그 책을 대충 읽으니, 천주는 우리 공동의 아버지시요, 하늘과 땅과 천신과 사람과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읍니다. 그 분은 중국 책에서 상제(上帝)라고 부르는 분이십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태어났는데, 비록 살과 피는 부모에게서 받으나, 사실인즉 천주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육신과 결합하는데, 그것을 결합시키는 이도 천주이십니다. 임금께 대한 충성의 근본도 천주의 명령이요, 부모께 대한 효도의 근본도 역시 천주의 명령입니다. 이 모든 것을 중국의 경서에 실린 상제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라는 계율과 비교해 본 결과, 거기에는 같은 점이 많다고 믿게 되었읍니다. 실행할 것은 십계(十戒)와 칠극(七克)에 포함되어 있읍니다.

십계는 이러합니다. 1. 하나이신 천주를 만유위에 공경하여 높이라. 2. 천주의 이름을 불러 헛맹세를 하지 말라. 3.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 4. 부모를 효도하여 공경하라(이 계명의 해석에는 임금은 온 나라의 아버지요, 관장은 그 고을 백성들의 아버지이니. 그들도 역시 공경하여야 한다고 적혀 있읍니다.) 5. 사람을 죽이지 말라. 6. 사음(邪淫)을 행하지 말라. 7. 도둑질을 하지 말라. 8.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6.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10. 남의 재물을 부당하게 탐내지 말라. 이 십계는 요컨대 두가지로 요약되니, 천주를 만유 위에 사랑하라는 것과 모든 사람을 자기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칠극은 이러합니다.
 
1. 교만을 이기기 위한 겸손  
 
2. 질투를 이기기 위한 애덕  
 
3. 분노를 이기기 위한 겸손  
 
4. 인색을 이기기 위한 희사(喜捨)에 너그러
 
움  
 
5. 탐식을 이기기 위한 절식(節食)  
 
6. 음란을 이기기 위한 금욕  
 
7. 나태를 이기기 위한 근면.  
 
  이 모든 것이 덕을 닦는 것을 돕는 데에는 명백하고 정확하고 용이하므로, 저는 그 두 책을 빌어서 소매에 넣고 시골 집에 돌아와 베꼈읍니다.

을사(乙巳1785)년 봄에 저는 그 책들을 주인에게 돌려 보냈읍니다. 3년 후에 그 책들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나서야, 비로소 저는 그것들을 진지하게 실천하기 시작했읍니다. 2년 후에 이 교리가 엄금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 책들을 불사르던가 물로 지우던가 하여 집에 보존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저는 천주교 교리를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았고, 누구에게 전해 주지도 않았읍니다. 그러나 천주를 내 아버지로 일단 알아본 뒤에는, 그 분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읍니다.

그런데 양반 집에서 관례로 되어 있는 신주(神主)는 천주교에서 금하는 것이므로, 제가 그 종교를 따르는 이상 거기서 명하는 것에 복종하지 않고 달리 할 수가 없었읍니다. 제 4계가 "우리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령하므로, 만일 사실로 우리 부모들이 그 신주 안에 계시다면 천주교를 믿는 사람도 누구나 신주를 공경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신주들은 나무로 만든 것이고, 그것들은 저와는 살이나 피나 목숨으로 아무 관계가 없읍니다. 그것들은 저를 낳고 기르는 수고에 아무런 몫도 하지 않았읍니다. 제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영혼이 일단 이 세상에서 나가면 그런 물질적인 물건에 붙어 있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의 명칭은 아주 위대하고 매우 존경받을 만한 그 무엇인 만큼, 어떤 일꾼이 만들고 꾸민 물건을 감히 가져다가 제 부모를 삼고, 또 실제로 그렇게 부를 수가 있겠읍니까. 이것은 바른 이치에 근거를 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 양심은 그것을 승복할 수가 없었읍니다. 그리고 비록 그로 인하여 말씀대로 양반 칭호를 박탈 당해야 한다 해도 천주께 대하여 죄인이 되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신주들을 저희 집 땅 속에 묻었읍니다, 제가 그것들을 불살랐다는 소문이 퍼졌읍니다마는 우리 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떤 뚜렷한 명령을 내리는 것이 없으므로 누가 그런 비난을 하였고 누가 그것을 들었는지 모르겠읍니다.

죽은 이들이나 그 위패에 술과 음식을 드리는 것으로 말하면, 그것도 천주교에서는 금하는 것이니, 이 교를 따르는 자들은 그 법을 지켜야 합니다. 과연, 조물주께서 여러가지 종류의 피조물을 마련하실 때에 물질적 피조믈은 물질적인 것을 쓰고 비물질적 피조물은 비물질적인 것을 쓰게 하셨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 양식이 육신의 음식인 것처럼 덕행은 영혼의 음식입니다. 훌륭한 술과 맛있는 음식이 있다 하더라도 비물질적 존재가 물질적인 것으로 양육될 수 없다는 이치로 영혼을 기를 수는 없읍니다.

