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세계사의 눈으로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보면...

2008. 2. 4. 오후 3: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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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눈으로 한국 천주교회 역사를 보면…

 

이영춘(서울 삼성동본당 주임) 신부, 「한국 천주교회 창설과 조선대목구 설정」출간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텍스트(text, 본문) 옆에 콘텍스트(context, 맥락ㆍ상황)를 놓고 살펴봐야 한다. 한국 천주교회 창설이라는 역사적 사건도 마찬가지다.

 이영춘(서울 삼성동본당 주임) 신부가 펴낸 「한국 천주교회 창설과 조선대목구 설정」(기쁜소식)에는 한국교회 창설에 대한 이해를 돕는 흥미로운 콘텍스트가 풍부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선교 보호권 다툼, 이들 국가와 교황청 갈등, 중국교회 등 세계교회사 시각으로 한국교회사를 바라본 책이다.


 # 조선대목구 설정 배경은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사상 유례없는 두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하나는 서양 선교사 도움 없이 자생적으로 태동한 교회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성직자 한 명 없는 상황인데도 교황청이 1831년 대목구(代牧區, 교황청이 직접 관할하는 교구)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저자는 시계바늘을 멀리 15세기 지리상 발견시대로 돌려 놓고 이 두 사건에 접근해 들어간다.

 14~15세기 가톨릭 지도는 이슬람과 중국에 막혀 유럽에 고립된 형상이다. 설상가상으로 루터의 종교분열에 이어 전쟁과 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이때 해양기술이 발달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 쪽 바닷길을 개척한다. 새로 확보한 영토에 대한 두 나라 국왕의 선교 열의가 교회에 활기를 불어 넣자 교황은 국왕들에게 선교 보호권을 허락, 이들 대륙에 대한 선교 책임을 맡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본래 취지와 달리 선교에 태만하고, 약탈을 자행하는 등 부작용이 일어난다. 특히 두 나라는 잇속을 챙기느라 툭하면 선교 보호권 경계 다툼을 벌인다. 결국 포르투갈은 교황 중재로 자오선 기준 동반구의 권리를 인정받고 아시아(인도와 중국) 진출을 꾀한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선교 보호권을 주장하며 교황청과 자주 대립하고, 다른 나라 선교사들 활동을 방해한다. 교황청조차 독자적으로 선교정책을 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마침내 교황청은 이들 지역의 선교권을 되찾기 위해 1622년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을 설립한다. 포교성성은 선교 보호권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대목구 제도를 활용, 선교사들을 명의 주교인 대목(代牧)으로 파견하기 시작한다.

 한편 예수회는 마카오를 극동지역 선교 근거지로 정하고(1565년) 중국 본토에 상륙한다. 그 뒤를 이어 프란치스코수도회, 도미니코수도회, 아우구스티노수도회 등이 진출함에 따라 아시아 대륙 선교 열기는 한층 고조된다.
 
 # 조선 국경을 넘어라
 그럼 교황청은 이들 수도회를 배제하고 왜 파리외방전교회에 신생 조선교회의 포교권을 위임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조선교회를 관할하는 베이징교구가 포르투갈의 선교 보호권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베이징교구에서 조선대목구와 만주대목구 등을 분리해 나가면서 중국 선교권을 회복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수도회들간의 마찰을 피하려는 측면도 있었다. 중국에서 수도회들간 선교권 다툼이 의례논쟁으로 비화돼 박해를 초래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파리외방전교회는 수도회들과 달리 선교지 본토인 성직자 양성과 전통문화 존중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파리외방전교회 브뤼기에르 주교는 1835년 조선 국경으로 향하던 중 네이멍구의 한 교우촌에서 과로로 병을 얻어 목숨을 잃는다.

 다행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임명해 놓은 후임자 모방 신부가 1836년 국경을 넘는데 성공한 것을 시작으로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 등이 속속 도착하면서 조선 복음화 역사가 열리게 된다. 포르투갈의 선교 보호권은 교황청과의 정교조약(1857년)을 통해 중국 본토에서 광둥 지역으로 제한된다.

 이영춘 신부는 "조선대목구 설정 이후 이뤄진 중국에 대한 일련의 교구 분할 및 설정 작업은 포르투갈 선교 보호권 제한과 포교성성의 선교권 회복 과정"이라며 "이런 점에서 조선교회의 자생적 탄생과 조선대목구 설정은 세계교회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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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신문  2008.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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