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이후

마지막 나뭇잎들을 보내기 직전 오후의
피반령 고갯길은 황홀합니다
구릿빛 참나무 잎들과 주황색 금색의
의상을 걸친 낙엽송 가지들이
어찌나 서로를 돋보이게 하며 빛나는지
산기슭이 굽이굽이 햇살 속에서 찬란합니다
이 최후의 며칠간 소멸은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나 나무 자신은 어떨까요.
나무도 이 찬란한 소멸의 시간을
아름답게 보내고 있을까요,
안타까워할까요?
나뭇잎들은 어떨까요?
자유로워할까요,
걱정과 근심이 많을까요?

둘 다일 것입니다.
안타까움과 다행스러움,
어쩔 수 없는 체념과 홀가분함,
자유로움과 비통함,
받아들여야 할 운명과
헤어지는 아픔이 교차할 것입니다

봄날 처음 싹을 내밀 때는
'나를 꼭 잡아주세요.' '두려워요.'
'멀리 가지 마세요.' '나 혼자 있으라고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다 꽃을 피우고 제법 화색이 돌고
자신감도 생가면
'나 혼자 있게 놔두세요'
'나 혼자서도 아름다울 수 있어요'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다 잎이 무성해지고
함께 숲을 이루기도 하고
천둥과 번개도 겪은 뒤에는
점점 말이 없어지며
'나를 놓아주세요' '정말 자유롭고 싶어요'
'열정도 뜨거움도 없는 나날들을 견딜 수 없어'
그런 말들이 오갔을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엄마 곁을 떠나 있게 될까봐 악을 쓰고 웁니다
혼자 있는 건 버려지게 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엄마와 나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가 어느 순간 꼭 쥐고 있는 엄마의 손에서
자기 손을 빼내려고 꼼지락거립니다.
잡고 있는 손을 팽개치고 저 혼자 걸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다 넘어지면 얼른 고개를 돌려 엄마를 바라봅니다
도움을 청하며 울기도 하고 엄살을 떨기도 합니다
혼자 있으려는 생각과
붙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풀이 됩니다

그러다 목소리가 변하고 가슴이 봉곳해지기 시작하면
"혼자 있게 놔두세요" 하고 소리칩니다.
제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기도 하고,
방문을 안에서 걸어 잠근 채
누군가와 오래 전화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시간이 지나면
"나를 놓아 주세요" 하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는 항상 같이 있으려고 합니다
시간시간 서로 어디 있는지를 확인하고는 안심합니다
떨어져 있으면서도 심리적으로는 같이 있는 것입니다.
같이 있고 싶은 것입니다
한 몸이고 싶어 합니다
한 몸이라는 것을 자주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이 됩니다

서로 "나를 꼭 잡아 주세요." 하고 말하며 의지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혼자 있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있는데 나는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답답해집니다

그러다 천둥번개도 치고 폭풍우도 겪고 나면
"나를 놓아 주세요"하는 말이 불끈불끈 솟습니다
열정도 설렘도 없는 하루하루를 산다는 게
견딜 수 없어집니다
자유로워지고 싶고,
나를 구속하는 것들을 벗어나
마음껏 활개 치며 살고 싶어집니다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적 속성에서 벗어나
다시 한 마리 짐승이 되어
산과 들을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내 사랑하는 사람도
똑같이 그렇게 느낍니다
데스몬드 모리스는 우리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나를 꼭 잡아주세요', '나를 놓아 주세요'
그리고 '혼자 있게 놔두세요'
이 세가지 단계를 되풀이해서 거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성장하고 발전하는
정상적인 순환과정의 일부라고 합니다
이런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실망하지 말고 다가오는 단계 단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도 나처럼, 나도 그처럼
똑같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쓸쓸해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지에 단풍 들어 아름답지만
조락 이후의 쓸쓸함이
이 산 가득 몰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쓸쓸함도 아름다움일 수 있습니다
쓸쓸한 이후에는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쓸쓸함을 아름답게 받아들일 줄 아는 이에게만
그 다음의 어떤 것이 찾아올 것입니다.

* 도종환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