옛날 사람들이 "죽은 이들을 그들이 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섬겨야 한다"고 말하였고, 이것이 우리나라 경서의 근본 원칙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동안에 그들의 영혼이 술과 다른 양식으로 결코 양육되지 않았던 만큼, 더구나 죽은 후에는 그렇게 될 수가 없읍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부모에게 대하여 아무리 효성이 지극하다 하여도 주무시는 동안에는 그 분들에게 음식을 드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잠자는 동안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더구나 그 분들이 죽음이라는 긴 잠이 드셨을 때, 그 분들에게 음식을 드리는 것은 헛된 일이요 거짓 행동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이 돌아가신 부모를 헛되고 거짓된 행동으로 공경할 수가 있겠읍니까. 그러므로 부모에게는 아무런 참다운 향기도 없는 음식을 쓰는 것을 그만두고, 온 힘을 기울여 덕행을 닦는 데 전심하여 그 결과를 그 분들에게까지 미치게 하고, 동시에 우리 영혼도 기르는 것이 참된 길이요 바른 도리입니다.

거듭 말씀 드리거니와 천주교를 신봉함으로써 제 양반 칭호를 박탈 당해야 한다 해도, 저는 천주께 죄를 짓기는 원치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주를 모시지 않는 서민들이 그렇다고 하여 정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또 가난하기 때문에 모든 제사를 규정대로 지내지 못하는 양반들도 엄한 책망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여 주십시오. 그러므로 제 낮은 생각으로는 신주를 모시지 않고 죽은 이들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으면서도, 제 집에서 천주교를 충실히 신봉하는 것은 결코 국법을 어기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사람들은 또 제가 부모상을 당한 뒤에 문상을 금하였다고 고발하였는데 그런 경우에 문상을 받음은 인간의 본분입니다. 좋은 집안에 태어난 자식이 어떻게 그것을 반대할 수가 있겠읍니까. 제 말을 못믿으시겠으면 문상하러 온 사람들이 있으니, 조사를 명령하시기만 하면 제가 말씀드리는 것이 진실임을 아실 것입니다. 제가 부모를 장사지내지 않았다는 말들도 합니다. 제 어머니는 금년 5월에 죽으셨는데, 저는 8월 그믐날에 장례를 지냈읍니다. 장례와 관(棺)과 곡(哭)과 상복 등등에 관하여는 천주교에서 이 모든 것을 갖은 정성을 들여 하라고 권고합니다. 저는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그 예식을 하고 적당한 처소를 택하였읍니다. 그 때 제 집에는 전염병이 들었었으므로 타지방 사람들에게 연락할 수 없어서, 친척과 친구들이 전부 장례 행렬에 참가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와서 참여하였읍니다. 이것 역시 조사만 하여 보시면, 퍼져 나간 풍문이 거짓이고 모함임을 아실 것입니다.

천주교라는 이 말은 모든 비난을 제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이 사람이 저사람에게 말하고, 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말하여, 한 가지 거짓말이 또 한가지 거짓말을 퍼뜨리게 하며, 이렇게 해서 차차 제가 관례적인 문상을 받기도 거절하고 제 부모의 장례도 지내지 않는다고 말하기에까지 이른 것입니다. 제가 신주를 태웠다는 고발도 함부로 증거도 없이 한 것이며, 제게 죄를 덮어 씌우고, 또 덮어 씌우기 위하여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사람들은 제가 천주교인들의 주교(主敎)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서양 나라에는 어디나 주교의 품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을 아이나 초심자에게 주지는 않으며, 더구나 시골 구석 궁벽한 곳에서 살아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였고, 혼자서 책 두세 권을 읽음으로써 제 개인적인 성화(聖化)에 힘썼으며, 아무에게서도 교수를 받지 않고 또 어디서도 이 교리를 전파한 일이 없는 저같은 사람에게는 주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주교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것이어서, 저는 대답할 필요조차 없읍니다. 양반 부모에게서 태어나 마침내 하늘과 사람의 기원과 임금께 대한 충성과 효성의 계명을 대강 알아내게 되었으므로, 제 약한 소망은 덕을 닦고 천주를 제대로 섬기기를 힘쓰는 것 밖에는 없었읍니다. 이 밖에는 더 아뢸 말씀이 아무 것도 없읍니다"  ---(샤를르 달레 著, 한국천주교회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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