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의 음악편지

2009. 9. 4. 오후 3:03:32

글자
 
1269호(2009.09.04)

 



 
 
 
 
 
 
 
*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이불은 누가 빨라구> -이재종-
  

 아내가 어이없는 사고로 우리곁을 떠난지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는 너무 크기만 합니다.

스스로 밥 한끼 끓여먹지 못하는 어린아이와 남편을 두고
 
떠난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마는
 
난 나대로 아이에게 엄마 몫까지 해주지 못한게
 
늘 가슴 아프기만 합니다.
 
 
 
언젠가 출장으로 인해 아이에게 아침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출근준비만 부랴부랴 하다가 새벽부터 집을 나섰던 적이 있었지요,
 
전날 지어먹은 밥이 밥솥에 조금은 남아있기에
 
계란찜을 얼른 데워놓고 아직 잠이 덜 깬 아이에게
 
대강 설명하고 출장지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일이 손에 잡힐 리가 있나요?
 
그저 걱정이 되어 몇번이나 전화로 아이의 아침을 챙기느라
 
제대로 일도 못 본 것 같습니다.
 
 
 
출장을 다녀온 바로 그날 저녁 8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이와 간단한 인사를 한 뒤
 
너무나 피곤한 몸에 아이의 저녁 걱정은 뒤로 한 채
 
방으로 들어와 양복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침대에 대자로 누웠습니다.
 
그 순간,
 
"푹! 슈-"소리를 내며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 가락이
 
침대와 이불에 퍼질러지는게 아니겠습니까?
 
펄펄 끓는 컵라면이 이불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무작정 불러내
 
옷걸이를 집어들고 아이의 장딴지와 엉덩이를 마구 때렸답니다.
 
 
 
"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이불은 누가 빨라고 장난을 쳐, 장난을!"
 
 
 

다른 때 같으면 그런 말은 안 했을 텐데
 
긴장해 있었던 탓으로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섞인 몇 마디가 나의 매든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들의 얘기로는 밥솥에 있던 밥은 아침에 다 먹고,
 
점심은 유치원에서 먹고,
 
다시 저녁때가 되어도 아빠가 일찍 오시질 않아
 
마침 싱크대 서랍에 있던 컵라면을 찾아냈다는 것입니다.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선 안된다는 아빠의 말이 생각나서
 
보일러 온도를 목욕으로 누른 후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붓고,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한개는 출장 다녀온 아빠에게 드리려고
 
라면이 식을까봐 제 침대 이불속에 넣어두었다고 합니다.
 
그럼 왜 그런 얘길 안 했냐고 물었더니
 
제 딴엔 출장다녀온 아빠가 반가운 나머지 깜박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들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이 싫어 화장실로 뛰어들어간 저는
 
수돗물을 크게 틀어놓고 엉엉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한참이나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와서는
 
우는 아이를 달래 약을 발라주고 잠을 재웠습니다.
 
라면에 더러워진 침대보와 이불을 치우고 아이방을 열어보니
 
얼마나 아팠으면 잠자리속에서도 흐느끼지 뭡니까?
 
정말이지 아내가 떠나고 난 자리는 너무 크기만 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나는 그저 오랫동안 문에 머리를 박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 <정말 하고 싶었던 일>
 
 
서울의 어느 공원에 아담과 하와의 동상이 있었는데,
 
그들은 수백 년 전에 만들어진 동상으로
 
벌거벗겨져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남사스런~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께서 그들을 단 10분의 시간 동안만
 
인간으로 만들어주셨다.
 
 
 

"내... 너희들을 딱 10분 동안만 인간으로 만들어 줄 터이니
 
그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거라!"
 
 
 

그 말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 아담과 하와는
 
말없이 잽싸게 불 튀기는 눈빛을 교환하더니
 
손을 잡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숲은 진동하기 시작했고.
 
나뭇잎이 심하게 흔들리며 떨어졌다.

그러자 호기심이 발동한 하느님이,
 
궁금해서 숲 속을 들여다보았더니
 
그곳에서 그들은

비둘기를 한 마리씩 잡아 땅바닥에 깔아놓고
 
머리 위에다가 똥을 누면서 이렇게 말했다...
.
.
.
.
.
.
.
.
.
.
.
.

"이놈들아! 니들도 한번 당해봐,
 
나쁜 놈들 같으니라구!"
 
 
 
 
 
 
 
 
 
 
 
"새벽의 잔디를 깎고 있으면

기막히게 싱그러운 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건 향기가 아니다.
 
대기에 인간의 숨결이 섞이기 전,

아니면 미처 미치지 못한 그 오지의

순결한 냄새다(박완서, 호미)."
 
 
 
 
 
 
가을입니다.
 
가끔 문화행사도 하셔서
 
건조한 삶에 윤활유도 치시기 바랍니다.
 
 
 
 
 
 
 

♬ 가을이 묻어나는 연주곡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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